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 학교? KB 학교?

다음 평가 문항의 정답은?

￭ 공부했던 수필 중 열린 결말로 마무리하는 작품을 최소 2작품을 골라 그 효과에 대하여 논하시오.(국어) ￭ 한국 전쟁 발발에 대한 외세의 책임은 어느 정도인가? (역사) ￭ 문화의 날 행사를 개최한 후 그 후기를 영어 250단어-400단어 분량으로 쓰시오.(영어) ￭ 다음 말라리아 발생 수와 강우량의 계절별 패턴 그래프를 보고 이를 비교하고 말라리아 발생 패턴이 연간 강우량 변화에 기인한다는 가설을 검증해 보시오.(과학)

위의 평가문항은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이하 IB)에 속한 한국 국제학교에서 실시한 IB 평가 문항 사례들이다. 이러한 평가 문제를 풀 때, 단편적 지식들을 서술한다고 좋은 점수를 얻기 힘들 것이다. IB 평가 문제는 지식과 이해 등 저차원적 사고보다는 적용, 분석, 종합, 평가, 창조 등 고차원적인 사고 역량에 초점을 두어 평가 문항이 출제된다. 그래서 학생이 다른 학생의 답을 보고 베끼는 부정행위도 힘들다. 왜냐하면 단순한 지식을 묻는 객관식 평가가 아니고, 오픈북 테스트로도 평가를 진행할 수 있는 문제들이기 때문이다.

IB 홈페이지(ibo.org)

 

 

IB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은 이유

최근 IB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 이후 등장한 18대 교육감 체제에서 경기도교육청(보수)의 경우, IB 학교 도입 및 추진을 주요 정책으로 발표하였고, 추후 경기형 IB 프로그램 운영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하였다. 서울시교육청(진보)의 경우, 한국형 바칼로레아(Korea Baccalaureate, 이하 KB)를 선거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 외 세종시교육청 등 일부 시도교육청에서도 IB 도입 문제를 신중하게 고민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통해 보수와 진보 진영을 넘어 모두 IB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 IB 인증학교는 2021년 기준 외국인 대상의 국제학교 11개교, 경기외고, 충남삼성고, 경북사대 부설초·중학교가 있다. 시도교육청 차원에서는 대구시교육청, 제주시교육청, 충남교육청에서 공교육 체제 안에서 IB 학교를 도입하여 운영 중에 있다. 대표적인 학교로 대구외고, 제주 표선고 등이 있다. IB학교로 정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크게 3단계('관심', '후보', '월드스쿨' 단계) 인증 절차를 걸쳐야 한다. 초·중학교는 '후보' 단계까지만 인증돼도 IB학교로 정식 운영할 수 있지만,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월드스쿨'까지 인증을 받아야 IB학교로 운영할 수 있다. 이중에서 제주 표선고는 일반 공립학교로서 IB 학교로 인증받았고, 학급단위로 인증받은 다른 학교들과는 달리 학교단위로 ‘IB월드스쿨’로 인증받았다.

 

그렇다면 최근 IB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기존 우리나라의 교육과정과 평가 체제에 대한 문제점과 이에 대한 불만 때문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학 입시 제도가 바뀌었지만, 교사, 학생, 학부모들이 새 대입 체제에 대하여 만족하기보다는 그에 따른 혼란과 문제점 발생으로 인한 불만이 많았다.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유교적 사농공상 체제에서의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사회적 인식 및 임금 격차가 존재하고 있는 현실에서 사회적 계층 상승 수단으로 교육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소수의 상위권 대학을 진학을 희망하기에 입시 제도가 바뀌어도 치열한 입시 경쟁 구조는 여전히 유지되었고, 새 입시 제도는 새로운 부작용만 낳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공정성과 신뢰성을 강조하는 입시 제도를 선호하다 보니, 논서술형 평가보다는 객관식 평가가 강조되었다. 현행 수능 체제도 그 틀 안에서 운영되다 보니 그 한계를 극복하기 힘들었다.

