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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혁신

"교육과정 개정의 주체는 누구여야 하며, 여기서 정부는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하는가?"

by 김현섭 2014. 2. 5.

최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 논란 문제

최근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채택을 둘러싸고 사회적인 갈등 문제로 크게 부각되었다. 지난 201312월 교육부가 교학사 교과서를 한국사 교과서 최종 검정 심의 결정 후 역사학계에서는 즉각적으로 반발하였다. 교학사 교과서가 친일을 미화하고 독재를 미화했다는 것, 5.18 민주화 운동은 시위대의 폭력성에만 초점을 두었다는 것, 고대사 중 서술 상에 있어서 오류가 많고 인터넷 자료들을 짜깁기한 부분이 많다는 것 등을 들어 비판하였다. 이에 대하여 보수 단체에서는 기존 역사 교과서들이 민중사관에 빠진 역사학자들과 전교조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오히려 역사관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역대 대통령의 업적을 비하하고 햇볕정책의 문제점,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하여 충분히 언급하고 있지 않다고 본다.

일부 고교에서 이 교과서를 선택하자 진보단체와 교육시민단체들이 즉각적으로 반발하여 대대적인 불채택 운동이 전개되었다. 이에 교학사 교과서를 선택한 학교들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고 주변에서 많은 사람들이 항의하는 일이 빗발치게 되자 교과서 채택을 번복하는 일이 일어났다. 결국 교학사 교과서 채택율이 0%대 이르자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 언론들이 외압 문제를 제기하였고 이에 대하여 교육부에서는 번복이 정당하게 이루어졌는지 외압 특별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여권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에 한국사 교과서를 검정체제에서 국정체제로 전환해야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이번 교과서 사태를 통해 정치에 의해 교육이 흔들리는 사태를 바라보면서 너무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교육과정 개정의 주체와 정부의 역할에 대한 문제에 대하여 몇 가지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교육과정과 교과서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교육과정은 교육에 있어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과정은 교육활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교육과정의 수준은 국가 수준 교육과정, 지역 수준 교육과정, 단위학교 수준 교육과정, 교사 수준 교육과정으로 나뉜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 따라 하위 수준 영역의 교육과정이 결정되므로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7차 교육과정 개정 이후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 대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지역 수준 교육과정, 단위학교 수준 교육과정 등이 자율권이 강화되고 있는 추세로 발전해왔다.

교육과정을 구체적으로 구현한 것이 교과서이다. 교과서 체제는 국정 교과서, 검인정 교과서, 자유발행제가 있다. 국정교과서 체제에서는 교과서가 곧 교육과정이다. 우리나라는 국정 교과서 체제로 오랫동안 유지되다가 최근 검인정 교과서 체제로 발전해왔다. 현재 교과서 정책은 검인정 교과서 체제이긴 하지만 교육부의 엄격한 통제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국정 교과서 같은 검인정 교과서 체제이다. 교육부가 제시한 기준이 까다롭고 획일적인 측면이 강하다 보니 출판사별 교과서 특성이 충분히 살아있지 못하고 고만고만한 상태이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1권 당 수 억원을 투자해서 개발하는 교과서가 결국 검인정 교과서로 인정받지 못하면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경험해야 하기 때문에 교육부가 제시한 기준에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우리나라 교과서 발전 흐름을 살펴보면 사실 국정 교과서 체제에서 검인정 교과서 체제로 전환된 것은 저절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시대적 흐름에 따라 국정 교과서에서 일부 과목(국어과 도덕과, 역사과)을 제외한 과목의 교과서를 검인정 교과서로 운영하였다. 그러다가 국정 교과서로 운영되던 일부 과목도 검인정 교과서 체제로 바뀐 것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교과서 집필자들도 주로 대학 교수진이나 연구원들이었다. 현장 교사들은 집필 과정에 참여하긴 했지만 엄밀히 말해 집필자라기 보다는 주로 검토진 정도 수준으로 참여하였다. 그러한 교과서 체제에 반기를 든 것이 90년대 전국교과모임연합의 대안교육과정 및 대안교과서 운동이었다. 특히 전국국어교사모임의 우리말 우리글 교과서 출간은 당시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결과 현장 교사들이 검토진이 아니라 집필진으로서 큰 역할을 수행하기 시작하였고 국정 교과서가 검인정 교과서로 전환되는데 큰 영향을 주었다.

