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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질문이 있는 교실(한겨레신문 2016/05/31)

by 김현섭 2016. 5. 31.
질문이 있는 교실

경기도 성남시 백현중 김경오 수석교사(맨 오른쪽)가 학생들과 ‘퀘스천 보드’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청연 기자
경기도 성남시 백현중 김경오 수석교사(맨 오른쪽)가 학생들과 ‘퀘스천 보드’ 앞에 서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청연 기자
“지난 시간에 배운 수필에 대해서 설명할 사람?”

“….”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질문 있는 사람?”

“….”

우리나라 학생들은 질문을 받을 때나, 질문을 하라고 할 때나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교사의 질문에 답할 때는 ‘혹시라도 틀린 답을 말할까 봐’ 두렵다. 본인이 궁금한 게 있을 때도 ‘어떻게 질문하는 건지 잘 몰라서’, ‘친구들이 웃을까 봐’ 등 여러 이유로 질문하기를 꺼린다. 스스로 생각하기보다는 교사의 일방적 강의로 수업을 듣고, 문제풀이 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에 머리를 써서 질문에 대해 생각하는 게 부담스럽기만 하다.

질문에도 ‘좋은 질문’과 ‘나쁜 질문’이 있다. <질문이 살아있는 수업>을 쓴 수업디자인연구소 김현섭 소장(좋은교사운동 좋은학교만들기위원장)은 “질문 안에 교사가 유도하는 답이 있거나 특정 답으로 이끌어가는 ‘유도질문’, 질문 의도가 명확하지 않은 ‘모호한 질문’, ‘‘예’, ‘아니오’로만 답해야 하는 질문’ 등은 좋지 않은 질문”이라고 했다.

최근 ‘좋은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교실에서 개별적으로 ‘질문이 있는 수업’을 시도하는 교사도 늘고 있고, 교육청 차원(서울시교육청, 광주시교육청 등)에서도 ‘질문이 있는 교실’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틀리면 어쩌나’
질문하면 고개 숙이는 아이들

일방적 설명, 문제풀이 버리고
‘질문’ 중심 수업 꾸리는 교사들
모둠 협동학습으로 개념 이해하고
학생 스스로 문제 해결해보며
나만의 문제 내보는 훈련도 해

‘퀘스천 보드’에 질문 붙이며 수학 공부

‘선생님이 20분 정도 개념에 대해 설명한다. 아이들은 노트에 받아적는다. 개념과 관련한 문제를 푼다. 선생님이 학생 한 명을 지정하면 그 친구가 대표로 나와 문제를 푼다.’

경기도 용인시 소명중고교 8학년(중2) 학생들이 ‘질문’에서 시작하는 허용회 교사(가운데)의 국어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김청연 기자
경기도 용인시 소명중고교 8학년(중2) 학생들이 ‘질문’에서 시작하는 허용회 교사(가운데)의 국어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김청연 기자
많은 학생들이 이런 방식의 수학 수업에 익숙하다. 경기도 성남시 백현중 1년 김민우군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에 와서는 완전히 색다른 수학 수업을 만났다. 수석교사인 김경오 교사의 수업이다. 김군은 “수학 수업은 ‘질문’으로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선생님이 주시는 ‘백현활동지’(QIM: Question in mathematics)를 보면 제일 마지막에 ‘오늘의 질문’이 있어요. 지난 시간, 그 칸에 학생들이 적어 낸 것 중 좋은 질문이 있으면 소개부터 해주세요. 선생님의 일방적인 설명은 거의 없어요. 활동지에 그날 배워야 하는 개념과 관련해 다양한 이야기와 질문이 순서대로 있거든요. 모둠별로 그 질문에 답을 해 나가면 됩니다.”

만약 모둠원 가운데 개념 이해를 못해 활동지 질문이 어려운 아이가 있다면 모둠원들끼리 ‘협동학습’으로 해결한다. 때론 어떤 문제를 놓고 모둠원들끼리 대화를 넘어 토론이 이어질 때도 있다. “(저울 그림을 배경에 그려 놓고) 방정식을 푸는 원리는 뭘까?” 김 교사가 던지는 활동지 질문들은 단순 문제풀이형이 아니라 학생들로 하여금 끊임없이 개념을 생각하게 만든다.

김 교사가 쓰는 교과교실 칠판 옆에는 학생들이 ‘알고 싶은 것’, ‘알게 된 것’을 적어 넣는 ‘퀘스천 보드’도 붙어 있다. 1학년 1반부터 3반까지 학생들은 궁금증이 생기는 내용을 포스트잇에 적어 붙였다. 학생들이 던진 ‘좋은 질문’은 정기고사 때 시험문제로 나오기도 한다.

