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이야기

교바사 인터뷰 기사

by 김현섭 2014. 9. 25.

교육을 찾는 사람들이 인터뷰 기사에 제 이야기가 실렸어요. 여기에 기사문을 올립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떤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해 본 적 있으시죠? 그리고 그런 모임에서 주변 사람 신경 안 쓰고 성공을 위해서만 질주하는 사람, 대충 시간만 때우고 남이 만든 성과에 슬쩍 올라타는 사람, 또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모임 자체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사람 꼭 한 번쯤 마주치지 않으셨나요? 아이들이 생활하는 교실에서도 예나 지금이나 그런 일들은 흔히 일어납니다. 교사가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일제수업의 한계를 넘고자 여러 수업 방법이 개발되고 실천되는 가운데, 어찌 보면 가장 흔히 볼 수 있는 것이 모둠을 지어 학습하는 형태이다 보니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모둠 학습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줄기차게 노력해 온 선생님들도 계십니다. 또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러한 또래 가르치기를 통해 교실이 새로운 지식을 구성하고, 관계를 맺는 방식을 배우며, 미래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공동체 경험을 체득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분들도 계십니다.

한국협동학습연구회를 만들고, 십여 년 리더로서 활동해 오신 김현섭 선생님은 좋은교사운동 좋은학교만들기 위원장, 서울시교육청 혁신학교 정책자문위원, 교육방송 선생님이 달라졌어요수업코치 등 다방면에서 활동하면서 현재 한국협동학습센터 소장, 좋은학교연구소장으로 수업 혁신과 학교 혁신을 위해 노력해 오신 분입니다.

인생의 후반전에도 선생님, ‘교육을 위해 살고 싶다고 하시는 김현섭 선생님의 수업 이야기, 함께 들어볼까요?

 

 

 

 

협동학습이란?

 

교바사) 협동학습이란 무엇인가요? 몇 명씩 모둠을 지어 학생들끼리 과제를 수행한 후에 대표가 발표하는 일반적인 모둠활동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김현섭) 흔히들 말하는 조별학습, 협동학습, 협력학습 모두 학생들 사이에 사회적 상호 작용을 통해 학습 효과를 극대화하는 또래 가르치기에 해당합니다. 교사의 일방적인 지식 전달이 가진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이죠.

우선 조별학습은 비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예요. 쉽게 말해 모둠을 지어서 어떤 주제에 대해 자유롭게 토론해 보자이런 형태죠. 그런데 이렇게 하면 꼭 일벌레’, ‘무임 승차자’, ‘방해꾼같은 학생들이 나타나거든요. 하는 애들만 열심히 하고 일부 학생들은 그런 일벌레학생들의 성과를 그저 수용하게 되는 거죠. 그 밖에도 활동 시간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조별로 학습 편차도 많이 벌어져요. 교사 편에서 보자면 아이들에게 활동을 시키는 건 쉽지만 목표를 달성하는 방향으로 통제하는 데 어려움이 많죠. 자칫 조끼리 경쟁이 지나치게 심해지는 경향도 나타나고요.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개발된 게 협동학습이에요. 사람이 혼자 어떤 일을 할 때와 여럿이 모여서 할 때, 행동이나 심리가 달라지는 걸 규명하는 게 사회 심리학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이론적 토대를 교육학에 적용한 거죠. 좀 더 구체적으로 협동학습의 기본 원리를 말씀드리자면, ‘긍정적 상호 의존’, ‘개인적인 책임’, ‘동등한 참여’, ‘동시다발적인 상호 작용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원리를 효과적으로 구현하기 위해 협동학습에서는 신호, 보상, 세부적인 학습 단계 등의 굉장히 정교하게 조직된 틀을 사용합니다.

 

교바사) 조별학습이 비구조화된또래 가르치기인데 반해, 협동학습은 구조화된또래 가르치기라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협력학습과는 어떻게 다른가요?

 

김현섭) 협력학습은 교사가 치밀하게 계획된 틀을 제시하기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어요. 협동학습이 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라면 협력학습은 탈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구조화라는 말의 의미는 활동의 단계화, 개인별 역할 세부화, 보상 활용 등을 통해 협동하기 싫어도 협동할 수 밖에 없게 분위기를 이끌어간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탈구조화는 그러한 구조화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학생 스스로 협력하여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실제 수업에 있어서 탈구조화는 자칫 비구조화와 혼동되기 쉬워요. , 협력학습과 조별학습이 교실에서는 실제로 구분되기 힘들다는 것이죠. 최근에는 협력학습을 학생과 학생 사이의 관계 뿐 아니라 교사와 학생, 학급과 학급, 학교와 지역 사회까지 관계를 확대해서 이해하기도 합니다.

