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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혁신

수업 나눔이 쉽게 실패하는 이유

by 김현섭 2014. 4. 30.

수업자에게 자기 수업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않기, 수업자의 수업을 자기 기준에 따라 수업 평가를 하고 수업자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도 자기 입장에서 수업 해결책을 제시하기, 수업자가 이야기할 때 수업 관찰자들이 딴 짓하기(핸드폰하기, 노트북으로 다른 일하기), 수업자가 말하고 있을 때 수업자의 눈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것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기, 상대방의 이야기와 상관없이 자기 이야기를 하기, 수업자의 이야기를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여 허수아비를 만들어 놓고 자기 이야기를 하기...
수업 나눔이 깊이 있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최근 기존 수업 강평회를 수업 나눔 방식으로 바꾸자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실제 수업 나눔을 하다보면 위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기 쉽습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면 수업자는 수업 나눔을 하고 나서도 좋은 수업 성장을 경험하기 보다는 수업 나눔 이후에도 찜찜한 느낌에 빠지게 됩니다.

삶의 관성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삶의 관성을 낯설게 인식하지 않으면 그 관성으로부터 빠져나오기 힘듭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방식대로 생각합니다. 관성을 깨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관성을 깨기 위해서는 당연한 것에 대한 질문하기를 해야 합니다.
“기존 수업 강평회가 수업자의 수업 성장으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공개 수업과 일상 수업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교사라면 누구가 수업 고민이 있는데 왜 나누려고 하지 않는가?”
“교사는 학교 업무 속에서 수업이 차지하는 비중과 우선 순위가 낮은 이유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고 그 이유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면 다양한 대안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기존 수업 강평회 형식을 버리고 새롭게 수업 나눔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깊이있는 나눔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깊은 수업 나눔을 위해서는 수업관찰자들이 수업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친구는 나를 좋아합니다. 친구는 나의 허물로 애정을 가지고 받아줍니다. 친구는 나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들어줍니다. 내가 도움을 요청할 때 친구는 기꺼운 마음으로 도움을 줍니다. 수업 친구도 그러해야 합니다. 수업 친구는 수업자를 좋아해야 합니다. 수업 친구는 수업자의 허물로 애정있게 받아줄 수 있어야 합니다. 수업 친구는 수업자의 고민을 있는 그대로 들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수업자가 도움을 요청할 때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수업 전문가로서 비전문가를 지도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수업 나눔이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수업 관찰자는 해결사 입장이 아니라 친구 입장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수업 나눔의 깊이를 더하게 하기 위해서는 수업에 대한 질문을 잘 던져야 합니다.
“교사가 침묵 신호를 자주 사용하는데도 학생들은 교사의 말에 잘 집중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선생님은 학생들의 배움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진도에만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 인문계 고교에서는 주로 강의식 수업과 문제 풀이식 수업으로 하는가?”
이러한 질문을 던지려면 익숙한 수업 문화를 낯설게 인식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기존 수업 문화에 대한 비판 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수업자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애정없이 수업자에게 던져지는 날카로운 질문은 수업자에게 상처만 줄 수 있습니다. 질문에는 목적이 있어야만 합니다. 아무런 생각없이 생각나는대로 질문하거나 내 입장에 매몰되어 질문을 던지는 것은 무책임한 행위입니다.

 

 

