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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혁신

교과서를 던져라

by 김현섭 2013. 2. 2.

“학교 수업보다 학원 수업이 더 잘 이해가 되요”

비싼 학원비를 내고 방과후 지친 몸을 이끌고 보습학원에서 학생들이 다시 수업을 수강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학습 수준을 고려한 개별 학습, 학교 수업에 대한 예복습, 학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의 우월성 확보, 공교육에 대한 불신 등 사회구조적인 모순들과 결합되어 복잡한 원인들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데 학생들이 생각하는 수업의 만족도 측면에서 국한하여 살펴보면 많은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비해 학원 수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이 사실이다. 왜 그럴까?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에 비해 실력이 부족한 것인가? 현실적으로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에 비해 자질이 뒤지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가 학원 수업에 비해 그리 높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원 강사는 교과서로만 수업을 하지 않는다. 강의 교재를 직접 만들고 문제집이나 워크북을 만들어 수업을 한다. 한마디로 저자 직강 수업을 한다. 강사가 직접 교재를 만들어 수업을 하고 학습 문제를 만들어 풀어준다. 큰 대형학원 강사 뿐 아니라 동네 보습학원에서도 강사들이 자기가 직접 워크북이나 문제집을 만들어 수업을 한다. 그러니까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어떠한 질문을 던져도 막힘없이 바로 대답해줄 수 있다. 왜냐하면 교재를 만든 사람이 강의하고 있는 강사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학교 교사들은 교과서에 의존한 수업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교과서가 아무리 수준이 높고 잘 만들어졌다 하더라도 교과서를 만든 사람이 교사는 아니다. 그러므로 교사는 수업 준비를 할 때 다른 사람들이 만드는 교과서를 분석하여 재구성하여 수업을 해야 한다. 즉 다른 사람들이 만든 교재를 가지고 수업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학교 교사는 수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지도와 행정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과도한 행정 업무의 부담은 수업 부실로 이어진다. 상당수의 교사들이 충분히 수업 준비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 1시간의 일상 수업을 준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30분 이상을 투자해야 한다. 즉, 초등학교에서 6시간 수업을 담당했다면 최소한 3시간은 수업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교사의 일상 업무와 해당 시간을 분석해보면 절대적인 수업 준비 시간 확보가 제대로 확보되지 못하고 있다.

교사의 수업 전문성은 교육과정 기획력에서 나온다. 교사가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학생들의 학습 수준에 맞게 이를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 전문성을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교사가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가르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교육과정 기획력은 교사 개인 차원에서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다.

조현꿈자람 교육과정 이야기

경기도 조현초등학교의 사례를 살펴보자. 조현초등학교에서는 전체 교사들이 단위학교 교육과정에 대하여 연구하고 학교 실정에 맞는 새로운 교육과정을 개발하였다. 일명 ‘조현꿈자람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실천하고 있다.

'조현꿈자람 교육과정은 모든 어린이가 잠재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언어, 수리의 기초 학습 능력과 예술 표현 능력, 탐구 능력을 익히고, 감수성과 통합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해 재구성한 교육과정이다. 다양한 학습 경험을 통해 조화로운 삶을 가꾸도록 교육과정을 재구성한 단위 학교의 개성적인 프로그램이다. 삶과 배움의 일치를 위해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였고 그 교육과정 재구성의 방향은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 지역, 학부모, 학생의 요구와 교사의 교육관을 적극 반영한다.

☞ 토론, 협동, 프로젝트 학습 등 학생들의 참여, 체험, 표현활동을 통해 배움과 나눔의 학습활동이 이루어지도 학습내용을 재구성한다.

☞ 학생 수준이나 지역 여건을 고려하여 교과별 학습내용의 비중이나 순서를 조정한다.

☞ 학습내용의 질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학습자료(조현학습도서, 각종 매체 활용)를 적용한다.

구체적으로 조현꿈자람 교육과정은 다음과 같은 9단계로 구성하여 운영하고 있다.