교과서 체제는 그 사회의 민주화 정도와 연관성이 깊다. 중앙 집권형 권위주의적 국가일수록 국가 주도의 국정 교과서 체제를 지향하고 지방 분권형 국가나 민주적인 사회일수록 교과서 자율권을 대폭 인정하는 자유 발행제를 선호한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나라 교과서 체제가 국정 교과서 체제에서 검인정 교과서 체제로 발전한 것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 정도와 맞물려 이루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민주화될수록 국정 교과서 같은 검인정 교과서 체제에서 검인정 교과서다운 검인정 교과서로 발전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유발행제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그런데 정치적인 이유에서 검인정 교과서가 국정 교과서 체제로 다시 회귀한다면 단순한 교과서 체제의 기술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의해 교육이 종속화되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국정 교과서 체제로의 회귀는 우리 사회의 민주화가 역행한다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에서 교과서 체제 자체를 무리하게 바꾸는 것은 부작용만 키울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과정 개정의 주체는 누가 되어야 하는가?

교육과정 개정의 주체는 수준에 따라 다르다. ,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개정의 주체는 국가이고 지역 수준의 교육과정 개정의 주체는 지역교육청이고 단위학교 수준의 교육과정 개정의 주체는 단위학교이고 교사 수준의 교육과정 개정의 주체는 교사이다.

그런데 국가 수준 교육과정 개정의 주체는 국가라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를 좀 더 구체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국가의 실체가 정권인지, 국민인지에 따라 교육과정의 주체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의 실체가 정권이라면 정권을 잡은 세력의 시각에서 교육과정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정치적 관점에 따라 교육과정은 수시로 변화될 수 있다. 지금까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개정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국가의 실체가 과연 정권인가? 최근 개봉한 영화 변호인에 보면 변호인이 국민이 곧 국가라고 강조한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국가의 실체가 국민이라면 특정 정치 집단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 정치적인 중립이 이루어진 상태에서 국민 다수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 교육과정 개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헌법에서 제시한 대로 교육이 정치적으로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면 그에 맞는 제도적 장치와 운영이 필요하다. 핀란드의 경우, 국가교육위원회를 통해서 보수와 진보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면서 교육 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교육 정책을 입안, 추진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노력이 필요하다. 어떠한 형태로든 진보와 보수가 모두 참여하여 국민적,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교육과정 개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것이 현실화된다면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육과정을 대대적으로 개정하는 일 등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을 대강화하고 궁극적으로 교사나 단위학교가 자율성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교과서를 만들어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인 이유로 교육을 흔드는 일이 없도록 교육 체제를 재구조화하고 이에 맞는 제도적인 장치를 운영해야 한다. 다양한 검인정 교과서가 출간할 수 있도록 사회적 여건을 조성하고 단위학교들이 검인정 교과서를 비교 분석하여 좋은 교과서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질이 떨어지거나 서술 관점상 문제가 있는 교과서는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건전한 경쟁을 통해 좋은 교과서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 개정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교수, 연구원, 교사 등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학계, 학부모 단체 등 각계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의 주체들이 교육과정 개정 작업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할 것이다.

 

교육과정 개정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은 무엇인가?

정부는 교육과정 개정에 있어서 공정한 관리 및 지원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서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하는 방식보다는 정부의 간섭으로부터 독립된 국가 교육과정위원회를 공정하게 구성하고 교육과정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 교육과정 개정을 추진하되, 원활하게 자기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국가 교육과정위원회에서 교육과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시대적인 필요와 사회 각계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교과서 정책에 있어서도 검인정 교과서 체제를 자유 발행제로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정부 입장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검인정 교과서 체제를 오히려 국정 교과서 체제로 회귀하려고 한다면 이는 시대적인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역행하는 처사에 불과할 것이다. 만약 국정 교과서 체제로 회귀하였다 가정해보자. 보수 쪽에서 정권을 잡는다면 교과서 내용을 보수적인 시각으로 서술하겠지만 반대로 진보 쪽에서 정권을 잡는다면 교과서 내용이 진보적인 시각으로 개정될 것이다. , 정권을 잡은 사람들의 시각에 따라 교과서 서술 내용이 수시로 바뀐다면 가장 큰 혼란을 경험하는 사람은 바로 학생들과 일반 국민들일 것이다. 정치가 사회적 혼란을 줄이고 평화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혼란을 부추기고 갈등만 유발시키는 결과만 낳을 것이다.

정부는 좋은 교과서가 나올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전문가들이 다양한 출판사를 통해 교과서를 집필하고 일선 학교들이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유발행제를 통해 일선 학교나 교사가 학교의 철학이나 수업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교과서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운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미인가 대안학교들이 자유발행제 형태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는데, 그 결과를 분석해보면 부정적인 부분보다 긍정적인 부분이 더 많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미래 시대를 대비한 새 교육과정과 이에 걸맞는 새로운 형태의 교과서 개발 및 출간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생 특성을 반영한 개별화 접근이 가능하고 시공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인터넷 기반 교육 체제를 구성하고 완전학습 모델에 맞추어 일정 수준 이상 학습 능력을 담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새로운 모색이 이루어져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 뿐 아니라 학계, 교육계, 관련 산업계 등이 협력하여 미래 사회에 맞는 교육과정 개정과 교과서 개발이 이루어져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