1학년 김태환군은 “단답형 문제풀이 위주로 진행하는 수업에 익숙해져 있었던 터라 처음에는 이런 수업이 어색했다”고 했다. 활동지나 친구들이 던진 질문을 함께 해결해 나가다 보니 어렵게만 느껴지던 개념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김 교사는 “공부의 기본은 질문에서 비롯된다. 질문이 있어야 생각이 돌 수 있고 나아가 배움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대부분 학교 현장에서는 질문을 안 한다”며 ‘질문이 있는 수업’을 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김 교사가 나눠주는 활동지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거나 학생들의 생각, 질문을 유도하는 스토리텔링 서술형 문제가 많다. 한 예로, 방정식 단원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디오판토스의 묘비 글’이 지문으로 등장한다. ‘디오판토스는 일생의 6분의 1을 소년시절로 보냈다. 또 일생의 12분의 1은 청년시절이었다. 그 후 일생의 7분의 1이 더 지나 결혼하였다. 5년 후에 아들이 태어났지만 가엾은 아들은 아버지의 생의 반만큼만 살았다. 그는 아들이 세상을 떠난 후 슬픔 속에서 4년을 보내다 마침내 흙으로 돌아갔다.’ 지문과 관련해서는 ‘디오판토스의 나이 구하기’, ‘나의 일생에 대한 비문 적어보기’, ‘나의 일생 나이를 구하는 방정식’ 등이 문제로 주어졌다.

학원에서 대비가 어려운 이런 문제가 나오자 학부모들이 당황하는 기색도 역력했다. 김 교사는 “많은 부모들이 중학교 때 아이가 문제풀이에 익숙해지지 않거나 선행학습을 해놓지 않으면 불안해한다”며 “그래서 이런 식의 수업이나 평가에 의문을 갖는다. 하지만 이렇게 스스로 개념을 익히는 공부를 해봐야 고교에서 추론이나 원리를 적용하는 문제가 나왔을 때 그걸 스스로 풀 수 있다”고 했다.

‘질문이 있는 수업’을 하자 수학시간에 무기력했던 친구들이 조금씩 변하는 모습도 보여주고 있다. 김 교사는 “수학 기초가 없어 흥미를 못 느꼈던 한 친구가 어느 날 ‘수학 문제집 한 권만 달라’고 말해서 놀랐다. 수업에 흥미를 붙이는가 싶었는데 수학을 다시 시작해 봐야겠다고 느꼈던 것 같다”고 했다.

책 읽고 ‘질문’에서 출발하는 모둠수업

“이번에는 각 조별로 선생님이 정해준 책의 대목들을 읽어보고, 그 부분에 대해 다른 조원들한테 설명을 해줍시다. 이 조는 48쪽 ‘유전자 정보는 당사자에 국한하지 않고 자손들에게도 영향을 줄 수 있다’라는 대목을 읽고 친구들에게 설명해주면 됩니다.”

지난 25일 오후 1시30분. 경기도 용인시에 위치한 대안학교인 소명중고교 8학년(중2) 경청반의 국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학생들 책상 위에는 ‘소나무’라는 이름의 교재와 이날 수업에 쓰인 책 <생명윤리 이야기>가 놓여 있었다.

이 학교 국어 수업은 책을 읽어 온 뒤 친구들끼리 내용을 이해하는 시간을 갖고, 소나무에서 제시하는 활동 질문 등을 함께 풀어가는 식으로 진행한다. 교사들이 직접 개발한 소나무 교재에는 학교에서 제시하는 필독서와 연동한 질문과 관련한 설명 등이 적혀 있다. 수업시간에는 교사의 설명보다 ‘질문’을 통해 학생들이 스스로 말하는 비중이 훨씬 더 크다. 질문에도 단계와 체계가 있다. 허용회 교사의 수업은 보통 ‘출발질문’(동기유발형), ‘전개질문’(내용이해형), ‘도착질문’(일상의 문제 적용형)을 단계별로 제시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수업 중반에는 아이들 스스로 일상의 질문을 던지는 모습도 보였다. “근데 유전자 정보를 미리 알면 좋은가?” 이원빈군은 “언제 죽을 줄 알아야 준비를 하고 좋지”라고 대답했다. 이서현양이 “한 시간 뒤에 죽는데 너 공부하겠어?”라며 받아쳤다. 모둠에선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원빈군과 또 다른 남학생 한명이 동시에 “그래야 제대로 놀지”라고 또 대답했다. 모둠별 문답이 오가던 중 허 교사가 생각의 폭을 넓히는, 더 확장된 질문을 건넸다. ‘범죄자 신상정보 등을 공개해도 될까?’라는 질문이었다. 학생들 사이에선 또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 “범죄를 저지르면 신상정보가 모두 공개되니까 취직도 못하고 악순환이 계속될 겁니다.”(최지온군) “애초 범죄 자체를 저지르면 안 됩니다.”(윤도은양) 어떤 모둠에서는 성폭행이나 살인 등 중죄를 지었을 때만 신상정보를 공개하자는 안이 나오기도 했다.

공교육 교사로 있다 대안학교에 온 지 3년째. 공교육에 있을 때 허 교사는 질문이 있는 수업을 하지 못했다. 주어진 학기 안에 진도를 빼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질문으로 이루어진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성을 보이고, 자존감도 키운다는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동료 교사, 김현섭 소장 등과 함께 매주 학습동아리 ‘질그릇’(질문을 담는 그릇) 모임을 열고 있다. 허 교사는 “‘이런 질문 좋더라’ 등 노하우를 공유한다”며 “아이들이 질문을 통해 자기주도적으로 입을 열고, 스스로 공부하는 걸 봤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다”고 했다.

김청연 <함께하는 교육> 기자 carax3@hanedui.com

http://www.hani.co.kr/arti/society/schooling/74612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