역사적으로 접근하자면, 미국의 이론이 우리나라에 번역되기 시작한 무렵에 협동학습이나 협력학습이란 용어가 혼용되다가 협동학습의 이해와 실천이란 책이 나오면서 협동학습이라는 용어로 점차 정리가 됐죠.

그런데 2010년 이후 혁신학교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구성주의에 토대를 둔 진보 성향의 교육학자들이 기존의 협동학습과 그 차이점을 구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협력학습이라는 용어를 새롭게 사용하게 된 거예요.

그동안 협동학습 연구자들이 교수·학습 방법과 수업 모형에 초점을 맞추어 고민을 심화시켜 왔다면, 구성주의에 뿌리를 둔 협력학습 연구자들은 그런 구체적인 담론에 앞서 철학적 담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할까요? 외국 사례를 보면, 그 두 줄기의 이론과 실천이 점차 결합되는 분위기인데 우리나라에는 좀 다른 학술적 맥락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바사) 협동학습과 협력학습은 그러면 철학적 기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나요?

 

김현섭) 협동학습은 사회심리학을 기반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부분적으로 행동주의 심리학을 받아들이고 있지요. 최근에는 구성주의에 영향을 받아 발전하고 있죠. 그런데 구성주의에 기반한 협력학습 방법론은 행동주의를 비판하는 측면이 도드라집니다. 그러나 결국은 학습 공동체를 이뤄야 의미 있는 배움이 일어난다고 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훨씬 많아요. 다만 제가 아쉬운 것은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통점보다 차이를 부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둘은 다른 것인가 같은 것인가, 다르면 어느 게 우월하냐를 속 시원하게 듣고 싶어들 하시는 거죠.

그런데 수업은 사람이 사람과 함께 하는 일이라 삶의 문제예요. 그래서 어떤 혁신적인 방법이라도 그것만으로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오히려 통합적이고 유연한 사고가 필요합니다. 교사에게는 백인백색(百人百色), 학교에게는 백교백색(百校百色)이죠.

 

교바사) 그렇게 이론적 토대는 다르지만, 실제로 현장에서는 크게 다른 형태로 적용될 것 같지는 않은데 어떤가요?

 

김현섭) 그렇습니다. 실제로 협력학습 연수에서 제가 강의를 합니다. 철학적 기반을 따진다면 구성주의에 토대를 둔 협력학습의 이론이 상대적으로 탄탄하지만, 구체적인 교수·학습 방법인 어떻게의 측면을 보면 상대적으로 빈약합니다. 그에 비해 협동학습은 거대 담론보다는 미세 담론이 강합니다. 그런데 이 둘은 학습공동체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로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거든요. 물론 협력학습 연구자들은 협동학습이 지나치게 구조에 편향된 게 아니냐, 수업이 교사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냐, 행동주의 심리학에 기반한 보상은 한계가 있다는 등의 비판을 합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 보완적인 측면이 큽니다. 왜냐하면 협력학습은 거대 담론(철학)이 풍부하다면 그에 비해 협동학습은 미세 담론(교수학습방법)이 풍부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교수·학습 방법의 중요함

 

교바사) 2000년에 협동학습연구회를 직접 만드시고, 또 작년에는 수업을 바꾸다라는 책도 내신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책을 보니까 초창기와 비교해서 고민의 방향이나 깊이가 좀 달라지신 것 같아요. 지금 시점에 우리나라 교육 현장에서 협동학습이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어요.

 

김현섭) 1998년쯤 협동학습이 막 소개되었을 때는 개념만 정리되어 있었을 뿐 실제 영향은 상당히 미흡했어요. 그런 시점에 좋은교사운동에서 세미나를 열었는데 저는 거기에 참여했다가 반하게 됐어요. 직접 체험해 보는 참여형 연수는 그게 처음이었으니까요. 거기다 막상 교실에 도입해 보니 진짜 좋았던 거죠.

그런데 교실에서 직접 해 보니 금방 한계가 왔어요. 당연하지 않겠어요? 고작 하루 연수받고 그걸로 일 년을 우려먹으려 했으니까요. 다행히도 저는 새내기 교사 시절부터 수업 지도안을 같이 연구하고 실천하는 교과 모임 활동을 해 왔던 경험, 그러니까 교사 공동체에 대한 경험이 있었어요. 그래서 협동학습에 대해 연구하는 수업 동아리를 만들게 된 거죠. 그게 나중에 연구회로 발전했고, 더 지나서 전국에 보급해 보자 싶어서 결국 여기까지 왔네요.

 

교바사) 새로 알게 되신 협동학습을 혼자 실천하는 데 한계를 느껴서 함께를 추구하다 보니 지금 이 자리까지 오신 거군요?

