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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혁신

이상한 학교

by 김현섭 2015. 6. 24.

대한민국에서 정상적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고등학교가 없다?!

한국 공교육 체제 안에 있는 학교라면 어느 학교든지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근거하여 교육활동을 전개해야 한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이 통하지 않는 학교가 인문계 고등학교이다. 어떠한 인문계 고등학교도 3년 교육과정을 3년 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3년 교육과정을 2년 동안 운영한다. 중학과정에 비해 고등과정은 지식의 양이 3배나 되는데 이러한 많은 학습 분량인 3년 과정을 2년 동안에 운영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교사들은 2년 동안 교과서 진도 나가기 급급하다. 3 모의고사 출제 범위표를 살펴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2년 동안 전체 교육과정을 어느 정도 나가야만 고3 모의고사를 정상(?)적으로 풀 수 있는 체제가 되고 말았다. 이는 사설 모의고사 업체 뿐 아니라 교육청 주관 모의고사도 마찬가지이다.

 

[2015 모의고사 출제범위표]



 

3 수업에서는 교육방송 수능 특강 교재를 중심으로 문제 풀이식 수업을 한다. 사교육 억제라는 명분으로 EBS 수능 교재에서 수능 연계 70%로 만든 상황에서 EBS 교재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수억 원을 투자해서 개발한 교과서보다 EBS 교재가 더 막강한 권위를 가지게 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교과서 위에 문제집이 있는 형국이 되었다.

교과서 내용을 살펴보면 난이도가 평범하지만 EBS 교재 내용과 문제 난이도는 상당히 높은 편이다. 수능이 변별력을 강조하는 상대 평가로 활용되다 보니 수능 난이도가 낮으면 물수능(?)이라고 해서 보수 언론을 비롯하여 난리를 친다. 그래서 수능을 대비한 교재이기에 교과서보다 난이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해가 갈수록 수능과 모의 수능 고사가 거듭되다 보니 동일한 평가 문항을 출제할 수 없기에 평가 문항도 자연스럽게 난이도가 올라가는 구조가 되고 말았다.

 

교과서는 압축 파일, 교사는 압축 풀기 프로그램?

대부분의 교사들이 교과서 대신 교과서 요약 학습지를 활용하여 수업을 한다. 우리나라 교과서는 참고서 스타일의 교과서가 아니라 요약형 교과서이기 때문에 교과서 쪽수는 많지 않지만 많은 학습 분량이 압축되어 있다. 역사과 교과서의 경우, 100년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한 문장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교과서만을 가지고 학생들이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압축된 파일을 정상적으로 열어볼 수 없지만 알집 등 압축 프로그램을 활용해야 원래 파일을 열어볼 수 있는 것처럼 교과서는 압축 파일이요, 교사는 압축 프로그램 같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교사 입장에서는 교과서로 수업하는데 한계를 느끼기에 교과서 요약형 학습지나 워크북을 만들어 수업에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소위 프린트물을 배부하고 ( )안에 단어를 채워가며 설명식으로 수업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많은 학습 내용을 짧은 시간에 전달할 수 있는 수업 방식이 일제 학습이다. 일제 학습은 그 외에도 오개념 가능성이 낮고, 경제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그러다보니 많은 교사들이 일제 학습, 강의식 수업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학생 참여식 수업을 도입하고 싶어도 이러한 수업의 특징 상 많은 학습 분량을 소화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특별 수업 형태로 진행되고 일상 수업에서는 강의식 수업으로만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수업 방식이 지속되어 반복되다 보면 일부 교사들은 이러한 일제 학습에 익숙해져버려 나중에는 더 이상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자체에 대하여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된다. 수업에 고민하는 일부 교사들은 이러한 구조와 문화를 이겨내기 위해 힘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수업 방식이나 학생 참여식 수업을 도입하려고 노력한다. 일제 학습에 비해 협동학습 등 학생 참여식 수업을 진행하면 학생의 배움이 살아나긴 하지만 문제는 교육과정이 교사의 발목을 잡는다. 일상 수업에서 협동학습이나 프로젝트 수업 등을 진행하면 정상적으로 교과서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게 된다. 학생 참여식 수업을 진행하려면 교육과정을 재구성해야 하는데, 교육과정과 학습 분량이 많은 상황에서 재구성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수업에 고민하는 교사일수록 성공보다는 좌절을 더 많이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 교사 개인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고 사회 구조가 변해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다. 입시 문제는 교사 개인이 해결하기 힘든 사회 구조적 문제이기에 많은 교사들이 그 앞에서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잠자는 교실

