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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혁신

비합리적인 10가지 수업 신념들

by 김현섭 2015. 12. 1.

1. 수업 시간에 교사가 모든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강의식 설명법 수업에 익숙한 평범한 교사들이 많이 가지고 있는 신념이다. 이러한 수업 방식에 익숙한 교사들의 수업을 참관하여 학생의 배움 상태를 관찰해보면 대개 상위권 학생들은 교사의 가르침에 잘 따르지만, 중위권 학생들은 가만히 있고, 하위권 학생들은 졸거나 딴 짓을 한다. 교사의 의도대로 잘 따라 오는 학생은 1/3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경우, 교사도 중하위권 학생들에게 나름대로 동기 부여를 하거나 야단치기도 하지만 배움의 상태가 크게 바꾸어지지 않는다. 이러한 경험이 쌓이게 되면 이러한 상황을 정당화하기 위한 신념이 생기게 된다. , 교사로서 최선을 다해서 가르쳤지만 그 지식을 소화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학생들의 책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 학생들의 책임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배움에 몰입하지 못한 책임을 전적으로 학생 탓으로만 돌리면 교사 자신은 마음이 편할지 모르겠지만 교사가 가지고 있는 책임을 어느 정도 놓치고 있는 것이다. 교사의 역할을 지식의 전달자로만 이해하고 지식 전달에만 초점을 맞추어 수업을 한다면 학생들이 구태여 학교에 나와 공부할 필요가 있을까? 만약 그러하다면 인터넷 강의가 발달한 시대에서 집에서 편안하게 인터넷 강의를 수강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을 것이다. 교사는 인터넷 강의 강사가 아니다. 인터넷 강의는 학생이 선택하거나 멈춤, 반복 재생이라도 가능하지만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사의 수업은 그러하지 못하다. 학생들이 배움에 몰입하지 않을 때 교사는 그 원인에 대하여 고민하고 배움을 촉진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해야 한다. 소수 상위권 학생들의 참여와 대답에만 만족하면서 교사가 수업을 하는 것은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는 것이거나 일종의 직무 유기에 불과하다. 교사는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라도 자기 수업에서 학생들이 배움에 몰입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2. 학생들은 학습할 의지가 있다? 없다?

구성주의 관점에서는 학생들은 학습할 의지가 있다고 전제한다. 반대로 행동주의 관점에서는 학생들은 학습할 의지가 없다고 전제한다. 그래서 구성주의적 접근에서는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 활동을 강조하지만 행동주의적 접근에서는 학생들의 긍정적인 행동을 강화하기 위해 당근과 채찍 전략을 적절히 사용할 것을 권한다.

그렇다면 교실에서 만나고 있는 학생들을 냉철하게 살펴보자. 학습할 의지가 있는가? 없는가? 잘 관찰해보면 두 가지 모습을 다 발견할 수 있다. , 학습할 의지가 있는 학생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학생도 있다. 동일한 학생도 어떤 과목들에서는 학습 의지가 높지만 다른 과목에서는 상대적으로 학습 의지가 낮기도 하다. 학습 의지가 높은 학생도 어떠한 계기를 통해 학습 의지를 잃어버릴 수 있다. 반대로 학습 의지가 낮은 학생이 어떠한 계기를 통해 학습 의지를 높일 수 있다. , 학생들은 두 가지 상반된 측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학습 의지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역설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역설이다. 얼핏 보면 두 가지의 주장이 서로 대립되어 보이지만 두 가지가 병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사가 학생들을 대할 때 전반적으로 학습 의지가 높을 경우에는 구성주의적 접근을 사용할 수 있고, 반대로 학습 의지가 낮을 때는 행동주의적 접근을 사용할 수 있다. 개별 학생의 학습 의지 수준에 따라 접근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 흑백논리로 접근하면 수업에서 발생하는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쉽지 않다. 어떤 이론에 따라 그에 맞추어 학생을 바라보지 말고 현실에 있는 학생들의 있는 그대로 삶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3. 학생이 교사 스타일에 맞추어야 한다?

어느 학교에서 교사 대상 연수 수업 혁신 강의를 하고 나서 다같이 식사를 한 일이 있었다. 50대 선생님이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반문하였다. “선생님, 10년 전에는 제가 지금처럼 수업을 했을 때 학생이 열심히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요즘은 10년 전과 동일하게 수업을 하는데도 학생들이 열심히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데, 그렇다면 이 문제의 원인은 요즘 학생들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 때 같이 식사하던 다른 선생님이 필자 대신 대답을 하였다.

