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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혁신

학생들은 학습할 의지가 있다?

by 김현섭 2013. 3. 8.

교육학의 기본 전제는 ‘학생들은 학습할 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 최근에 교육학에서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구성주의는 이러한 전제를 가지고 접근하는 대표적 입장입니다. 구성주의는 전통적 교수 학습관에서 제시하는 행동주의와 인지주의를 비판하면서 상대적이고 해석학적인 접근을 시도합니다. 구성주의는 지식의 형성과 습득을 개인의 인지 작용과 개인이 속한 사회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에 비추어 설명하는 상대주의적인 인식론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구성주의에서는 지식을 사람들 마음 속에만 존재하고 의미와 해석은 자신의 지식에 근거하며 환경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구성되지만, 완벽할 수 없고 맥락 지향적으로 이해합니다. 즉, 현대 사회에서 폭발하는 지식과 정보를 학교에서 다 가르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입니다. 필요한 지식은 인터넷 검색을 하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에서 암기를 강조하는 수업 방식은 시대에 뒤떨어진 수업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찾아서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지식과 지식과의 융합이나 다른 학생들과의 사회적 상호 작용을 통해서 새로운 지식을 창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구성주의에서는 학생을 단순한 학습의 대상으로 인식하지 않고 지식을 구성하고 산출하고 설명하고 해석하는 자로 이해합니다. 즉, 학생의 자기 주도성을 강조합니다. 교사도 지식과 정보의 전달자나 권위자로서의 교사가 아니라 학습을 촉진하고 안내하고 돕는 자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구성주의에서 말하는 학생들이 내 교실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반 교실에서 학습 의지가 높은 학생들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잘 집중하지 못하고 떠들거나 잠을 자고 있거나 딴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접근해야 합니까?

많은 교사들이 수업 관련 연수에 참여하면 이에 대하여 도전을 받고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합니다. 평상시 잘 활용하지 않았던 수업 관련 동영상을 어렵게 준비하고 다양한 학습 활동을 계획하고 이에 맞는 다양한 학습지를 준비해서 교실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동영상을 보여주었더니 처음에만 잠시 쳐다볼 뿐 이내 관심을 잃어버리고 딴 짓하는 학생들이 나타납니다. 학습 활동 시간을 주었더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있거나 친구들과 떠드는 경우가 생깁니다. 학습지를 배부했더니 한 두 줄 정도 간단히 써놓고 떠들거나 잠을 자는 학생이 나타납니다. 수업 준비를 하면서 부풀었던 기대와 꿈은 교실에서 쉽게 무너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러면 교사는 스스로 ‘역시 우리 학생들은 안돼, 이렇게 열심히 준비했는데도 잘 따라오지 않는 것을 보면 학생들이 문제가 많아’라고 실망감에 빠지고 예전 수업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경우가 생깁니다.

‘학생들은 학습할 의지가 없다’고 명제를 바꿔야만 수업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열립니다. 즉, 학생들은 학습할 의지가 없다는 것을 전제로 해서 수업에 임해야 합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하거나 설문조사를 해보면 공부가 좋아서 학교에 나온다고 하는 학생들은 극소수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도 공부 자체를 그렇게 좋아하는 학생들은 별로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사실을 깨닫고 나서 수업 시간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첫째, 교과서에서 과감히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확인해보면 교과서를 가지고 오지 않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예전에는 교과서를 가져 오지 않는 학생들을 총을 들지 않고 전쟁터에 임한 군인에 비유하여 야단을 쳤습니다. 하지만 이 사실을 깨닫고부터는 교과서 대신에 학습지나 워크북을 제작하여 활용하게 되었습니다. 학습지의 경우, 100부가 필요하면 100부를 복사하지 않고 130부 정도 복사해서 여분으로 30부를 준비해서 여분의 학습지들을 학습지함에 넣어 놓습니다. 수업 시간에 예전 학습지를 분실했다고 학생들을 야단치지 않고 대신 잃어버린 학생들은 알아서 학습지함 속에 있는 여분 학습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분의 학습지조차도 부족하면 학교 홈페이지나 교과 홈페이지에 탑재된 학습지 파일을 다운받아 활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워크북의 경우, 학교 예산을 활용해서 구입하여 배부하고 여분의 워크북을 준비해서 워크북을 준비하지 않는 학생들에게 대여하거나 워크북을 교실 사물함에 넣어서 보관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렇게 하면 교과서가 없어도 수업을 진행하는데 큰 문제가 없습니다.

둘째, 학생들에게 학습 도구나 준비물을 준비하도록 이야기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필요한 학습 도구나 준비물은 학교 예산을 활용하여 구입하여 해당 수업 시간에 배부하여 이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합니다. 수업에 필요한 학습 도구나 준비물은 학교 예산을 활용하여 준비하도록 하였습니다. 예산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 다른 프로젝트 예산을 활용하여 준비물 예산을 확보하여 운영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학습 준비물 문제로 인하여 학생들과 실랑이를 펼치는 일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셋째,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떠들어도 교사가 최소한 감정적으로 화를 내거나 이로 인하여 상처받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떠드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학생들이 떠드는 행위 자체가 감정적으로 화를 낼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고 감정적으로 야단치는 일이 줄어들게 되었습니다. 대신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떠들게 되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학습 내용이 너무 어렵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면 학생 입장에서는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일제학습에서 학생들이 집중적으로 듣기가 가능한 것은 연령에 비례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생은 5분, 고학년생은 10분, 중학생은 15분, 고등학생은 20분 정도에 불과합니다. 중학생들을 상대로 수업을 하는데 교사가 일제 학습 방식으로 30분 이상 설명하는 데도 불구하고 열심히 학생들이 집중하고 있다면 그 학생이 오히려 이상한 학생이라는 것입니다. 수업 시간에 다루는 내용이 학생들에게 너무 어려운 것인지, 수업 방식이 일제 학습에만 의존하여 집중도가 떨어진 것은 아닌 지를 반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집중도가 떨어지면 학습 내용을 좀 더 쉽게 풀어서 설명하거나 다양한 학습 활동을 도입하여 학생들이 수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운영해보는 것입니다.

넷째, 수업 시간에 가급적 학생들에게 숙제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숙제를 부여하더라도 모든 학생들이 잘 해오리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숙제를 잘 내주지 않는 대신 수업 시간에 주어진 학습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수업을 디자인하고 진행합니다. 숙제를 기한 안에 다해오지 않는다고 해서 학생들을 엄하게 야단치지 않습니다. 대신 숙제를 잘 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고 부드럽게 점검하였습니다.

물론 학생들이 학습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는 명제가 온전한 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학생들이 학습에 몰입하고 공부의 의미와 가치를 깨닫게 되면 점차 자발성을 가지고 학습에 임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학습 의지가 없다는 명제가 학생들은 항상 학습 의지가 없는 상태로 유지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학생들은 학습할 의지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는데, 교사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학습할 의지가 없다고 가정하고 수업을 준비해야 좋은 수업을 풀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