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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혁신

왜 경쟁이 문제인가?

by 김현섭 2013. 10. 2.

알피 콘은 그의 저서 경쟁에 반대한다에서 경쟁의 폐해와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우선 경쟁에 대한 4가지 신화를 제시한다.

 

경쟁이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하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경쟁을 하는 것이 재미있게 보내는 최선의 방법이다.

경쟁은 인격을 형성하고 자신감을 갖게 한다는 것이다.

 

알피 콘은 각 신화가 가지고 있는 허구성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첫째, 경쟁은 인위적으로 조장해서 만들어진 것이지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를 분석해 보면 경쟁만큼이나 협동(협력)이 필수적이고 중요한 원리라는 것이다. 경쟁은 타고난 본성이 아니라 학습되는 현상이다. 사회화 과정을 통해 경쟁이 강조되고 있을 뿐이다. 문화인류학적 측면에서 살펴보면 모든 문화권에서 경쟁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물질적 풍요가 넘치고 소위 문명사회라고 할수록, 빈부 격차가 심할수록 경쟁을 합리화하고 정당화하는 측면이 있다. 인간 본성이 경쟁적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들도 따지고 보면 별로 그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둘째, 경쟁과 협동의 원리 중 성취가 높은 방식은 경쟁이 아니라 협동이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경쟁 없이도 가능하다. 많은 연구들에 의하면 경쟁은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 일시적인 효과를 거두기는 하지만 협동에 비해 덜 생산적이라는 것이다. 지속 가능하고 온전한 목표 달성은 협동의 원리에 의하여 가능하다. 사회심리학자 도이취는 임수 완수에 따른 보상의 분배 방식에 대하여 연구했는데, 승자 독식, 성과에 비례하는 배분, 균등 배분 중 균등 배분 방식이 최고의 결과를 가져왔으며, 승자 독식이 최악의 결과를 낳았다는 것을 밝혀냈다. 어떤 일이든 가장 잘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일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내적 동기에 의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외적 동기 유발 방식은 일시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지만 내적인 동기 부여를 저해하고, 장기적으로는 어떤 일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역효과를 가져온다. 경쟁은 협동에 비해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낭비하는 부분이 있다. 경쟁의 비효율성은 야구장 예화를 통해서도 비유적 설명이 가능하다. 예컨대, 야구장에서 야구 경기를 잘 구경하기 위해 일어서서 구경한다면 뒷 쪽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은 야구 경기를 잘 볼 수 없다. 뒷 쪽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이 야구 경기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일어서서 볼 수 밖에 없고 그 뒤에 있는 나머지 사람들도 다 일어서서 구경할 수 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야구장에 있는 모든 사람이 일어서야만 야구 경기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되는데, 이는 모든 사람이 다 앉아서 구경할 수 있는 경기를 다 서서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 버린다.

셋째, 놀이의 즐거움은 꼭 경쟁에서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프로 스포츠 경기는 경쟁적인 방식으로 구경꾼 입장에서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지 몰라도 해당 운동 선수에게는 피말리는 전쟁과 같다. 우리 나라 전통놀이를 살펴보면 승패 원리에 근거한 경쟁 게임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경기 관람보다 재미있고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전통 놀이에서 술래는 존재해도 술래가 늘 술래를 하는 것은 아니고 놀이마다 바뀔 수 있다. 한번 술래가 영원한 술래가 아니다. 오히려 두 패로 나뉘어 하는 놀이도 한 쪽이 다른 한 쪽에 비해 힘이 달리면 힘이 힘은 달리는 쪽에 배려를 한다. 놀이는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 과정을 통해서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놀이는 그 자체로서 그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이지 경쟁을 해야만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넷째, 경쟁은 인격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로움을 준다. 경쟁은 목표 도달보다는 절대 평가보다는 라이벌과의 상대 평가를 통해 자아 정체성이 형성된다. 상대방과의 비교의식은 우월감 내지 열등감을 형성해 나간다. 그래서 우월감과 열등감은 한 뿌리에서 나온 두 자식이기 때문에 우월감과 열등감은 동전의 앞뒷면처럼 항상 따라다닌다. 그러므로 경쟁을 통한 인격 형성은 우월감 내지 열등감에서 해방되기 힘들다. 이러한 경쟁은 자기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불안감에 시달릴 수 밖에 없다.

