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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혁신

진로와 교육과정이 만나면?

by 김현섭 2016. 12. 23.

모든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학교?

 

몇 년 전 북유럽 교육탐방을 갔을 때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은 장면은 핀란드 인문계 고등학교 수업 장면이었다. 특별한 수업 방식(?)을 기대했던 핀란드 일반 수업은 의외로 한국 수업 모습과 비슷했다. 기본적으로 차분하면서도 교사 주도형 수업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교사가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강의 중간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하고 학생들이 그 질문에 대하여 자기 생각을 잘 펼쳐 나갔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수업이 시작하기에 졸릴 법도 했지만 수업 시간에 아무도 자지 않고 진지하게 학생들이 수업에 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 진학률은 약 30%이고, 나머지 70% 학생들은 직업계 고등학교에 진학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고졸자와 대졸자의 실질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보니 공부하고 싶은 사람, 대학가고 싶은 사람만 인문계 고교에 진학하니까 전반적인 수업 분위기가 좋았던 것이었다.

한국 인문계 고교의 수업 장면을 살펴보면 핀란드 학교 수업과 비교가 되는 부분이 많다. 인문계 고교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교이지만 중학교 내신 성적 기준 90%가 넘는 학생들도 진학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대학 진학이 쉽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최하위권 학생들이 일반 인문계 고교에 다니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하위권 학생들이 기존 일반 인문계 교육과정을 잘 따라 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일반 인문계 고교에서 하위권 학생들이 소수였기 때문에 이들을 무시하고 수업을 할 수 있을 수 있었겠지만 이제는 그렇게 접근하기 힘들게 되었다. 학교 서열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중상위권 학생들이 특목고나 자사고, 특성화고 등으로 진학하면서 중하위권 학생들이 일반 인문계 고교에서 다수를 차지하는 현상이 일어났다. , 수능으로 대학가기 힘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능 맞춤형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하위권 학생들에게는 기존 수업 내용을 따라가기 힘들다 보니 결국 학습을 포기하고 학습무기력에 빠져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등의 행동을 하게 된다.

최근 오산 모 고교에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의 수업을 코칭하였다. 오산 지역은 비평준화지역인데, 이 학교는 그 지역에서 학습 수준이 낮은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학교이다. 교과서대로 수업을 진행하면 다수의 학생들이 수업 흐름에 잘 따라가기 힘들어 한다. 그래서 이 선생님은 교과서 내용을 줄여서 핵심적인 것만 선택하여 수업을 했는데, 문제는 소수의 중상위권 학생들이 학습 내용이 적다고 불만을 표시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교사들처럼 교과서 내용에 충실하게 수업을 하면 다수의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것을 아는데, 그렇게 수업 방향을 돌리기에도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수업을 풀어가야 할지 고민하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러한 문제는 교사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풀어가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대안학교에 다니는 고2 학생 민철(가명)은 최근 자퇴를 했다. 이 대안학교는 학생들의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학교였는데, 2년 동안 학교 생활을 하면서 자기 진로 방향을 결정했다. ‘래퍼를 하겠다고 방향을 정하고 실용음악 학원에 등록하였다. 그런데 학교에서 배우는 교육과정이 자기의 꿈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자 점차 수업에 소홀하게 되었다. 결국 학교 생활과 학원 공부를 병행하기 힘들어서 고민 끝에 학교를 자퇴하고 학원에만 나가기로 하였다.

그렇다면 학습 수준이 다르고 진로 방향이 다른 학생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학교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할까?

 

충남 삼성고의 학생 선택 진로별 교육과정 운영 이야기

 

충남 삼성고등학교는 충청남도 아산시 탕정면 명암리에 위치한 자율형 사립 고등학교로서 삼성그룹이 이 지역 회사에 다니는 자녀들을 위해 세운 학교이다. 삼성고는 학생들의 진로 진학에 맞는 학생 선택 진로별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기존 대학 학과들을 분석하여 3계열, 8과정으로 삼성고 교육과정을 만들어 학생들이 입학과 함께 자신의 진로와 적성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이 특정 과정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자연공학계열

(1) 자연과학 과정 (2) 생명과학 과정 (3) 공학 과정 (4) IT 과정

인문사회계열

(5) 국제인문 과정 (6) 사회과학 과정 (7) 경제경영 과정

예술체육계열

(8) 예술체육 과정

 

각 과정별로 설치된 다음의 과목들 중 4과목(20단위)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1) 자연과학 과정 : 수이 논리학, 고급수학1,2, 고급물리, 물리실험, 과학사 및 과학 철학, 고급 화학, 화학 실험, 환경과학, 과제 연구

