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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혁신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재구성?

by 김현섭 2015. 12. 23.

선생님, 우리 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육과정 재구성 연수를 해주세요.”

최근 경기도 외곽에 있는 한 초등학교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2시간 동안 열심히 달려 학교에 갔는데, 막상 가보니 교사 7명 수준의 작은 초등학교였다. 연수를 시작하려는 데 교사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본격적으로 연수를 하기 전에 이 분위기를 눈치채고 그 이유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은 교육과정 재구성을 하라고 압력을 주세요. 특히 외부 출장을 다녀올 때마다 인근 학교들의 교육과정 자료집을 챙겨 오셔서 우리 학교도 이보다 더 좋은 교육과정 자료집을 만들어보라고 하세요. 그런데 정작 새로운 무엇인가를 하려면 지원보다는 통제를 많이 하세요.”

이 연수는 교사들이 받아야 할 연수가 아니라 교장 선생님이 받아야 할 연수라고 생각해요. 저희가 아무리 열심히 교육과정을 고민해도 교장 선생님이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는데, 교장 선생님은 성과물에 대한 압박만 하지 교육과정에 대한 지원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요. 교사수가 적어서 큰 학교에 비해 업무 부담이 큰데, 교육과정 재구성까지 하라고 하니 저희도 힘들어요.”

 

교육과정 재구성 운동의 흐름

최근 혁신학교인 초등학교들을 교육과정 재구성 논의가 매우 활발해지고 있다. 남한산초, 서정초, 보평초 등에서의 교육과정 재구성 운동이 전체 학교들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중학교의 경우, 자유학기제 도입 이후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입시 제도와 방식의 변화에 따라 고등학교도 매년마다 교육과정이 바뀌는 상황이다. 매년 교육부에서는 교육과정 100대 우수학교를 선정하여 발표하고 있다. 예전보다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자율권을 더 많이 부여하고 학교 평가에 있어서도 교육과정 운영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교육과정에 대한 중요성이 예전에 비해 많이 강조되고 있지만 교사들에게는 아직까지 이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 예전에는 주로 연구부장이 단위학교 교육과정 재구성을 적당히 꾸며 만들었다. 연구시범학교나 교육과정이 좋다고 소문난 학교들의 교육과정 자료집을 구해서 적당히 짜깁기한 다음에 교육청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나 교육계 유행에 맞는 단어들을 활용하여 포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과정 자료집을 교육청에 제출하고 나서 교육과정 자료집을 모든 교사들에게 배부하지만 책꽂이 한쪽에 자리만 차지할 뿐 교사들이 교육과정 자료집을 수시로 참고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최근의 교육과정 재구성 운동은 학교별 특색 사업의 필요성과 구성주의의 흐름, 그리고 교사들의 교육과정에 대한 관심이 맞아 떨어지면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많은 교사들은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관심이 낮고 이에 대한 부정적인 편견도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과정 재구성이 왜 필요할까?

교육과정 재구성이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교사가 학생 및 교사, 학교 등의 상황에 맞게 새롭게 구성하여 교육활동을 운영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은 지역 수준, 학교 수준을 거쳐 최종적으로 교사 수준 교육과정으로 구현된다. 국가 수준 교육과정이 잘 구성되어 있다 하더라도 교사가 잘 구현하지 못하면 별 의미가 없다. 교육과정 운영의 질은 최종적으로 교사에게 달려 있다.

필자는 일반 학교 뿐 아니라 대안 학교와 관련된 일도 하고 있는데, 일반 학교와 대안 학교 문화를 비교해보면 일반 학교에 비해 대안학교 교사들이 성장 속도가 더 빠르다는 것을 알았다. 일반 학교 교사들은 권위주의와 안전제일주의의 학교 관리자들로부터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보니 학교관리자들에게 대한 불만을 터트리는 경우가 많다. 그에 비해 일반학교보다 열악한 상황에 있는 대안 학교 교사들은 교육과정 자율권이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보니 일은 많아도 교직에 대한 만족도는 오히려 높고 성장 속도도 빨랐다.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교사들은 에너지를 가지고 더 많이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과정 재구성이 필요한 이유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교사가 교육과정을 잘 이해해야만 좋은 교육과정을 구현할 수 있다. 교육과정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의 문제이다. 교사가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의 깊이만큼 교육과정의 질이 올라간다. 다른 사람들이 만든 교육과정을 교사가 별 고민없이 지식을 그대로 전달하기에 급급하면 내실있는 교육활동을 기대하기 힘들다. 교사는 학생에게 가치있는 것이 무엇이며 그것을 왜 가르쳐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교사의 전문성은 교육과정 재구성 과정을 통해 향상된다.