 

김현섭) 이런 기나긴 여정이 있을 걸 그때 알았다면 시작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리더로 있다 보니 더 열심히 하게 됐고, 15년 정도 세월이 쌓이니 이제는 협동학습이 교사들에게 낯설지 않은 단계까지는 온 것 같네요.

그동안의 제 고민의 흐름은 대략 이런 방향으로 진행이 되었어요. 1990년대 초반에는 주로 수업 방법, 그러니까 어떻게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까 무엇을교육할 것인가 하는, ‘교육과정으로 생각의 폭이 넓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대학원에서 교육과정학을 전공하게 된 거고요. 수업 운동을 해보니까 교육과정-‘무엇을이나 교육철학-‘에 대한 연구만으로는 부족하고, 여전히 기술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당시만 해도 수업 방법은 새내기 교사나 할 만한 고민이고, 경력이 쌓이면 철학적 고민을 해야 된다는 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졌거든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무엇을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교바사) 그럼 지금도 교직 사회에서 수업 방법은 아직 숙련되지 않은 새내기 교사들이나 고민하는 것이라고들 생각하시나요?

 

김현섭) 그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아직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사례는 많이 봐요. 철학적 기반에 대한 담론은 굉장히 많은데, 구체적 방법론은 빈약한 경우도 많고요. 실제 학교 가 보면, 그런 불균형한 상태에서 한계에 부딪히는 교사들도 많이 봐요.

1990년대에 교수·학습 방법과 관련한 열린교육운동이 일선 교사들 사이에 일어났어요. 그런데 나중에 정부에서 이를 교육 혁신 방편으로 주도하게 됐고, 일부 보수 언론이 이를 비판하면서 학력 저하, 교실 붕괴의 주범으로 열린교육을 겨냥해서 몰았죠. 그러다 결국 나중에는 열린교육이라는 말 자체가 사라졌어요.

협동학습 운동을 하면서 이러한 열린교육 운동을 반면 교사로 삼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연구회는 관(교육부와 교육청)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철저하게 아래로부터의 혁신 운동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지켜 왔어요. 그래서인지 2006~7년까지는 크게 주목을 못 받았어요.(웃음) 직접 연수에 참여하신 분들의 호응은 뜨거웠지만 모임에 참여하는 교사 수도 적고 지역 모임 자체도 그리 활발하진 않았어요. 그런데 2007년 즈음해서 수업에 한계를 느낀 교사들의 관심이 협동학습으로 모이는 게 느껴졌죠. 거기다 보수 성향이든, 진보 성향이든 학생들 사이의 협동을 추구한다는 것에 긍정적으로 평가를 했고요. 최소한 수업 시간에 잠자는 애들은 없으니까요. 거기다 학습 효과까지 좋다는 결과도 많았고요.

그 이후에 아까 말씀드렸던 협력학습이 이론적 토대를 세우고 등장하면서 지금은 또 다른 분위기가 생겨나고 있는 겁니다.

 

교바사) 그럼 어떻게 수업을 바꾸다라는 책을 내시게 된 건가요?

 

김현섭) 2007년에 이우중·고등학교에 협동학습 연수 강사로 초청받아 간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어떤 수업을 참관했는데, 수업 강평회 하는 것을 보면서 수업만이 아니라 학교 조직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2012EBS ‘선생님이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에 수업 코치로 참여하면서 기존 수업 장학의 한계를 깨닫게 되었어요. 그때 수업 코칭을 하면서 절감한 게 누가라는 점도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교사들의 수업을 보면서 수업의 문제 해결자는 수업자다라는 생각을 한 겁니다. 수업을 참관한 사람이 외부자로서 문제 해결을 주도할 게 아니라 수업을 하는 교사가 스스로 자신의 장점, 단점을 인식하고 해결 방안 역시 스스로 찾아야 수업 혁신이 제대로 이루어지더라고요.

어떻게무엇을을 더했고, 이제는 누가에까지 고민의 폭이 넓어진 거지요. 그래서 2011년까지 무엇어떻게가르쳐야 하는가, 더불어 학교 조직을 어떻게 바꾸어 나갈 것이냐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누가’, ‘가르쳐야 하는가와 더불어 프레임, 관계, 배움, 교사 내면, 티칭 스타일 등까지 고려하면서 수업 이야기를 풀어가는 중이에요.

그러다 보니, 협동학습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확장된 관점에서 보게 된 거죠. 한편으로 기존의 배움의 공동체라든지 협력학습을 연구하는 여러 교사들로부터 활동이 있다고 배움이 일어나지 않는다’, ‘외적 보상은 한계가 있다등의 비판도 지속되어 왔어요. 그러나 저는 그 비판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배움의 공동체가 제시하는 해법이 온전하다고 보지는 않거든요. 만약 A가 아니라 해도 정답은 B가 아닐 수 있어요. CD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A가 아니니까 B다라는 식의 접근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초창기의 고민에 그간의 제 활동에서 느낀 바를 더하고, 또 다른 분야에서 지적하는 비판에 답하는 성격으로 수업을 바꾸다라는 책을 내게 됐어요.