둘째, IB 학교가 미래학교 모델학교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래학교란 미래사회가 추구하는 가치와 역량을 구현하는 학교로서 미래를 준비하는 학교이다. 현재 미래학교에 대한 다양한 탐색과 실험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IB 학교가 좋은 미래학교의 대안 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왜냐하면 IB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교육과정 및 평가 체제이고, ‘인간애를 인식하고, 더 좋고 평화로운 지구를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국제적인 마음가짐을 가진 전인적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IB 학습자상은 탐구적 질문을 하는 사람, 지식을 갖춘 사람, 생각하는 사람, 소통할줄 아는 사람, 열린 마음을 지닌 사람, 위험을 감수하고 도전하는 사람, 성찰하는 사람 등인데, 이는 미래교육에서 추구하는 학생상과 가치, 역량들과 일치한다. 또한 학습자 중심 교육, 효과적인 교수학습 방법 개발, 국제적 문제에 대한 이해와 참여, 심화주제 탐구 등 IB의 4대 영역은 미래형 교육과정 및 평가에 있어서 의미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셋째, 우리나라에서 IB는 외국 대학 진학 희망자들의 입시에 현실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IB 디플로마(학위, Diploma)는 현재 75개 국에 있는 2000개가 넘는 대학에서 인정해 주고 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대학 등 아이비리그 소속 학교(8개교)뿐 아니라 뉴욕, MIT 등 982개 미국 대학에 입학할 수 있고, 캠브리지, 옥스퍼드 대학 등 78개 영국 대학, 호주 국립대 등 호주 48개 대학, 게이오 대학 등 일본 300개 대학 등에 진학할 수 있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이 IB를 인정하기 때문에 해당 대학들을 입학하는데 IB를 활용하면 좋다. 그래서 우리나라 특목고와 자사고 등에서 해외대학 진학 희망자를 대상으로 별도의 학급단위로 IB과정반을 개설하여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 일반고를 졸업하는 것보다 IB학교를 졸업하는 것이 해외 대학 진학에 도움이 된다.

넷째, 국내 대학 진학 희망자들에게도 대입 전형 시 현실적으로 유리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IB는 서울대, 연세대, 카이스트 등 총 7개 국내 대학에서 인정하고 있다. 여기에 해당하지 않은 대학들도 IB를 통해 진학할 수 있다. 즉, 수능최저등급을 요구하지 않는 학생부종합전형의 일환으로 IB를 통해 국내 대학에 진학할 수 있다. 무엇보다 다수의 대학들이 수시 제도를 활용하여 IB 학생들을 뽑는 이유는 현재 IB 운영 학교들이 대부분 특목고와 자사고이기 때문이다. 대학 입장에서는 우수 학생을 선발하고자 하기에 우수 학생이 상대적으로 많이 있는 특목고와 자사고 출신 학생들을 뽑는 우회적 수단으로 IB를 활용하고 있다는 실정이다.

 

 

IB(국제 바칼로레아)란?

원래 바칼로레아(Baccalauréat)란 용어는 프랑스 대입 평가 체제를 의미한다. IB는 프랑스 바칼로레아를 벤치마킹하여 만든 것이다.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20점 만점에 10점 이상의 점수를 받는 모든 학생들에게 일반적인 국공립 대학 입학 자격 시험으로 절대평가로 운영된다. 바칼로레아는 객관식 평가가 아니라 모두 필기(écrit) 내지 구술 시험(oral)으로 진행된다. 시험은 프랑스어, 외국어, 역사 및 지리, 수학, 철학을 공통으로 치르고 이 외에는 각자가 희망하는 전공분야에 따라 계열을 선택하는 방식이다. 이 중에서 ‘철학’시험은 바칼로레아의 점수 비중이 가장 높은 필수과목 중 하나이고, 네 시간 동안 3가지 주제 중 1가지를 골라 자신의 생각을 글로 적는 것이다. 예컨대, 2015년 철학 문제가 ‘현재의 나는 나의 과거가 만들어낸 것인가?’ 이었다.

IB는 1968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국제 바칼로레아 기구(이하 IBO)에 의해 개발된 국제적인 교육과정으로서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국제학교들이 힘을 모아 국제학교 졸업생들의 대학 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시작되었다. IB는 3세부터 19세 학생을 대상으로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력과 논리적인 탐구 방법을 강조한 4개의 프로그램(유초등 프로그램, 중학교 프로그램, 고교 대학준비 프로그램, 직업 관련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교육과정이다. IB 대입 시험은 고급 수준 3과목, 표준 수준 3과목, 소논문, 지식론, 창의 체험 봉사 활동 등 45점 만점으로 진행되는데, 수행평가를 포함하여 논술형 시험으로 운영하고 있다. IB에서는 자기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생각의 힘을 기르는데 초점을 두고, 학생의 생각을 꺼낼 수 있도록 하고 논리적이고 설득력있게 주장하는지 평가하고 있다. IB DP(대학진학) 교육과정은 크게 6개의 교과군과 3개의 핵심요소로 구성된다. 6개의 교과목은 국어, 영어, 사회, 과학, 수학, 예술이다. 3개 핵심요소는 지식론(철학, 도덕, 논술 등을 통합한 비판적, 이성적 사고 훈련 과정), 소논문(학생 관심 주제에 대해 4000자단어 연구논문 작성), 창의체험활동(예술 및 창의활동, 체육활동, 지역사회 참여 및 봉사활동)이다.