(2) 공학 과정 : 공학 기술, 과제연구, 고급물리, 고급 수학1, 로봇 제작, 전자회로, 제품 디자인

(3) IT 과정 : 정보과학, 과제연구, 고급물리, 고급 수학1, 정보통신, 자료 구조, 디지털 논리 구조

(4) 생명과학 과정 : 과학, 생명과학 실험, 고급 생명과학, 과제연구, 고급 수학1, 가정 과학, 농업생명과학, 식품과 영양

(5) 국제인문 과정 : 고전문학, 영어토론, 심화영어회화2, 중국어2, 일본어2, 중국어 작문, 세계사, 국제정치, 국제법, 국제관계와 국제기구, 사회과학방법론, 현대문학감상, 교육학, 논술, 논리학

(6) 사회과학 과정 : 법과 정치, 세계사, 동아시아사, 국제정치, 국제법, 국제관계와 국제기구, 한국의 사회와 문화, 비교 문화, 세계 문제, 사회과학방법론, 논술

(7) 경제경영 과정 : 국제경제, 사회과학방법론, 경제경영수학, 경영일반, 시용경제, 논술, 논리학, 마케팅과 광고, 글로벌 경영

(8) 예술체육 과정 : 체육(체육전공실기, 단체운동, 체력운동, 스포츠경기체력), 음악(음악이론, 합창·합주, 시창·청음, 공연실습), 미술(드로잉, 입체조형, 평면조형), 예술(영화 창작과 표현, 영화감상과 비평)

 

학교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디플로마를 만들어 그 기준에 충족한 학생들에게 디플로마를 수여한다. (디플로마란 교육기관에서 만든 증서로서 특정 과정이나 학위를 마쳤을 때 주어진다)

디플로마를 취득하려면 학생들은 공통과목 48단위, 계열선택 82단위, 자유선택 30단위, 과정선택 20단위를 이수하며, 자신의 진로와 관련된 논문 또는 창작물을 제출해야 한다.

 

공통과목(48단위) : 한국사, 경제, 생활 교양, 예술체육, 물리, 화학, 생명과학

계열 선택(82단위) : 자연공학(국어, 수학, 영어, 과학), 인문사회(국어, 수학, 영어, 사회), 예술체육(국어, 수학, 영어, 수학·과학·사회·예술체육 중 선택)

과정 선택(20단위) : 자연과학 과정, 생명과학 과정, 공학 과정, IT 과정 국제인문 과정, 사회과학 과정, 경제경영 과정, 예술체육 과정

자유 선택(30단위) : 계열 선택, 과정 선택 개설된 5단위 과목 중 6과목 선택

논문 또는 창작물

 

또한 기존 디플로마 외에 추가로 디플로마를 개설하여 희망에 따라 특색 있게 디플로마를 이수할 수 있도록 하였다.

 

융합 디플로마 : 학생이 선택한 디플로마 외에 다른 과정을 추가적으로 신청한 경우

고급 디플로마 : 개설된 교과 중 가장 심화된 과목을 이수하여 학업 우수성을 드러내고 싶은 경우

이중언어 디플로마 : 외국어로 진행되는 교과목을 이수하여 외국어 수강 능력을 드러내고 싶은 경우

 

이러한 교육과정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교육과정 중심으로 학교 업무 부서를 재편하였다. 교육과정 센터를 설치하고 학과장(교과군 대표)이 각 디플로마별 책임자를 하면서 함께 근무하면서 수시로 교육과정 운영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실제 학교 교육과정 운영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도 있었지만 교육과정개발센터를 중심으로 소통하면서 그 문제점들을 풀어가고 있다.

기본적으로 교과교실제로 운영하면서 계열별로 교과클러스터를 구축하여 건물을 특별교과동, 행정동, 자연과학동, 인문예술동으로 구분하여 활용하고 있다. 교사별로 개별 교실을 만들어 교사가 자기 교실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교사들은 동교과 교사들을 중심으로 교과연구실에서 6-8명 단위로 근무하면서 학과 조교 1명이 배치되어 행정 업무를 보조하고 있다.

학생 이동 동선을 줄이기 위해 중앙 위치에 홈베이스를 설치하였고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교육과정개발센터를 중심으로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약 1,000명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지만 코딩 개념을 도입하여 시간표 중간에 공강 시간이 없도록 시간표를 구성하였다.

 

삼성고의 디플로마 교육과정 운영 사례는 우리에게 교육과정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 공교육 안에서도 교육과정 혁신을 통해 모든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진로 진학과 교육과정을 결합하여 진로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대학 운영 시스템을 접목하면서 교육과정에 초점을 두어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도 주목을 끈다.

인공지능으로 대변되는 제4차 산업혁명을 목전에 둔 현 상황에서 학교가 미래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어떻게 변화하고 노력해야 할지 교육과정적 측면에서도 지속적으로 고민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