 

협동학습의 실제와 노하우

 

교바사) 협동학습을 적용한 수업 중에서 인상 깊은 사례가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려요.

 

김현섭) 협동학습 수업 모형을 보면 아시겠지만, 학교급별로 과목별로 정말 다양하거든요. 그래서 어떤 사례를 지목하기는 어려워요. 너무 많은 거죠. 에듀니티에 원격 연수나 직무 연수를 마련하면서 거기에 다양한 실천 사례를 올려놓았어요. 또 한국협동학습연구회 홈페이지나, 유튜브에서도 협동학습 수업 동영상은 많이 올라와 있어요. 제 소개보다는 직접 찾아보시기를 권해 드려요.

협동학습 수업 동영상을 볼 수 있는 곳

에듀니티 행복한연수원 http://happy.eduniety.net

한국협동학습연구회 cooper.or.kr

 

교바사) 그럼 협동학습을 적용한 수업에 대해 학생들은 어떻게 평가하나요?

 

김현섭) 최소한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경우는 없어요. 요즘 고등학교에 직접 가 보면 알겠지만 수업 시간에 상당수의 학생들이 자거나 다른 과목을 공부하는 등 수업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협동학습을 하게 되면, 그런 상황이 벌어질 여지가 생기질 않는 거죠.

아이들에게 직접 들어 보면 주로 재밌다, 활동할 게 많다, 처음엔 힘들었지만 끝나고 나니 뿌듯하고 유익했다…… 이렇게들 평가해요. 물론 공부 잘하는 애들은 처음에 탐탁지 않아 하죠. 혼자 하면 훨씬 효율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간상으로도 그렇고 공부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과 어울려서 무언가를 한다는 거 자체에 익숙하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협동학습이 인생에 있어 훨씬 더 중요한 가치를 전달하는 수업이라고 생각해요. OECD가 말하는 미래 사회의 핵심 역량도 자율적으로 행동하기’, ‘도구를 상호 작용적으로 활용하는 능력’, ‘사회적 이질 집단에서 상호 작용하기거든요. 협동학습이야말로 이런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안성맞춤이죠. 이질적인 아이들이 만나 자율적으로 도구를 활용하면서 문제 해결하는 과정이니까요.

 

교바사) 연수에 참여하신 후 실제 수업에 적용해 보신 교사들은 어떻게들 평가하시나요?

 

김현섭) 협동학습 맛을 알게 되면 강의식 수업은 못한다고들 하십니다. 교사가 수업을 하면서 가장 상처받는 순간 중 하나가 학생들이 자거나 딴 짓을 하면서 스스로를 수업에서 배제시키는 경우거든요. 그런데 협동학습을 하게 되면 자는 애들이 없을 뿐 아니라 모든 아이들이 직접 참여하게 되거든요. 그렇게 아이들이 스스로 수업의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이 변화되는 모습을 교사는 아주 민감하게 느끼게 돼요. 그래서 만족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교바사) 협동학습을 하게 되면 단순히 활동이 재미있고, 학습 효과가 높다는 일시적인 변화를 넘어 교사나 학생들의 자존감이나 내면의 힘을 길러 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김현섭) 조별학습으로 토론 수업을 진행할 때 얼핏 보면 굉장히 활발하게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도 말발이 세거나 공부를 잘하는 애들이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요. 그런데 협동학습은 구조적으로 모두가 참여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 내성적이거나 성적에서 좀 뒤쳐지는 아이도 자기 역할을 해낼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외향적인 아이들, 공부 잘하는 아이들과의 교류도 일어나게 돼요. 자존감이 높아지는 건 그런 활동의 결과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거죠.

또 짐작하다시피 공부를 잘하는 애들은 뭐든 혼자 하는 데 익숙하지만 사회성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협동학습은 말로만 함께 사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외치는 게 아니라 사회적 기술을 익히는 경험을 제공해요. 주어진 과제를 같이 해결해야만 하는 구조니까 사회적 기술이 없이는 목표를 이룰 수 없거든요.

저는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비판하는 말들이 많은 것이 리더의 공동체에 대한 책임이나 부채 의식이 낮아서라고 보거든요. 사실상 현재의 리더들도 그렇게 배우며 성장한 거죠. 그래서 협동학습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부터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배려하는 훈련을 하게 되는 거니까요.

 

교바사) 그렇다면 실제로 협동학습을 수업에 적용해 보려고 할 때,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은가요? 특별히 주의할 점은 없는지도 말씀해 주세요.