의사가 10년 전 환자에게 치료할 때 사용한 처방전대로 현재 환자에게 처방전을 내렸는데, 치료 효과가 없다고 그 환자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을까요?”

가르침과 배움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학생이 교사 스타일에 맞추거나, 교사가 학생 스타일에 맞추어야 한다. 예전에는 교사 스타일에 학생들이 맞추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학급당 인원수가 많아도 지금보다 수업하기는 수월한 편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그러한 방식이 학생들에게 잘 통하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다. 10년 전 학생들과 현재의 학생들은 성장 과정과 문화, 가치관 등이 많이 다르다. 이러한 상황에서 가르침과 배움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는 교사가 학생 스타일에 맞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 가르쳐야 할 학생들은 현재보다 수업하기 더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변화하는 학생들의 스타일에 맞추어 교사가 변하지 않으면 좋은 수업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4. 바쁘다 보니 수업 준비할 시간이 없다?

예전에 비해 학교 업무가 많이 늘고 있다 보니 일과 시간에 수업 준비 시간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교육청 차원에서 업무 경감 조치들을 추진하고 학교 차원에서도 이를 추진하고 있지만 교사들이 현장에서 체감하는 정도는 그 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 과감한 업무 경감이 이루어지면 교사들이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을 쓸 수 있기 때문에 수업의 질이 올라 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할까?

성공적인 혁신학교를 가보면 수업과 행정 업무를 이원화하여 행정 업무 부담을 줄였다. , 담임 교사들은 수업과 생활지도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비담임 교사들은 수업 시수를 줄이고 행정 업무를 더 담당하도록 하였다. 그런데 일부 담임 교사들은 행정 업무를 담당하지 않기에 생기는 시간적인 여유를 수업 준비에 충분히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행정 업무 경감에서 오는 여백을 다른 시간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부작용이 있으니 교사의 업무 경감을 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려고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행정 업무 경감이 바로 수업 준비 시간의 확보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시간은 누구나 공평하게 하루에 24시간이 주어져 있다.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달리 말해 그 일에 자신의 우선 순위가 있지 않다는 표현에 불과하다. 시간이 없어서 수업 준비가 부족했다는 것은 자기 업무에 있어서 수업이 우선 순위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수업이 교사 업무에 1순위로 둔다면 수업 준비를 하고 나서 나머지 시간에 다른 업무를 처리할 것이다. 필자는 학생들이 학교에 있을 때는 수업이나 생활지도 등에 집중하고 학생들이 하교하고 나서 행정 업무를 처리하자는 원칙을 세웠더니 교직 업무 처리하는 데 있어서 큰 무리가 없었다. 학생들에게만 플래너 쓰기를 강조할 것이 아니라 교사도 시간을 계획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자기 플래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간 자체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해야 한다.

 

5. 이렇게 수업하면 진도 나가기 힘들다?

학생들의 참여를 강조하는 참여적 교수 전략, 배움 중심 수업을 이야기하면 많은 교사들이 주로 하는 말이다. 일제 학습에 익숙한 교사에게 학생 활동 중심의 수업은 매우 부담스러운 것이다. 기존 일제 학습 방식대로 수업 디자인을 한 상태에서 학생 참여 활동을 도입하면 당연히 수업 진도를 나가기 힘들 것이다. 학생 참여 활동을 도입하려면 교육과정 재구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핵심 질문에 따라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그에 맞는 교수학습방법을 도입해야 한다.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노력 없이 새로운 수업 방법을 도입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렇게 수업하면 진도 나가기 힘들기 때문에 이렇게 수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수업하기 위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신념들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수업을 하면 실패한다’, ‘그 학교(학생)니까 그것이 가능하다’, ‘내가 담당하는 과목에서는 이렇게 하기 힘들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학생 참여 수업이 맞지 않다등이 있다. 상황에 따라 적용 방식과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맞는 말이긴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혁신에 대한 보수적인 반응으로 전락되어서는 안된다.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수업을 하면 실패하기 쉽다면 자기 학생들에 맞게 그 방식을 변형하여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 학교(학생)니까 그것이 가능하다면 자기 학교(학생)에 맞게 그 방식을 변형하여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가 담당하는 과목에서는 이렇게 수업하기 힘들다면 내 교과에 맞는 방식으로 변형할 수 있어야 한다.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 활용하는 학생 참여식 수업을 인문계 고교에서 그대로 적용하기 힘들다면 인문계 고교에 맞는 학생 참여식 수업 방식을 찾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인문계 고교 선생님들이 협동학습, 토의 토론 수업, PBL 수업, 프로젝트 수업 등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 참여 수업을 하고 있는 선생님이 있다. 새로운 수업혁신 콘텐츠 자체를 기계적으로 적용하기보다 해당 수업 혁신 콘텐츠의 핵심과 시사점을 자기 교실에 맞추어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수업 혁신 콘텐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학생의 배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자기 스타일에 맞게 변형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누군가 그 정답을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해당 교사가 스스로 정답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누군가 자기 스타일에 맞는 대안을 제시해주면 자기도 실천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극히 유아적인 생각에 불과하다.