IB 교육과정별 주요 내용

IB 필수 과제의 주요내용과 평가방식(조인식, 2020, 재인용)

IBO는 국제학교들을 중심으로 출발한 교육과정 및 대입 시험, 평가를 위한 비영리 국제 민간기구이다. 2020년 8월 현재 151개국 5,418개 학교가 가입한 상태로서 스위스에 법적 본부가 있고, 네덜란드에 실무본부가 있고, 지역별 본부가 있다. IBO에서 학교단위로 심사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학교 교육과정 운영 지원 및 평가의 질 관리를 하고 있다.

 

 

IB를 둘러싼 상반된 입장과 그 이유들

IB의 국내 공교육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존재한다. 우선 IB 쟁점에 대한 찬성측과 반대측 입장과 논리를 냉철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이기명, 2021)

찬성하는 입장은 무엇보다 2015 교육과정이나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추구하는 교육목표와 역량과 IB가 추구하는 교육목표와 역량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강조한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포용성과 창의성을 갖춘 주도적인 사람’을 추구하고, 추구하는 학생상으로 자기주도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을 지향한다. 또한 핵심역량으로 자기관리역량, 지식정보처리역량, 창의적 사고역량, 심미적 감성역량, 협력적 소통역량, 공동체적 역량을 제시하는데, 이는 IB가 추구하는 학생상과 역량과 연결된다고 본다.

둘째, 공교육에 IB 교육과정을 도입한 이유 자체가 교육격차, 교육불평등, 교육양극화 해소 등 공교육을 통한 포용 가치 실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운영하고 있는 IB 학교들은 비싼 학비를 내야 하는 국제학교, 특목고, 자사고가 많았다. 그런데 공립 일반고까지 IB학교를 운영하면서 무상교육으로 확대하면, 경제 격차에 따른 교육격차를 진정으로 해소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IB 교육과정과 평가는 사교육을 통하여 구현할 수 없기에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이 IB를 귀족교육, 영재교육이라고 보는 것은 오해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넷째, IB 학교 지원 예산은 기존 연구학교나 혁신학교 지원 예산에 비해 크지 않기 때문에 예산 문제는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IB 지원 예산은 주로 한글 번역 작업, 한국인 연수 강사 양성, 교원 연수 진행, 한국인 채점관 양성, 컨설팅 비용, 학교 시설 보완 등으로 사용되는데, 이는 국내 교육 발전에 있어서 도움이 되는 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 교사들의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IB 교사 수급 문제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섯째, IB 국내 도입으로 인하여 현재 객관식 평가 중심의 수능 체제를 혁신하는데 있어서 현실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대입 체제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이 있었지만 이와 관련 사람들과 단체들의 이해관계가 달라서 그 개선 효과는 높지 않았다. 하지만 IB 평가를 국내에 도입하면 실질적인 대입 체제 개선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평가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있는 IB 평가를 통해 내신 부풀리기 문제, 학종의 부작용 문제 등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반해 반대하는 입장은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2022 국가 교육과정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고, 국내 현실에 맞는 한국형 교육과정을 개발하여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인 교육과정 및 평가의 실현 방안이라는 것이다. 구태여 IB 교육과정을 도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IB 교육과정과 평가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2022 국가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성취기준과 모두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한 학교 안에서 2022 국가 교육과정과 IB 과정을 동시에 운영하는 경우, 교육과정과 평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는 것이다. IB를 운영하는 노력과 예산, 그리고 에너지를 우리 교육 현실에 맞는 교육과정 운영과 한국형 논서술형 평가를 개발하고 운영하는데 사용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IB 학교가 교육 불평등과 교육 기회의 차별을 유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IB 학교에 우선적인 관심을 보이는 학교들은 특목고나 일부 사립학교 등인데, 이러한 학교들이 대거 IB 학교로 전환하는 경우, 새로운 특권 학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논술형 대입 국가시험을 서두르지 않은 상태에서 IB 학교들이 늘어나면 새로운 교육 양극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IB 학교에 대한 예산 및 인력 지원은 다른 학교와의 형평성 문제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IB를 도입하는 과정에 있어서 오히려 사교육 증가가 예상된다는 것이다. 중국 IB 학교의 경우, IB과정을 성공적으로 이수하기 위한 학생들의 개인 교습이 횡행하고, 저소득층 학생의 진입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IB 학교에 대한 사회적 선호 현상이 나타나면 IB 학교 진학을 위한 사교육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다. 또한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IB 교육과정과 과다한 학습량, 빠른 진도, 영어 몰입교육에 대한 부담감 등으로 인하여 학생들이 심리적인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넷째, IB 학교에 대한 막대한 예산과 행정을 지원할 경우, 교육예산 배분의 형평성 문제를 야기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IBO에 직접 납부하는 비용인 IB 인증 학교 비용은 약 1천만원 정도이지만 교사 교육 및 연수, 학생 교육 활동 지원비, 학교 시설 보완 등을 포함시키면 훨씬 더 많다. 교원은 IBO가 주관하는 워크숍에 참석하여 연수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며 이에 대한 경비도 지불해야 하고, 학교별로 IBO와 학교 사이에 관련 업무와 교육과정의 구성·평가·학생의 IB 시험 응시, IB 인증 관련 절차 등에 대한 업무를 수행하는 IB 전담 코디네이터를 의무적으로 배치하는 예산도 필요하다. IBO가 실시하는 5년마다 정기적으로 학교 평가를 실시하는데, 약 5백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제주시교육청의 경우, IB 관심학교는 2천만원, IB 후보학교는 5천만원을 지원했고, IB 관련 교육청의 전체 예산은 약 3억원 정도가 된다. 대구시교육청의 경우, 학교당 지원 예산은 IB 기초학교는 3-5백만원, IB 관심학교는 3-4천만원, IB 후보학교는 6-8천만원 정도이다. 또한 IB인증 교사에게 공립학교 자격증을 부여할 경우, 교원 수급 문제, 기존 교사들과의 형평성 문제 등이 발생할 수 있다. IB 교사 중에서 일부는 근무 조건이 좋은 국내외 국제학교로의 이직 가능성도 있다.

