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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혁신

고등학교를 대학처럼 운영한다면?

by 김현섭 2014. 7. 23.

민석이는 중학교 때부터 성적이 매우 좋았다. 부모님으로부터 큰 기대를 받고 있었고 학교 선생님들로부터 늘 칭찬을 받으면서 성장했다. 원래는 특목고를 가고 싶었으나 힘에 부치는 부분도 있었고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감은 별로 없었다. 대안으로 자사고를 가고 싶기는 했지만 집안 형편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고 내신을 생각해보니 집 근처에 있는 일반 인문계 고교에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했다.

희철이는 중학교 때 민석이와 같은 반 친구였다. 성적은 중간 수준이었고 평범함이 특징이었다. 교실에서 존재감은 그리 크지 않았고 사고를 쳐서 선생님에게 혼난 적도 별로 없었고 그렇다고 성적이 뛰어나 상을 받은 적도 별로 없었다. 회사원이 되는 것이 꿈이고 특별히 가고 싶은 학교도 별로 없었기에 집 근처에 있는 일반 인문계 고교에 들어갔다.

호철이는 중학교때 민석과 희철과 같은 반이었지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나름대로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성적은 생각보다 낮았다. 한때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다가 사고를 크게 치는 바람에 징계를 받기도 했다. 특별한 꿈도 없었고 친구들과 길거리에서 방황하거나 PC방에서 온라인 게임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수업 시간에는 깨어있는 시간보다는 잠자는 시간이 더 많았다. 성적이 매우 낮았기에 전문계 직업학교를 선택할 수조차 없어서 결국 집 근처에 있는 일반 인문계 고교에 간신히 들어갔다.

위의 세 명의 학생이 같은 고등학교에서 행복하게 생활할 수 있을까?

현재의 일반 인문계 고교 현실을 감안한다면 민석이는 고교에서도 많은 칭찬과 관심 속에서 공부할 것이고 희철이는 존재감없이 평범하게 생활할 것이고 호철이는 교실 한 쪽 구석에서 잠자거나 사고를 쳐서 중간에 학교를 그만둘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세 명의 학생이 같은 학교에서도 행복하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은 없을까? 이러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 중의 하나가 학점제 학교이다.

학점제 학교란 대학처럼 학생이 자기가 원하는 과목을 수강 신청하여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일정 수준의 학점을 이수하면 졸업할 수 있도록 하는 운영하는 학교이다. 고등학교도 대학처럼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학점제 학교 운영의 기본 취지는 학생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하고 자기 학습 수준에 맞는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또한 학생들의 진로에 맞추어 맞춤형 교육과정을 제공함으로서 수업의 질과 만족도를 올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고교 평준화가 결국 하향 평준화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하면서 MB 정부에서는 자율과 경쟁이라는 구호 아래 학교 다양화 정책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특목고-자사고/자공고-특성화고-전문계고-일반고라는 학교 서열화 현상이 심화되었다. 학교 서열화 패해가 심해지자 이에 대한 해결 방안들이 다양하게 모색되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넘어 교육학자들이 생각하는 현실적인 방안은 학점제 학교이다. 그러기에 MB 정부 시절부터 학점제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그 결과 고교 교육력 제고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학점제 학교를 실천하기 위한 전제들을 만들어갔다. 막대한 예산을 투자해서 교과교실제 사업을 벌였던 것도 학점제 학교로 발전하기 위한 전제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예산 부족과 시설 미비, 대학 입시 위주 문화와 학력주의 사회 풍토 속에서 학점제 학교는 현실적인 타당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도 학점제를 구체적으로 실현한 학교들이 있다. 대표적인 학교는 이우중고등학교와 서울과학고등학교 등이다. 여기에서는 이우중고등학교의 학점제 학교 운영 사례를 통하여 모두가 행복한 학교를 만들기 위한 현실적인 방안에 대하여 고민하고자 한다.

 

[이우중고등학교 전경 사진]

 

이우중고등학교의 학점제 학교 운영 이야기

이우중고등학교는 교육에 뜻있는 사람들이 투자하여 세운 인가형 특성화 학교로서 우리나라 혁신학교(중고등학교) 운동의 시발점이 된 학교이다. 이우고등학교에서는 수 년전부터 무학년 학점제 학교 운영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의 과정을 통해 학점제를 정착하여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졸업에 필요한 최저 이수학점은 204학점이고 학기당 이수 학점은 평균 36학점이다. 학기당 이수교과를 8과목으로 제한하되, 예술/체육교과군은 이수교과목 수에서 제외한다. 문과, 이과 구분없이 자기가 원하는 다양한 과목을 수강 신청할 수 있다. 원래부터 문과, 이과 구분은 없었으나 최근 이과반 학생수가 소수이고 이과반만의 필요성이 제기되어 이과반을 별도로 1개반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고 예체능반은 별도로 구성하고 있지 않다. 학생들이 과목 수강 신청을 할 때 담임 교사와 상담을 통해 진로와 희망, 학습 의지 등을 고려하여 수강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한다. 수강 변경 신청 기간도 있고 수강 변경 신청 이후에는 마음대로 과목을 변경할 수는 없다.