인문계 고등학교의 원래 목적은 대학 진학을 위해 기초 학문적 소양을 쌓는 학교이다. 그런데 서울시 현재 인문계 고교 커트라인은 내신 기준 97-98%까지 내려간다. 왠만하면 누구나 인문계 고등학교를 진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그리 높지 않았어도 인문계 고교 진학 학생들의 성적은 중상위권 학생이 다수였지만 현재는 중하위권 학생이 다수라는 것이 문제다. 쉽게 말해 대학 가기 힘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대학 입학을 전제로 한 교육과정을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특목고로 진학하고 중상위권 학생들이 자사고, 자공고, 특성화고로 진학하면 일어난 현상이다.

중하위권 학생 입장에서 인문계 고교 문화를 살펴보자. 중학생 때는 열심히 공부하면 일시적이라도 짧은 시간에도 성적이 오르는 것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데 고등학생 때는 열심히 공부해서 시험을 보아도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중학교 시기보다 더 열심히 공부했어도 성적이 떨어지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열심히 공부하고 학습 분량이 많기에 단기간에 집중한다고 해서 쉽게 성적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반복되면 학습된 무기력 현상이 학생이 지배한다. 수업 시간에 집중해도 선생님이 설명하는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노력을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으면 좌절을 경험하고 나중에는 공부를 포기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특히 수학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학습 분량이 많고 난이도가 높기 때문에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가 많이 발생하는데, 문제는 수학을 포기하면 문과생이라도 자기가 원하는 대학을 진학하기 힘들어진다. 고학년으로 올라갈수록 수업 시간에 잠자는 학생이 많아지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된다.



일상 수업 문화를 살펴보면 대개 교사가 강의식 설명법 등 일제 학습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일제 학습 특성상 15분이 넘어가면 학생 입장에서는 몰입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하여 점차 가르침과 배움의 간극이 벌어지게 된다. 교사는 그 사이에서 고민하면서 때로는 잠자는 학생들을 깨우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잠자는 학생들을 묵인하면서 진도 나가기에만 신경을 쓰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입시 문제와 정면 승부하라~

단시간 안에 사회 구조를 바꾸기는 쉽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많은 교육정책 입안자들이 입시 제도 방식을 바꾸어 입시 과열 현상을 줄이려고 했지만 오히려 혼란만 가중할 뿐이었다. 많은 교사들이 입시 구조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거나 오히려 입시 구조를 보다 강화하는데 그 역할을 하기도 한다. 구조적인 문제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려는 접근이 필요하지만 단기간에 어떠한 변화를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가? 특히 기독교사는 선지자적 비관주의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고 실망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은 과감하게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그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대 구조를 한 번에 무너뜨릴 수 없지만 구조의 약한 부분을 찾아 그 틈을 비집고 구조를 무너뜨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인문계 고교를 변화시키려면 결국 입시 문제와 정면 승부해야 한다. 입시 문제를 피해 우회적인 접근으로는 학교 혁신에 한계가 있다. 일단 가치와 철학의 혁신이 필요하다. 입시를 넘어 진로와 진학, 그리고 소명의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몸부림치는 학교들의 사례(안산 경안고 LSP, 소명중고등학교 7MM )가 있다. 다음 글에서 안산 경안고 LSP(Life Scale Planning) 사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