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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협동학습을 위한 기나긴 여정 : 수업디자인연구소 김현섭 소장을 만나다(민들레 151호)

by 김현섭 2024. 3. 5.

팀 프로젝트가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사회적 기술을 배우는 과정이라고 하는데, ‘학교에서도 이런 X 있었는데 회사에서도 있구나하는 체념을 배우는 과정 아닌가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 글에는 수백 개의 댓글이 달렸다. 댓글의 대다수는 자신과 자신의 자녀가 겪은 조별과제 빌런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다. 팀 프로젝트가 협동이라는 가치를 배우기에 좋은 도구라고 해도, 교육현장에서 팀 프로젝트에 대한 반발심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함께 과제를 수행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극심한 시대에, 어떤 방식으로 협력을 가르칠 수 있을까? 도덕윤리 교사로 재직하며 협동학습연구회를 만들어 15년간 이끌고, 지금은 수업디자인연구소에서 교사들의 성장을 돕는 데 매진하고 있는 김현섭 소장을 만나 협동학습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00년 ‘한국협동학습연구회’를 창립해 협동학습과 관련한 많은 활동을 해오셨는데요. 협동학습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어요?

 

우연히 협동학습 워크샵에 참여했는데, 너무 재미있었어요. 협동학습에서 개발된 수업 모형이 굉장히 많은데, 교사로서 다양한 교수 전략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고요. 현장에 적용했더니 일단 학생들이 너무 좋아했어요. 공동체 의식을 가지고 서로 배려하는 기술을 배우는 게 보였고, 성적 향상에도 도움이 되었고요. 그러니 안 할 이유가 없었죠.

처음에는 같은 학교 선생님끼리 동아리를 만들어서 협동학습 공부를 했어요. 교과가 다른 선생님과 범교과적으로 수업 연구를 하다가, 2년 차에는 융합 프로젝트를 했어요. 그러다 3년 차에는 학교 밖 수업 모임으로 확장하게 되었고, 그 모임이 발전하고 협동학습에 대한 교육계의 관심과 맞물리면서 15년간 협동학습연구회 활동을 통해 협동학습 운동을 하게 된 거죠.

 

협동학습은 익숙한 단어이지만 그 실제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이 실천해오신 협동학습은 어떤 것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협동학습은 공동의 학습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협력하는 교수 전략이라고 보통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건 교과서적인 정의고, 쉽게 말하면 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라고 정의할 수 있어요. 기존 조별학습은 비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인데, 이 조별학습의 대표적인 문제점이 무임승차자나 일벌레 학생이 발생하고, 시간을 비효율적으로 사용하게 된다는 것이죠.

협동학습의 네 가지 기본 원리가, 긍정적인 상호의존(너의 성공이 나의 성공), 개인적인 책임(개개인의 책임과 역할을 보다 분명히), 동등한 참여(누구에게나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골고루), 동시다발적인 상호작용(동시에 여기저기서)인데요. 여기서 '너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라는 긍정적 상호의존은 흔히 너의 성공이 나의 실패로 받아들여지는 경쟁학습과 가장 큰 차이점이죠. 그리고 나머지 원리들은 조별학습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원리들이에요. 개인적 책임은 무임승차자와 일벌레 학생을 극복하기 위해서, 동등한 참여와 동시다발적 상호작용은 시간의 비효율성을 극복하기 위해서 강조하게 된 거에요..

협동학습은 미국에서 도입된 교육방법인데요. 1920년대에 도이치를 비롯한 사회심리학자들이 밝혀낸 '협동해서 과업을 수행할 때 목표에 가장 잘 도달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1970년대의 존슨 형제들이 교육에 적용하며 본격화됐어요. 우리나라에서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까지 활발하게 보급되었고, 진보 보수를 떠나서 수업 혁신의 좋은 대안으로 인정받았죠.

 

협력학습이라는 용어도 있던데, 협동학습과 협력학습은 어떻게 다른가요?

 

2010년대 이후 진보교육감 등장 이후 교육계에 큰 영향을 미친 구성주의 교육과정에서 강조한 게 협력학습이에요. 앞서 말씀드렸듯 협동학습은 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이기 때문에 교사가 학생 각자에게 역할을 주고, 목표에 도달했을 때 보상을 주기도 한단 말이에요 협동학습의 이런 면을 비판하면서 등장한 것이 탈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이라 불리는 협력학습이예요. (배움의 공동체 부분 생략)

그러니까 이론적으로는 두 가지 흐름이 있는 거예요. 유럽의 구성주의를 기반으로 해서 탈구조화된 또래 가치를 강조하는 협력학습과, 미국을 기반으로 해서 구조화된 접근을 하는 협동학습. 이 흐름이 90년대 후반 이후로 결합이 되면서 용어가 혼재되어 사용되다가, 지금은 정리가 되면서 여기까지 내려온 거죠.

 

협동학습이나 협력학습과 관련 담론들이 지금은 교육계에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나요?

 

코로나19 이후 상황이 바뀌었죠. 기존 가르침 중심 수업을 비판하면서 학생 참여를 강조하는 배움 중심 수업이 코로나19 이후 다시 가르침 중심 수업으로 회귀된 부분이 있죠. 코로나 기간 동안 온라인 수업, 블렌디드 러닝(Blended Learning), 제한적 대면 수업으로 바뀌었잖아요. 3년간 형식은 달라도 내용은 일제 학습, 문답법, 문제 풀이식 수업으로 역행한 측면이 있어요.