둘째,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과 학생의 삶 사이에는 간극이 존재한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은 실제 학생들의 삶을 다 담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학생의 특성, 경험, 흥미, 관심, 성취 수준을 반영하기 위해서는 교육과정 재구성이 꼭 필요하다. 단위학교의 교육과정은 어떠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결정된다. 무엇보다 학습자 분석을 통해 교육과정 재구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 다양한 교육주체들이 교육과정 재구성에 참여하면 실제 교육과정 운영이 보다 내실있게 운영될 수 있다. 전체 교사들이 교육과정 논의에 참여해야 교육과정 운영시 교사들의 역량을 최대로 이끌어낼 수 있다. 학부모들의 의견이 교육과정에 반영될 수 있으면 학부모들이 학교 교육과정 운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거나 지원을 할 수 있다.

 

교육과정 개발 모델

교육과정 구성의 모델 중 대표적인 것이 타일러의 합리적 교육과정 개발 모델과 워커의 숙의적 교육과정 모델이 있다. 합리적 교육과정 개발 모델은 목표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은 학습 경험을 조직하는 연역적 접근 방식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가 수준 교육과정 개발 과정이다. 그에 비해 숙의적 교육과정 모델은 교육과정 개발자들의 철학과 관심사들을 바탕으로 자료를 찾아 집단 지성을 통한 숙의 과정을 통해 교육과정을 구성하는 것이다. 단위학교 수준이나 교사수준 교육과정은 여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단위 학교의 교육과정 재구성 작업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숙의적 교육과정 개발 모델을 참고하여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철학과 역량을 바탕으로 학교의 특성과 학생들의 삶, 지역사회의 요구 등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일부 교사만이 교육과정 재구성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교사들이 교육과정 재구성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만 교육과정 운영이 내실있게 될 수 있다. 교육과정 재구성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져야 자연스럽게 교육과정 활동에 대한 동기 부여와 책임감이 생긴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재구성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무엇보다 교사들에게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자율권을 최대로 보장할 수 있어야 한다. 실제 자율성이 높으면 자율성이라는 단어를 잘 사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자율적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교육과정의 자율권에 대한 논의가 많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 자율성이 제대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율권은 교사에 대한 신뢰에서 시작된다. 일부 교사들이 시행착오를 경험한다 하더라도 믿고 맡길 수 있어서 자율성이 신장될 수 있다. 지금까지 교사들이 교과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교육과정 운영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최근 교육과정 자율권이 많이 주어진다고 해서 교사들의 교육과정 재구성 능력이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다. 기회와 자율성을 부여하고 교사들의 역량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다면적인 평가와 피드백이 이루어져야 한다. 실제 교육과정은 의도대로 잘 운영될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잘 운영되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분석하고 칭찬과 격려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잘 운영되지 않았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찾아서 그 대안을 모색하여 다음 교육과정 재구성시를 이를 적절하게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처음부터 교육과정 재구성을 잘할 수는 없다.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그것을 평가하고 피드백하는 과정에서 교육과정 운영 능력이 길러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범교과적 재구성을 시도하는 것보다 교사 개인 차원의 교육과정 재구성이나 교과 내 재구성을 통해 교육과정에 대한 역량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큰 성공을 이끌어낼 수 있다. 범교과적인 재구성은 자칫 이벤트 행사처럼 진행될 수 있다. 일상 수업과 교육과정 활동에서 의미있는 재구성이 상시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어야 한다.

단위학교의 교육과정 재구성이 잘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학교 평가 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단위학교 교육과정을 평가할 때 그 기준이 무엇이냐에 따라 교육과정 재구성 방식이 달라질 것이다. 단위학교 특성에 맞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라고 말하고 나중에 학교 평가시 기존 학교 평가 기준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단위학교 차원에서의 교육과정 재구성이 잘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