 

김현섭) 교사가 자기 교과, 자기 스타일에 맞는 한두 가지 활동만 골라서 사용할 것을 권합니다. 처음 협동학습을 접해 본 분들이 이것저것 재미있으니까 전부 활용해 보자는 식으로 덤벼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활동이 많다고 그에 비례해 배움이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강의식 수업을 욕하지만 사실 강의식 수업은 장점도 확실해요. 개념을 설명하고, 지식을 전달할 때 굉장히 경제적이고 효율적이죠. 다만 강의식 수업을 45, 50분 지속할 때 학생들이 집중을 지속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는 거죠. “세상을 바꾸는 15이지, ‘세상을 바꾸는 50이 아니거든요.(웃음) 강의에 집중하는 시간이 초등학생의 경우 5~10, 중학생은 15, 고등학생은 20분 내외랍니다. 그러니까 주요 개념을 15분 내외로 설명했다면, 그 후엔 수업의 구조를 바꿔 줘야 학습 효과가 높아지는 거죠.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을 안 한다 싶을 때, 연예인 이야기나 다른 재미거리로 아이들의 흥미를 끌고 다시 수업으로 돌아가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그렇게 내용을 바꾸는 것은 별 효과가 없어요.

그러니 수업 내용이나 교사의 스타일에 따라 일제학습, 협동학습, 개별학습, 경쟁학습 등 다양하게 구조를 선택하고 적절하게 조직해서 진행하는 게 좋다는 겁니다.

 

교바사) 수업 내용에 따라 협동학습을 활용해야 한다는 말씀이신데, 과목별로 협동학습과 잘 맞거나 아닌 경우도 있지 않나요? 예를 들어 정답이 정해져 있는 과학이나 수학의 경우에도 협동학습을 원만하게 적용할 수 있나요?

 

김현섭) 교과별로 말하자면, 국어를 비롯한 언어는 기본적으로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활동이 기본이잖아요. 그래서 언어활동을 기반으로 하는 협동학습과 아주 잘 어울려요. 현재 개발되어 있는 200여 가지 방법 대부분을 국어과, 영어과에서는 활용이 가능하죠. 또 도덕이나 사회과도 교과 특성과 협동학습이 잘 맞아요.

그럼 수학과는 어떨까요? 흔히들 협동학습 형태가 안 어울릴 것이라 생각하시는데, 그게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일반적인 수학 수업이 개념 설명-예제 풀이-개인적 문제 풀이-테스트의 순서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 개인이 문제를 풀고 그 후에 협동학습을 활용해 모둠 문제 풀이 활동을 진행할 수 있어요.

보통 수업에서 학생들은 교사가 문제 푸는 걸 보는 구경꾼이 되잖아요. 만약 어떤 학생이 이해가 되지 않아 교사에게 1:1로 질문을 하게 되면 개별학습 형태가 되어 수업 진행에 역효과가 나기도 하거든요. 그런데 모둠 풀이 시간을 갖게 되면, 잘하는 아이가 뒤처진 친구에게 가르쳐 주고 서로 배우는 형태가 되면서 또래 가르치기가 자연스럽게 일어나요. 실제로 고등수학의 경우에 학생들의 평가도 좋고 참여율도 높다고 해요.

과학도 마찬가지로 실험 같은 교육과정에 구조와 틀이라는 협동학습의 최대 장점을 적용하면 충분히 효과적으로 수업을 구성할 수 있죠.

 

지금, 여기에서, 교육 주체의 발돋움을 위하여

 

교바사) 아무래도 협동학습이 활동 위주이다 보니 대학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에서 활용할 경우 학생이나 학부모의 항의가 있지는 않을까 염려되기도 해요. 실제 현장에서 학부모나 학교 측의 반응은 어떤가요?

 

김현섭) 제가 고등학교 재직 중일 때 과목 특성상 필요하다 생각되는 부분이 있어서 프로젝트 수업을 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야자(야간자율학습)를 해야 하니까 시간이 안 났던 거죠.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 컴퓨터실에서 과제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한 거예요. 그런데 당시에는 야자 시간에 컴퓨터실에서 인터넷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 많다 보니 프로젝트를 하는 학생들이 그 친구들한테 방해가 된 거죠. 때문에 주요 과목도 아닌데,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왜 그런 프로젝트를 해야 하느냐 이런 불만이 제기됐어요. 인터넷 강의 듣는 아이들에게 방해가 되고, 학기 중 야자를 운영하는 시스템에 혼선을 준다는 거죠. 그렇지만 그런 문제들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사항이에요. 그래서 학교 컴퓨터실 하나를 더 개방했고, 2학기 과제는 야자에 영향이 안 가도록 방학 중에 할 수 있게 계획을 했죠. 그런 식으로 학교 측의 항의를 잠재운 거죠.