▶ 교과 교육과정 형태

① 디딤돌학습 : 국어(언어), 수학(연산) 기초 능력 신장을 위한 디딤돌 학습

② 다지기학습 : 전교생이 함께하는 예술, 체육 특기 활동(리코더, 제기차기)

③ 발전학습 : 학생이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자기주도적 학습)

④ 통합학습 : 통합적 사고력을 기르기 위한 조사 탐구, 체험 학습과 연계한 교과통합 학습

⑤ 문화예술학습 : 국어(연극), 체육(무용), 음악(뮤지컬), 미술(디자인) 교과를 문화예술교육 과정으로 재구성

⑥ 생태학습 : 학년별로 학교와 마을 주변의 생태환경을 활용한 생태체험이나 농사체험학습을 실시

▶ 재량활동 교육과정 형태

⑦ 창조학습 : 예술적 표현기능, 탐구기능, 창의성을 기르기 위한 학년별 주기 집중학습을 실시

▶ 특별활동 교육과정 형태

⑧ 어울마당 : 학생회가 기획하고, 진행하는 전교생이 함께하는 자치, 적응, 행사 활동

⑨ 동아리 : 4-6학년의 계발활동으로 학생 스스로가 만들어가는 동아리 활동

디딤돌 학습에서 수학 수업의 경우, 초등학교 6년 과정을 총 12단계로 재구성하여 교사들이 직접 수업 워크북 교재를 만들어 수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학생들 중 기초 학습 능력이 부족하거나 수업에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 교사가 해당 학생들을 모아 방과 후에 보충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다양한 인성 교육 및 프로젝트 수업 등을 통해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방과 후에도 집에 가지 않고 학교에 자발적으로 남아 공부하거나 노는 학생들이 많다. 학생들에게 학교는 행복한 공간이 되었다.

조현꿈자람 교육과정은 조현초 선생님들이 집단 지성을 통해 만들어낸 교육과정이기 때문에 다른 학교 선생님들이 그대로 복사해서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없다. 교사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교육과정을 통해 무엇보다 교사의 수업 전문성이 크게 신장되었다.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교실에 남아 밤늦게 까지 수업 준비를 하고 있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경기도 보평초등학교에서도 미니스쿨별로 교사들이 학년별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운영하고 있다. 보평초 선생님들은 각자 자기만의 두툼한 교육과정 자료집을 가지고 있다. 학년협의회를 통해 행정 업무만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수업과 생활지도에 대한 부분도 함께 연구하고 그 결과를 나눈다.

 

내가 만드는 교과서, 우리가 함께 만드는 교과서

교사가 수업을 할 때 교과서만을 가지고 수업을 하는 것에서 탈피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좋은 교과서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내가 직접 만들지 않았다면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교사가 자기 수준에 맞게 교과서를 재구성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한 것이 바로 학습지(sheet)로 표현된다. 학습지는 교과서 내용을 요약한 학습지와 학습 활동에 초점을 맞춘 학습 활동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수업할 때마다 최소한 1장 이상의 학습지를 교사가 직접 만들어 수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교사들이 개발한 학습지를 참고할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교사가 직접 학습지 내용을 구성할 수 있도록 원칙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교사가 개발한 학습지들을 학교 홈페이지나 교사 수업 자료실 인터넷 까페 등에 수시로 올려 놓아 학생들도 손쉽게 학습지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도록 개방하면 좋을 것이다. 그리고 나서 1학기나 1년이 지나서 학습지 내용을 모아서 정리하여 수업 워크북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다. 방학 기간을 활용해 학습지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수업 워크북을 만들어 수업을 하는 것이 좋다. 이때 수업 워크북에 필요한 예산을 학교 차원에서 확보하여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사 개인 차원이 아니라 동료 교사들끼리 상호 협의 및 공유 과정을 통해 정리한다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조현초나 보평초 사례처럼 학교 차원에서 동료 교사들끼리 교육과정에 대하여 연구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 단위 학교 실정에 맞는 교육과정을 개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교사들이 함께 교육과정에 대하여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천하여 만들어가는 교육과정을 ‘숙의적 교육과정’이라고 한다. 학교 혁신 과제 중 교육과정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학교 차원에서의 숙의적 교육과정 체제를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