이와 비슷하지만 반대되는 형태의 신념은 이렇게 수업하면 누구나 수업을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만병통치약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약장수는 만병통치약이 있는 것처럼 말해서 자기 약을 사람들에게 팔려고 한다. 수업 혁신 콘텐츠도 마찬가지이다. 수업 혁신 콘텐츠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약장수의 오류에 잘 빠진다. 마치 이렇게 수업을 하면 누구나 수업을 잘할 수 있는 것처럼 여긴다. 수업에는 만병통치약같은 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수업에는 왕도가 없다.

 

6. 학급당 학생수가 줄어들면 수업하기 좋다?

학급당 학생수가 많으면 수업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학급당 학생수가 줄어든다고 해서 무조건 수업이 잘되는 것은 아니다. 학생수가 적은 시골 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들은 많은 행정 업무로 인하여 힘들어 한다. 학생수가 적은 대안학교는 일반 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학생들의 개별적인 특성이 잘 드러나기 때문에 교사들이 수업을 하기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학급당 학생수가 수업하는데 있어서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학급당 학생수가 적다고 해서 꼭 수업하기 좋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학교 시설 및 학습 환경이 좋아지면 수업하기 좋은 것은 사실이지만 학습 환경이 좋다고 해서 수업이 잘 이루어진다고만 볼 수 없다. 학교 시설 및 학습 환경의 측면으로 볼 때 일반 고등학교보다 특성화 고교가 더 좋지만 그렇다고 모든 특성화 고교가 일반 고교보다 수업하기가 더 좋은 것만은 아니다.

 

7. 학기 초에 꽉 잡아야 일 년이 편하다?

많은 선배 교사들이 새내기 교사에게 조언하는 말 중의 하나이다. 사실 이러한 신념은 교직 경험을 통해 나온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도 효과가 있다. 이는 심리학적 관점으로 볼 때 초두(初頭)효과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강렬한 첫 인상이 나머지 이미지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신념은 현실적으로 효과적인 명제라고 할 수 있어도 교육적인 명제라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교사가 일년 내내 엄격하게 학생들을 대할 수 없을 뿐 아니라 학기 초 사소한 잘못을 통해 교사에게 심하게 야단맞게 된 학생 입장에서는 이후 자기보다 더 큰 잘못을 한 학생에게 해당 교사가 관대하게 넘어가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교육에 있어서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가 일관성과 형평성이다.

수업이 잘 이루어지려면 교사와 학생과의 경계선이 잘 세워져야 한다. 많은 교사들이 학생들과의 경계선을 세우기 문제에 대하여 고민을 한다. 어떤 교사는 경계선이 높아 수업 질서는 있으나 두려움이 교실을 지배하고 학생들의 관계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 반면 어떤 교사는 경계선이 낮아 학생들의 자유로움이 지나쳐서 방임 형태로 떨어져서 수업의 질서가 사라져서 학생들의 배움이 충분히 일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러므로 과도한 통제와 방임 사이에서 교사와 학생과의 경계선을 세워야 한다. 그런데 교사마다 특성이 다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경계선을 정할 수 없다. 경계선을 세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른 교사와 비교해서 경계선이 높은 것인가 낮은 것인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배움이 이루어질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경계선이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관계 세우기를 바탕으로 질서 세우기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한 신념 중의 하나가 때려야 학생들이 말을 잘 듣는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있는 교사들이 많았으나 체벌 금지 이후에는 이러한 신념을 가지는 교사들은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체벌 대신 벌점이나 다른 형태의 처벌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은 아직도 많이 있다. 이러한 신념에 따라 교사가 행동하면 겉으로는 순종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학생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 힘들 것이고 일부 학생들은 교사에게 반발할 수 있을 것이다. 질서 세우기와 훈육하기는 꼭 필요하지만 그것이 벌점이나 처벌로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한 질서 세우기는 강제적이고 엄격한 훈육 방식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관계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학급긍정훈육법에서는 관계를 바탕으로 질서 세우기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약속 형태로 수업 및 생활 규칙을 만들 수 있고, 야단치기 대신 질문하기 방식으로 질서 세우기와 훈육하기를 할 수 있다.