그런데 재미있는 일은 그 이후에 일어났어요. 2학기 때 학교에 외부 손님이 오면 전부 제 교실로 보내는 거예요. ‘고등학교에서도 강의식, 문제풀이식이 아니라 다르게 수업할 수 있다!’ 이렇게 칭찬받는 수업이 된 거예요. 연말에는 우수 수업 사례로 뽑히기도 했어요. 고작 1년 만에 그렇게 평가가 역전되었죠.

그리고 두 해가 지나 그때 프로젝트를 했던 학생들이 고3이 됐어요. 그런데 그때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면서, 교과특기사항이 굉장히 중요해졌어요. 갑작스러운 변화에 미처 대비하지 못했던 교사들이 공부 잘하는 학생들 위주로 마치 글짓기하듯 몇 문장 적어 주던 때였거든요. 그런데 협동학습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프로젝트나 활동 등 직접 한 것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제가 컴퓨터에 보관하고 있던 자료를 토대로 입시를 위한 포트폴리오도 제공해 주고, 특기사항에도 굉장히 세세하게 기록해 줄 수가 있었어요. 그때 학생들이 우연히도 큰 혜택을 본 거죠.

저는 물론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될 걸 예상하고 한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그때 그 일을 겪으면서 내가 올바른 신념과 철학을 갖고 의미 있는 실천을 지속하는 게 중요하다는 깨달음을 얻었어요. 솔직히 협동학습 자체를 준비하는 과정도 그 결과를 기록하는 과정도 번거롭고 힘든 일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추구하는 교육적 의미를 위해 노력했더니 그런 결과를 얻게 된 거죠. 어떤 일이든 스스로 가치를 느껴서 진정성을 가지고 노력하면 언젠가 빛을 발한다는 걸 그때 알았죠.

 

교바사) 요즘 여기저기서 교사들의 번 아웃현상에 대해 언급되곤 하는데, 교사들이 그런 현상을 겪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또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김현섭) 학교는 교사들에게 끊임없이 에너지를 요구해요. 학교에서만큼은 교사가 학생들의 부모처럼 생활 지도도 해야 하고, 행정 업무도 해야 하죠. 물론 수업 준비나 진행은 기본이고요. 거의 만능인을 바란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모두들 처음엔 열정을 갖고 시작하지만 에너지를 쓰기만 하고 얻을 기회는 없으니 점점 지쳐 나가떨어질 수밖에요.

그럼 교사는 어떨 때 에너지를 얻느냐고요?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요.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쉴 때, 인정이나 공감을 받을 때, 또 배울 때 특히 필요와 배움이 일치될 때 그럴 때 에너지를 얻죠. 그런데 교사들의 삶을 보면,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바빠서 쉼은 없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시간도 나질 않아요. 다양한 연수가 많지만 필요에 맞는 연수는 찾아보기 힘들죠. 또 타인에게 인정이나 공감을 받을 기회도 턱없이 부족해요. 기껏해야 성과급 정도를 기대할 수 있죠. 정말 고생해서 무언가를 해도 인정 못 받고, 오히려 눈엣가시 취급을 받을 때도 있죠.

그래서 경력이 쌓일수록 내면에 상처가 깊을 수밖에 없고 극단적인 경우엔 냉소주의로 흐르기도 해요. ‘또 정권 바뀌고 나면 달라질 정책이야.’, ‘하는 척만 하면 돼.’ 이렇게 되더라고요.

어떤 분들은 이걸 요즘 유행하는 힐링으로 해결하려고도 해요. 그런데 제 생각엔 그 방식으로는 타인의 공감만 얻을 수 있을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어요. 결국 교사가 에너지를 얻을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야 해결될 문제죠.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건, 교사도 사람이라 내면에 자신만의 상처가 있고 거기다 일상의 관계에서도 늘 상처를 받는다는 거예요. 교사도 감정 노동자라고들 하잖아요. 늘 학생들, 동료 교사들, 교감 교장 선생님 등 사람 대하는 게 일이거든요. 그런데 안정적인 상태에 있을 때는 그 상처가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위기 상황이 될 때, 교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갈등 상황이 되면 그 상처가 튀어나와요.

수업 코칭을 하다 보면 그런 모습들이 보이는데, 대개는 교사의 성장 환경이나 교사로서 살아온 과거 경험에서 비롯되는 상처들이 그 원인이에요. 문제는 본인이 그걸 인식하지 못한다는 거죠. 그런데 교사가 자신의 생활이나 수업을 성찰하면서, 그 상처를 극복하게 되면 내면에 힘이 생겨서 상처 입은 치유자로 변화할 수가 있어요. 자신의 상처가 오히려 타인을 이해하고 그들을 감싸 안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는 거죠.