깊이 있는 수업 나눔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수업 친구들이 수업자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합니다. 경청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메모하고 이해가 가지 않으면 질문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제대로 이해했는지 자기가 이해한 부분을 물어보고 상대방으로부터 점검받아야 합니다. 수업자가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나요?’ 등의 말문 열기를 사용해야 합니다. 상대방의 말 속에 숨겨진 감정을 읽어주고 그 감정에 대하여 공감해 주어야 합니다. 수업 친구들이 수업 나눔 속에서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어야만 수업자가 자기 마음을 비로소 열게 됩니다. 수업자가 자기 고민을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불평하거나 공격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됩니다. 이렇게 경청하기를 최소한 1시간은 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시간적 제약이 있으면 충분한 수업 나눔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 없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것이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교사라는 직업은 다른 사람에게 지식을 가르치고 하루에도 학생들에게 최소 3시간 이상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말하기에는 익숙하지만 경청하기에는 가장 미숙한 집단이 교사입니다. 교직 경력이 많을수록 내 경험이 많기 때문에 하고 싶은 말이 많습니다. 그런데 수업 친구가 된다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수업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는 것을 말합니다.
제대로 경청하면 나와 너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장자가 말한 제물(齊物)의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수업친구들은 무아지경(無我之境)을 경험합니다. 파커 팔머가 말한 진리의 공동체를 경험하게 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수업자의 이야기가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시간의 흐름을 망각합니다. 수업자의 고민에 관심을 가지며 수업자의 두려움과 상처 앞에서 공감과 연민의 감정이 느껴집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수업 친구의 말에 힘이 생깁니다. 수업 친구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수업자에게 힘이 됩니다. 수업친구가 조금만 말해도 수업자에게 위로와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단계에 이르면 수업 친구가 조금 실수를 해도 그것이 수업자에게 상처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수업자에게 자기 수업 고민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말한다고 해서 수업자가 자기 마음을 열고 수업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업자가 가지고 있는 두려움과 상처, 나약함을 공개하려면 그 공간이 안전 지대여야 합니다. 나의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공감해줄 수 있어야 하고 내가 실수로 말한 말이 후폭풍을 몰고 오지 않을 수 있어야 합니다.
수업자가 자기 고민을 깊이 있게 이야기하려면 상대방이 완벽하지 말아야 합니다. 완벽해 보이는 사람 앞에서 자기의 고민과 나약함을 보이기 쉽지 않습니다. 상대방과의 비교의식에 빠져서 열등감으로 이어지기 쉽거나 상대방이 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완벽한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완벽해지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 현실 속에서 교사가 자기 수업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리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동안 우리 학교 현실이 안전 지대를 보여주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한 학교 안에서 수업 나눔이라는 안전 지대가 제공되면 수업자는 자기 마음을 자연스럽게 열게 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민이 있고 자기 고민을 공감받고 싶으며 자기 성장에 대한 의지가 있습니다. 교사라면 누구나 자기 수업 에 대한 고민이 있고 그 수업 고민에 대하여 누군가로부터 공감받기를 원하고 자기 수업을 현재보다 더 잘하고 싶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실제로 학교에서 자기 수업 고민에 대하여 충분히 나누지 못한 것은 그러한 기회가 없었을 뿐 아니라 신뢰할만한 수업 전문가나 수업 친구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내 수업 고민에 대하여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내 수업 고민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내 수업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자기 수업 고민의 해결책을 기대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학교 안에서는 그러한 수업 친구나 수업 전문가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당장 내가 수업 전문가가 되기는 힘들더라도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수업 친구는 될 수 있습니다. 수업 친구가 주변에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내가 다른 교사의 수업 친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수업 전문가라고 해도 상대방의 수업 고민에 대한 피드백을 할 때에는 신중해야 합니다.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서 신중하게 피드백을 해야 합니다. 내 입장에서 피드백을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입장에서 피드백을 해야 합니다. 나와 상대방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피드백해야 합니다. 나에게는 그것이 정답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오답일 수 있습니다. 수업 전문가라는 위치에서 내려와야 수업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 학교 안에서 깊이있는 수업 나눔을 하고 싶으면 먼저 이미 깊이있는 수업 나눔이 있는 수업 공동체를 찾아가서 경험해야 합니다. 우리 학교는 이미 관성의 법칙에 지배받고 있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론이나 말로서 문화를 바꿀 수 없습니다. 고기 맛도 맛본 사람이 잘 알듯이 깊이있는 수업 나눔을 경험한 사람만이 수업 나눔을 깊이 있게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