이우고등학교에서 운영되고 있는 과목들을 살펴보면 다른 학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과목을 많이 있다. 영어와 수학의 경우, 실용 영어, 기초영어, 심화영어, 심화 독해와 작문, 수학의 연습, 고급 수학 등 다양한 수준의 과목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사회탐구 영역의 경우, 기존 사탐 과목 외에도 인류의 미래사회, 국제정치, 세계 문제 등이 있고 생활 교양의 경우, 환경과 녹색 성장, 생활과 철학, 생활과 심리, 생활과 논리, 생활과 교육, 패션 디자인, 발명 입문, 정보, 웹 프로그램 등이 있다. 최근에는 교과별 과제 연구를 시도하면서 통합 교육을 고민하고 있다.

1 과정은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에 해당되어 학점제를 적용하기에 현실적인 한계가 있어서 고1 2학기와 고2 1학기에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처음에는 고2와 고3을 통합적으로 무학년제로 운영했으나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하여 일부 분리 운영을 하고 있다. 3의 경우, 대입 수능으로 인하여 2학기 기말고사를 당겨야 하기 때문에 고3 2학기는 고3 학생들을 중심으로 운영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무학년 학점제를 부분적으로 실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수학과 과학은 위계적인 특성이 있어서 무학년제로 운영하기 힘들고 수학의 경우, 출발점과 도착점을 다르게 하여 운영하고 있다. 고급 수학의 경우, 난이도가 높다보니 처음에는 상위권 학생들이 신청했으나 이후 수강 신청하는 학생들이 없어지게 되었다. 학생들의 희망에 따라서 다양한 과목을 설치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현실적으로 어려운 경우, 동아리 형태로 대신 필요를 채워주고 있다.

학점제 운영은 학생들의 필요와 수준에 맞는 다양한 과목을 제공해주고 학생들이 학습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준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지만 동시에 현실적인 몇 가지 문제점도 있었다.

첫째, 시간표 구성 문제가 있었다. 교사수와 교실 공간의 한계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과목을 설치하다보니 저녁 시간에 이루어지는 강좌도 있었는데, 교사, 학생 모두 저녁 강의에 대한 피로도가 있었다.

둘째, 성취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 문제가 있었다. 학점제는 성취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의 경우, 재수강을 통해서 보완할 수 있도록 한다. 처음에는 성취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을 위한 과목을 방학 기간에 개설하여 운영하였는데, 여러 가지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하여 현재는 그렇게 운영하고 있지 않다.

셋째, 학생 생활 지도의 문제가 있었다. 학점제를 운영하다보면 필연적으로 공강 시간이 발생하는데, 자율성이 떨어지는 학생의 경우 공강 시간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래서 수강 신청 단계부터 공강 시간 활용에 이르기까지 담임 교사가 관심을 가지고 지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학점제 학교가 일반화된다면

이우고등학교의 학점제 학교 운영 사례를 통한 학점제 일반화 과정상의 시사점을 다음과 같이 얻을 수 있다.

첫째, 학생들의 필요와 요구를 잘 분석하여 단위학교 특성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우고등학교의 경우, 인문학적 요구가 높았기에 다양한 인문교과를 설치하여 운영할 수 있었다. 서울과학고등학교의 경우, 대학에서 요구하는 심화과목을 설치하여 운영하고 있다.

둘째, 학점제를 잘 운영하려면 교육과정에 대한 자율성이 보장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재정과 공간이 있어야 한다. 단위학교에서 학생들의 필요와 수준에 맞는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는 자율성이 보장되어야 하고 교사들도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전문성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 소인수 과목을 설치하는 경우, 재정적으로 부담이 될 수 있고 공간이 부족하면 과목을 운영하기 힘드므로 이에 대한 지원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입시에 대한 부담감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소인수 과목의 경우, 내신 등급상 1등급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현실적으로 다인수 과목일수록 내신 관리상 유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입시를 최고의 가치와 기준으로 운영하는 학교에서는 학점제 운영을 하기 쉬지 않다.

넷째, 전면적인 학점제보다는 학교 여건에 맞는 부분적인 학점제가 현실적인 타당성이 높다는 것이다. 많은 과목을 개설한다고 해서 학생들의 만족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더 좋은 학습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이라고 보기 힘들다. 학생들의 학습 수준과 필요를 학교 상황에 맞게 최대한 반영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찾는 것이 좋을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여러 가지 힘든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점제는 시도할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성적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이 학교 생활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에 대하여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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