저 같은 경우는 굉장히 어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오랫동안 그게 콤플렉스였죠. 하지만 지금은 숨기고 싶었던 아버지에 대한 결핍이 오히려 부모님이나 다른 가족을 잃은 학생들을 위로하는 데 밑거름이 되고 있죠. 제가 가진 상처가 아이들에게 공감이나 위로의 출발점이 된 건데, 이렇게 되려면 교사가 자신의 콤플렉스를 인식하고 극복해야만 가능한 일이에요.

 

교바사) 교사들에게 자기 성찰, 수업 성찰이 얼마나 필요하고 또 중요한지를 알 수 있는데요, 특별한 계기 없이 교사들이 성찰을 시작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김현섭) 제가 교사의 전문적 학습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유 중 하나가 그런 점 때문이에요. 지금은 교사 사회에서 개인주의가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거든요. 수업이나 그 밖의 학교생활과 관련해서 동료들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어요. 학교 안에 교사들의 공동체를 만들면 학생들에 대해서 또 수업에 대해서 고민을 나누거나 자신의 내면에 대해서 많은 걸 깨달을 수 있게 될 거예요. 물론 별도의 수업 코칭을 통한 성찰도 필요한 지점이 있죠. 제가 협동학습에 이어서 수업 코칭에 관심을 갖고 실천 중인 것도 그와 유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어요.

 

교바사) 수업 성찰과 더불어 지속적인 수업 혁신을 위해서는 교사들에게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김현섭) 저는 그 문제 역시 해답은 수업 코칭과 교사들의 수업 공동체라고 봐요. 협동학습 연수를 1년에 700여 명이 듣고, 95% 이상이 긍정적으로 평가해요. 90%는 직접 실천도 한다고 해요. 그런데 1년이 지나면 20~30%의 교사들만이 이를 지속해요. 나머지는 중간에 포기하시는 거죠. 그런데 주목할 만한 점은 저희 모임에 계속 참여하시는 분들은 70~80%가 끝까지 협동학습을 활용하신다는 거예요.

아까 제 경험도 말씀드렸지만, 연수에서 듣고 해 봤더니 좋더라이 단계가 지나면 사실 이런저런 한계가 느껴지고 문제도 생기게 되죠. 그럴 때 연구회 같은 동료 교사들과의 모임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동료 코칭이 일어나요. 동료의 사례를 보고 배우기도 하고, 서로 동기 부여도 되는 거죠.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꾸준히 해 나가면 어느 순간에 한계를 넘어 질적 도약이 일어나더라고요.

반면에 혼자 실천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다양하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성찰하기 힘들기 때문에 협동학습이 나와는 안 맞다, 혹은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과는 안 맞다고 판단하기 쉽죠. 그래서 개인주의의 맥락에서는 해법이 없어요. 특히 협동학습은 교육의 내용이라기보다 방법이기 때문에 동료 코칭이 충분히 가능하고, 또 그러려면 그런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교바사) 교사들의 학습 공동체, 수업 공동체 외에도 정책적으로 제도적으로 어떤 혁신이 있을 때 학생들에게 배움이 제대로 일어날 수 있을까요?

 

김현섭) 저는 혁신학교 모델을 지지하는 편이에요. 성공적 혁신학교는 직접 가서 보면 학교 안에 교사들의 수업 공동체가 굉장히 활발해요. 또 생활 지도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을 나누고, 수업에 대해서도 큰 부담 없이 서로 공개하면서 집단 지성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문화가 있는 거예요. 특히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힘을 모아 해법을 찾아가려는 아자아자분위기가 살아 있죠. 그래서 뜻 맞는 교사들끼리 혁신 학년제를 실시할 수도 있는 거고요.

또 한 가지는 장학과 컨설팅을 컨설팅 장학으로 묶을 게 아니라 이원화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장학은 분명 그 나름의 필요성이 있지만 지극히 관찰자 중심이거든요. 그런데 컨설팅은 수업자 자신이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해 나가는 형태를 지향해요. 때문에 컨설팅 분야는 교육청이 주도하기보다 자발적인 수업 공동체나 학습 동아리 등에 맡기는 게 낫다고 봐요. 대신 그런 공동체에 대해 절차를 단순화해 예산을 지원하고, 교육청은 관리 감독을 하는 거죠.

좀더 큰 틀의 개혁을 위해서는 교육지원청을 없애서 단위 학교에 내려오는 행정 업무를 최소화하고, 지역에 학교지원센터를 거점으로 두어 다양한 교육 관련 지원을 책임지게 하면 좋지 않을까 해요. 해외 사례를 보면, 핀란드에는 교육청이 없어요. 학교의 행정을 관리·감독하는 게 아니라 그저 지원만 하는 거죠. 또 덴마크의 경우엔 7~8개 학교를 지역별로 묶고 그 지역 교사들을 지원하는 교수학습지원센터가 있어요. 그 센터에서 학습 자료도 보급하고 수석 교사들이 거기를 거점 삼아 활동하는 거죠. 교사들의 스터디나 연수도 지원하고요. 진로 상담이나 학교 폭력 관련 사안, 지역사회와 연결된 교육 활동 등도 거기서 하는 거죠. 물론 우리나라와는 문화가 다르니까 그 점을 감안해야겠죠?