 

8. 새로운 수업 방식은 준비를 철저히 한 다음 천천히 적용해도 늦지 않는다?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신중한 성격의 교사들이 쉽게 가질 수 있는 신념 중의 하나이다. 실패를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생긴 신념이라고 할 수 있다. 교사가 연수를 통해 새로운 수업 혁신 콘텐츠를 접하게 되면 처음에는 좋아하지만 막상 자기 교실에서 적용하려고 할 때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연수를 통해 배울 때는 좋았지만 막상 교실에서 적용하려고 보면 실패하기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연수생인 교사들이 학습 능력이 높고 학습할 의지가 높은 상태에서 연수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잘 이루어지지만 교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은 학습할 의지도 낮고 교사에 비해 학습 능력이 높지 않기 때문에 연수 받은 대로 실천한다고 해서 성공적인 수업을 경험하기 쉽지 않다.

그런데 교육과정 재구성이나 다양한 교수학습방법 등의 수업 혁신 콘텐츠는 시행착오 없이 성공적으로 교실에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업 혁신 콘텐츠를 배워서 바로 교실에서 실천하면 실패를 경험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실패를 통해 그 원인을 고민하고 그 대안을 찾아가면서 수업 혁신 콘텐츠가 비로소 자기 것이 되는 것이다. 혼자서 책을 읽고 복습한다고 해서 수업 혁신 콘텐츠를 교실에서 성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실패없이 수업 혁신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당장 실패했다고 해서 해당 수업 콘텐츠를 버리고 기존 수업 방식으로 돌아가는 것은 지혜로운 선택이 결코 아니다. 많은 교사들이 어설프게 실천하다가 실패를 경험한 다음 기존 방식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은데, 이것이 반복되면 무기력이나 냉소주의로 귀결되기 쉽다.

 

9. 나는 쇼맨쉽(내지 그러한 능력)이 없어서 저 선생님처럼 수업하기 힘들다?

교사마다 수업 유형이 다르다. 어떤 교사가 유창하게 말을 하고 농담과 유머를 잘하면서 학생들을 잘 가르친다고 하자. 이 교사는 언어적 지능이 뛰어난 교사이기 때문에 그 강점이 극대화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언어적 지능이 상대적으로 약한 교사는 그 방식을 따라 하다가는 실패하기 쉽다. 그러므로 다른 교사가 잘하는 부분을 따라한다고 해서 자기도 쉽게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다중지능이론에서는 사람마다 발달한 다중지능이 다르지만 노력을 하면 어느 정도까지는 발달시킬 수 있다고 말한다. 언어적 지능이 덜 발달되었다 하더라도 노력하면 어느 선까지는 언어적 지능을 잘 활용할 수 있다. 필자는 학창 시절 내성적이었고,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을 꺼려 했던 존재감이 적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대학 시절을 연극을 배우고, 교사가 되고 나서 수십년 동안 수업을 하다보니 언어적 지능을 많이 활용할 기회가 있었다. 지금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필자가 최소한 말을 잘 못한다는 평가를 받지 않는다. 원래 말하기에 비해 글쓰기를 잘하지 못했는데, 최근에 글을 쓸 기회가 많아지다보니 글쓰기도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물론 노력한다고 해서 최하 수준에서 최고 수준으로 발달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노력에 따라서 어느 정도까지는 그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10. 내 수업의 수준은 중간 이상이다?

대부분의 교사들이 이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수업을 잘하는 교사들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 수업을 하는 교사들도 자기 수업만큼은 중간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 것일 뿐, 자기 수업 자체는 중간 이상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성실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3자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수업을 살펴보면 전혀 그러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많은 교사들이 자신의 수업 상태를 자기 수준 이상으로 과대 평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있으면 수업 혁신을 위해 자기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현재 자기 수업의 부족함을 인정해야 혁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지만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기존 수업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것이다. 이는 방어 기제나 접촉 경계 혼란 행동으로 인하여 사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못하는 상황일 뿐이다. 실제 수업 상태와 교사의 자기 인식 상태는 다를 수 있다.

수업 코칭을 통해서 자기 수업이 중간 이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교사들은 매우 힘들어 한다. 그래서 수업 코칭시 교사의 내면이 흔들려 오히려 수업의 슬럼프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직면하기 과정을 거쳐서 자기 수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수업 성장이 이루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