작년에 실내 마스크가 해제되면서 수업을 바꾸려는 흐름이 있었지만, 서이초 사건 이후 현장 교사들이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었어요. 특히 초등 선생님들은 나도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위기의식으로 많이 위축이 되었죠. 그러다보니 일부 교사들은 공개 수업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어요. 게다가 지난 3년간 학생들의 기초학력과 사회성이 떨어지니까 교실 속 상황이 더욱 어려워진 거예요.

 

요즘 십대와 이십대들이 팀 프로젝트를 힘들어하고, 팀 안에서의 무임승차에 분노하는 경향이 큰 것도 협동학습이나 협력학습을 어렵게 하는 요인일 것 같아요.

 

맞아요. 요즘 애들은 팀 프로젝트 수업을 좋아하지 않아요. 과제를 제때 수행하려면 수업 끝나고 남아서 다른 친구들과 시간을 맞춰야 하는데, 학원 가기 바쁘죠. 코로나 19 이후 학생들이 개인주의 문화에 익숙해지면 팀으로 협업하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쉬는 시간에도 친구들과 놀기보다 그냥 자기 자리에서 쉬거나 스마트폰을 가지고 시간을 보는 경우가 많아졌죠. 같은 학급이라도 두루두루 친하게 친해는 것보다는 코드가 비슷한 아이들끼리 또래 그룹을 만들어 교류하는 경우도 많구요. 공정성을 중시하는 문화 속에서 팀 프로젝트 수업 시 무임승차자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더욱 강화되었어요. 예전에는 일벌레 학생이 무임승차자 학생을 이해하거나 조금 손해보더라도 그냥 넘어가는 부분이 있었지만 요즘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죠. 그러다보니 부모 입장에서도 팀 프로젝트 활동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졌어요. 공부 잘하는 친구일수록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있어요. 나 혼자 뚝딱뚝딱하면 점수 잘 받을 수 있는데, 팀원까지 챙겨가면서 손해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죠. 그런 경우 저는 같은 팀 안에서도 개인 역할 기여도에 따라 점수를 차등적으로 줄 거야라고 말해요. 개인 보상과 집단 보상을 분리해서 주는 거죠. 물론, 합리적인 보상 구조를 만들어도 이런 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어요. 그럴 때는 철학적으로 접근하기도 해요. 혼자서도 잘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하죠. 사회에 나가면 역량의 차이가 큰 사람들과 함께 협업해야 할 상황이 많이 펼쳐질텐데, 지금 교실에서 이러한 훈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사회에 나갔을 때 더 힘들 것이라고요. 대체로 이렇게 말하면 아이들이 수긍을 해요. 물론 받아들이기 힘들어 하는 일부 아이도 있지만, 이 경우, 팀 프로젝트 수업의 취지와 공동체 역량에 대하여 다시 한번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사실 협동학습 자체가 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이기 때문에 무임승차를 방지하기 위한 많은 장치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모둠 내 개인별 역할(이끔이, 칭찬이, 기록이, 지킴이 등)을 세부화하고 자기 역할 수행 정도에 따라 평가합니다.

협동학습 모형 중에 TGT 모형(Teams Games Tournaments)이 있는데요. 자기가 공부한 내용을 직접 퀴즈 문제로 만들어서, 퀴즈 게임을 하는 거예요. 기존의 퀴즈 게임은 공부 잘하는 애들이 독식하는 구조잖아요. 이 모형은 그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 모둠 내에서 수준별로 그룹을 나누어서 수준별로 모둠별 퀴즈 게임을 해요. 성적이 비슷한 애들끼리 퀴즈 게임을 하니까 하위권 학생들도 하위권 리그 게임에서 열심히 노력하면 많은 점수를 획득하여 자기 모둠 성공에 크게 기여할 수도 있어요. 이 상황에서는 또래 가르치기가 자연스럽게 일어나죠. 왜냐하면 나만 열심히 공부해서는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기 때문에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자연스럽게 도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예요. 이 모형은 기초적인 지식을 이해하고 암기해야 하는 상황에서 효과적이에요.

 

모둠 안에서는 협력하지만, 모둠 밖에서의 경쟁이 과열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협동학습을 잘못 이해하면 협동학습을 가장한 모둠 경쟁학습으로 진행할 수 있어요. 개인별 경쟁이 아니라 모둠별 경쟁으로 수업이 운영되는 것이죠. 이러한 수업 방식을 협동학습이라고 말하기 힘듭니다. 이 경우, 두 가지 해결 방법이 있는데요, 첫 번째는 학급 세우기(Class Building)’ 활동이라고 해서, 학급 모둠들이 모두 과업 성공을 이루거나 모든 모둠들이 일정 수준 이상에 도달하면 학급 차원의 보상을 실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 학급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거예요. 모둠 세우기 활동만 하고 학급 세우기 활동을 하지 않으면 모둠별 경쟁학습으로 변질되기 쉬워요. 그러니까 때로는 모둠을 뛰어넘어서 전체가 협동해야만 하는 그런 활동을 따로 하는 거죠. 그중에 하나가 학급 온도계라는 활동인데, 온도계 그림을 붙여놓고 다같이 공동의 목표를 이루었다고 생각했을 때 눈금을 올려요. 그래서 그걸 오느 수준까지 채우면 학급 전체를 보상하는 거죠. 이런 식의 학급 세우기 활동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고요.

또 하나는 평가에 있어서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 평가로 보상을 하거나 보상의 기준과 대상을 넓히는 거예요. 만약 8팀이 있다면 1팀만 보상을 할 필요가 있나요? 주어진 과제를 모두 완성하면 8팀이 모두 보상을 받을 수 있잖아요. 교사들 또한 경쟁 문화에 익숙하다 보니 무의식적으로 한 팀만 보상을 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전혀 그럴 필요는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