경쟁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과도한 경쟁은 불안감을 조장하기 쉽다는 것이다. 경쟁은 일 자체에 몰입하고 즐기기 보다는 결과에 따른 불안감에 시달리게 만든다. 불안감의 이유는 패배에 대한 두려움이다. 패배할 확률이 높을수록 불안감이 더 커진다. 또한 승리에 대한 두려움도 존재한다. 타인을 이기는 것에 대한 죄의식, 패배한 상대방이 자신을 적대시할 것이라는 두려움 등이 있다. 불안감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뿐 아니라 육체적인 피로감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경쟁에서 상대방을 이겼다고 판단하면 다시 그 일에 집중하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일 자체가 좋아서 열심히 일을 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 과도한 경쟁은 인간관계를 파괴한다는 것이다. 치열한 경쟁 구도 속에서는 친구가 존재하기 힘들다. 친구도 나의 경쟁 상대라고 생각하는 순간, 대인 관계도 단절되기 쉽다. 경쟁 속에서는 의 만남이 아니라 그것의 관계로 변질된다. 상대방을 인격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물 수준으로 격하시킨다. 경쟁은 라이벌에 대한 공격성을 강화한다. 타인에게 이기려는 것 자체가 하나의 투쟁이며 공격 행위의 한 형태이다.

셋째, 경쟁은 결과만을 지향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과정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잃어버린다. 과정이 아무리 좋아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심지어 반칙도 정당화한다. 결과를 위해서는 과정의 규칙도 무시하기도 한다. 경쟁은 양자 택일을 강요한다. 흑백 논리의 오류에 빠져 이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적 사고에 따라 판단하기 쉽다. 경쟁은 현실을 순응하게 하고 획일성에 빠지기 쉽게 만든다. 회사나 학교에서 자신을 평가하는 권위있는 사람에게 도전이나 비판을 할 수 없습니다. 회사나 학교에서 인정받고자 한다면 자신을 평가하는 사람의 권위에 저항을 하면 안된다. 이러한 시간이 지나면 비판적 사고는 자연스럽게 사라지게 된다. 경쟁은 새로운 모험적인 시도를 억제한다. 모험에 따르는 실패 가능성 때문에 쉽게 모험적인 시도를 하지 않는다.

정문성은 20세기 최악의 발명품이 경쟁학습 구조하는 것을 이야기하면 비판한다. 경쟁은 1등에게만 존재 의미를 주는 게임이다. 경쟁은 극소수의 승자와 대다수의 패자를 낳아 인력 자원 공급의 차질을 가져오게 되었다. 극소수를 위해 대다수는 들러리로 서야 하는 경우는 전체적으로 매우 비효율적인 구조가 된다. 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대다수는 자신의 잠재력을 포기하게 되고 열등감에 빠져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된다. 극소수의 승자도 절대 평가가 아니라 상대평가를 통해 배출되었기 때문에 함량 미달일 수 있다. 경쟁은 다른 사람들의 성공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실패하기를 기대한다. 자신의 성공을 위해 반칙의 유혹에 쉽게 노출된다. 목표 달성 자체보다는 다른 사람의 성과 결과와 비교하는데 초점을 둔다. 극소수만 행복하고 대다수가 불행해질 수 있다. 항상 언제나 어디서나 1등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끝없는 열등감에 빠지기 쉽다.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보더라도 경쟁학습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는 고3 시절과 임용고사 취업 준비 시기였는데, 이때 제일 열심히 공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당시 공부는 공부 자체가 좋아서 공부한 것이 아니라 합격이라는 결과를 위해 수단적으로 공부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시험을 통해 합격이라는 결과를 얻었을 때는 다시 해당 과목 공부를 하지는 않았던 경험이 있다. 대학 입학 이후에는 수학 책을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고, 임용고사 이후에는 전공 및 교육학 수험 공부 책을 가지고 공부하지는 않았다. 경쟁학습 상황에서는 학습 목표 자체보다 원하는 결과를 달성한 뒤에는 자발적으로 다시 해당 공부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