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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질문 찾기보다 정답 찾기(조선일보 2017/07/03)

by 김현섭 2017. 7. 3.
 
◇AI 시대엔 '정답 찾기'보다 '질문 찾기'

지금까지 한국 기업은 선진국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전략으로 빠르게 발전했다. 그러나 이젠 방대한 인구와 저렴한 노동력을 앞세운 국가들이 새로운 패스트 팔로워가 됐다. 한국이 살아남는 길은, 새 항로를 개척해 수익을 올리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지난 3월부터 서울대 자연과학대가 진행 중인 '교육 개혁 프로젝트'에 참가한 교수들의 생각이다. 프로젝트 총 책임자인 유재준 교수를 포함한 교수 13명은 강의 내용을 토씨 하나 안 놓치고 달달 외우는 서울대생들을 보면서 '이래선 안 된다'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대학원생도 시킨 일은 잘하는데, 자기만의 연구 주제를 찾지 못했다. 중지(衆志)를 모으다 보니 '기존 지식을 이해하는 데 그쳐선 좋은 연구를 하는 데 필요한 창의력이 나오기 어렵다. 질문하는 법부터 가르치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유 교수는 "정답은 AI가 찾으면 된다. 인간에겐 정답 찾는 능력이 아니라 '문제 찾는 능력'이 필요한 시대다. 새로운 논제를 발견하려면 끊임없이 다각도로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했다.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교수들은 자신이 맡은 교양·전공 강의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학생의 질문을 유도하고 있다. 지난 1학기에 질문 및 토론 수업을 시작한 최선호 물리천문학부 교수는 "자기만의 언어가 없는 학생은 창의적 연구를 하기 어렵다. 질문·토론을 통해 스스로 생각을 전개하고 문제 찾아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했다.

◇학습력·협업력 키우는 마법의 말 '어떻게 생각하니?'

초·중·고교에서도 경직된 교실 분위기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김경오 성남 백현중 수석교사는 교실에 '질문 전용 칠판'을 마련했다. 수업 중 아이들이 한 질문 가운데 다 같이 생각해볼 만한 것을 골라 적고, 수업 후에도 언제든 궁금증이 생기면 포스트잇을 붙일 수 있게 했다. 김 교사는 "수업 중 나온 질문에 대해 함께 얘기하고 이를 내신 평가에 연결했더니 아이들의 몰입도와 이해도가 눈에 띄게 높아졌다"고 말했다. 허용회 용인 소명고 국어 교사도 수업 중 질문을 최대한 활용한다. 예컨대 주제가 의사소통이라면 ▲친하지 않은 사람과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미 형성된 무리에 끼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등 학생이 생활에서 자주 접할 만한 사례 위주로 질문하면서 흥미를 높인다. 책을 보여주고 '표지에 왜 빨강을 썼을까'(책 디자이너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 '제목은 왜 이렇게 정했을까'(책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법) 등을 묻기도 한다. 처음에는 교사가 질문하지만, 점점 학생들도 자유롭게 질문을 던진다. 허 교사는 "질의응답을 통해 자기주도력을 높이고, 다각도로 생각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협업력·사회성도 기를 수 있다. 최대규 서울 남산초 수석교사는 "사소한 것이라도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의견을 묻다 보면 아이가 대답을 찾는 과정에서 사고력을 기를 수 있다. 다른 사람 생각을 가늠하면서 소통력과 인성도 발달한다"고 설명했다.
 
◇방대한 교과 분량·선행학습이 질문을 집어삼켰다

문제는 여전히 대부분 한국 학교에서 질문 수업은 딴 세상 얘기라는 점이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입학을 앞둔 A(19)군은 "어릴 적부터 '왜?'라는 질문을 달고 살았더니 학교에서 자주 혼났다"고 했다. 좋아하는 단원을 밤새 공부해 심화 질문했을 땐 교사에게 "쓸데없는 말 하지 마라"고 면박당했다. "왜 삭발을 금지하느냐"고 물었을 땐 선도부로 불려갔다. A군은 "미국 가서 실컷 질문하며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A군 경우처럼 한국에서 질문하는 아이는 눈치 없거나 특이한 학생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최근 서울대 국어교육연구소는 일주일에 질문을 3회 이하로 하는 학생이 58.4%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교사들은 "실제론 질문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어떤 수업에서든 질문이 없을 수는 없다. 수업 내용을 이해했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간 내용이 궁금할 것이고, 이해 못 했다면 기초 지식에 대한 추가 설명 요청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김현섭 수업디자인연구소장에 따르면 보통 교과 양이 급격히 늘어나는 4학년부터 교실에서 질문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아이들이 새로운 개념 받아들이기에만 급급해진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학습 목표를 줄였어야 했는데 교과서 쪽수만 줄였다. 해외에선 대학 때 배우는 미·적분이 여전히 고교 과정에 들어 있다"고 했다. 학습량이 많으니 교사는 진도 맞추기 바쁘고 학생들 사이에선 조용히 수업을 따라가야 한다는 무언(無言)의 합의가 이뤄진다.

선행학습도 아이 입을 다물게 한다. 학원에서 예습을 끝내고 온 다수 학생이 '이미 푸는 요령을 안다. 이젠 답만 찾으면 된다'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이다. 김경오 교사는 "짧은 시간에 효율적으로 답을 찾도록 가르치는 교육은 아이가 다양한 사고를 하기 어렵게 한다. 해결 과정을 충분히 고민하면서 자기주도적으로 학습해야 한다"고 했다. '정해진 답'을 찾지 못하면 '틀렸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교사에게 말대꾸하면 안 된다는 상명하복(上命下服) 문화도 질문을 사라지게 한 원인이다.

이광형 카이스트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겸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은 "당장 몇 년 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대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을 통해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떠올리도록 하는 교육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