어쩌면 가장 시급한 건 단위 학교의 예산 현실화일 거예요. 연구 시범학교가 되어 예산 책정을 받지 않아도 학교 운영에 어려움이 없어야 되는 거죠. 예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시범학교가 된 경우, 기간이 끝나면 원 상태로 돌아가기 십상이에요. 이런 형식만 중시하는 혁신, 이제는 없애야 되지 않을까요?

 

학습 공동체를 향한 주춧돌-협동학습

 

교바사) 선생님께서 상상하시는 이상적인 교실은 어떤 풍경인가요?

 

김현섭) 학생과 교사와 지식이 비빔밥 속 밥과 나물과 양념처럼 조화롭게 어우러진 풍경이라고 할까요? 학생들이 순간적인 재미 때문에 수업에 발을 담그는 게 아니라 지식에 대한 관심과 흥미가 학생들을 활동과 참여로 이끌 수 있는 그런 교실이죠. 가령 국어 시간에 자기 삶에 대한 고민을 담아 직접 시를 짓고 이걸 친구들과 나누고 또 친구들과 교사가 그에 대해 응답하면서 함께 성장해 가는 풍경, 생각만 해도 가슴 벅차지 않나요? 만약 그런 교실이라면 교사가 동일한 수업 지도안을 준비해서 수업을 시작하더라도 각 교실마다 그 교실을 채운 학생들의 특성에 따라 다른 내용으로 수업이 흘러가지 않을까요?

결국 저는 그런 학습 공동체가 궁극적인 지향점이에요. 더불어 수업의 영역을 넘어 삶의 영역에서 자신의 옆에 있는 사람과 서로 위하면서 생활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짝이 결석했을 때, 담임교사가 묻기 전에 스스로 짝의 안부를 염려하고 연락해 보는 공동체였으면 하는 거예요.

그런 학습 공동체로 교실을 만들어 가는 데 협동학습은 훌륭한 도구라고 생각해요. 학생들의 흥미나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한, 때로 학생들을 통제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지만 무엇보다 협동학습이 진짜로 의미가 있는 건 학습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될 때라고 생각해요.

 

교바사) 현재 한국협동학습센터 소장이신데, 앞으로 수업이나 교육과 관련하여 어떤 그림을 그리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김현섭) 일단 우리 연구회나 센터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내실 있게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죠. 수업 혁신에 초점을 맞추어 교사 돕는 일들을 하겠지요? 다중지능 관련이나 수업 코칭 등도 그런 맥락이고요. 그걸 더 잘하기 위해 출판이나 교사 연수 등도 진행할 예정이고요.

개인적으로는 연구회 안에서 리더쉽의 세대 교체를 준비중입니다. 그래서 준비된 다음 세대들이 저보다 더 잘 해 나갈 수 있게 차기 리더를 세우는 일을 진행하려고 해요. 요즘 어떻게 이 사역을 다음 주자에게 잘 넘겨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아요.

제가 10여 년 전 꿈이 두 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기독교 학교 세우기, 하나는 교수학습센터를 만들기였어요. 꾸러기유아학교, 산울어린이학교, 소명중고등학교 설립에 참여하면서 기독교학교의 꿈을 이루어가고 있고, 협동학습센터를 통해 교수학습센터의 꿈이 이루어져 이제는 활발하게 돌아가고 있죠. 정말 감사하게도 두 가지 꿈을 모두 이루면서 제 인생의 전반전을 마쳤네요.

지금은 인생의 후반전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는 하프타임이에요. 물론 후반전에서도 선생님을 돕는 일에 에너지를 쓰면서 살고 싶어요. 아직 구체적인 형태는 고민 중이지만요!

 

김현섭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협동학습은 더 이상 학생들의 학습 효과를 높이기 위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교실이 학습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 교사들의 번 아웃 현상을 원천적으로 막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전문적 학습 공동체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종합해 볼 때, 협동학습의 협동은 학습의 원리를 넘어 미래사회에 우리가 지향해야 할 수많은 가치들을 품고 있다고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교사의 내면에 대한 성찰, 수업에 대한 성찰을 당위의 언어로만 외치는 학자이기보다 스물셋 해 교사로서의 발걸음을 통해 직접 실천해 오신 선생님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쩐지 제 발걸음도 덩달아 가볍고 희망차게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김현섭 선생님을 통해 다시금 떠올리게 된 이 땅의 믿음직한 선생님들에 대한 신뢰와 확신 덕분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