다섯째, 현재 수능 체제를 유지하는 상태에서 IB 학교를 확산시키면 새로운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내신과 수능 평가는 1-9등급 상대평가 체제이지만 IB 평가는 절대평가 체제이므로 서로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IB를 만병통치약처럼 바라보는 지나친 기대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서술형 평가는 평가자의 주관성이 개입될 여지가 있고, 공정한 평가 과정이 교사들에게 과중한 업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 공립학교의 IB과정 도입 분석(조인식, 2020, 재인용)

 

 

IB학교의 교육 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풀어가야 할 과제들

IB에 대하여 개인적으로 찬성하든 반대하든 간에 현재 상황에서 바라보면 IB 학교가 일부 시도교육청을 중심으로 많이 확산될 것이다. 그렇다면 IB 찬반 여부를 떠나 IB 관련 교육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몇 가지 고민해야 할 과제들을 생각해야 한다.

첫째, 먼저 이미 운영되고 있는 국내 IB 학교 운영 사례를 연구하고 시행착오의 경험을 바탕으로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 운영되고 있는 IB 학교 국내 유형별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 국제학교의 IB 운영, 일반 공립학교로서 학교 단위로 IB를 운영하는 제주 표선고 운영, 자사고로서 충남 삼성고의 IB 과정 운영, 경기외고, 대구외고 등 특목고의 IB 과정 운영 등 학교별 특성에 따라 IB 운영 방식이 각기 다르고 그에 따른 장단점도 다를 것이다. 이에 대한 정책 연구가 선행되고 이를 바탕으로 IB 학교 추진 전략 수립과 확산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IB학교를 점진적으로 확대하거나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는 방안 등 다양한 대안들을 모색해야 한다. 혁신학교의 성급한 양적 확대에 따른 부작용을 IB학교가 반복해서는 안된다.

충남삼성고 IB 과정 편제표

둘째, IBO와의 협조를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어야 한다. IB는 IBO가 운영하므로 IBO와의 협조 없이 IB 학교를 운영할 수 없다. IB학교는 기본적으로 IBO의 학교 인증 평가 기준에 의한 중앙집권식 학교 관리와 통제를 받는다. 그런데 IBO가 지향하는 교육과정 편성 및 운영 지침, IB의 내외부 평가, 교사 교육, IB 프로그램 인증, 시설 투자, 교사 연수 및 관리 등이 우리나라 공교육 체제 운영 방식과 충돌될 수 있다. 시도교육청(내지 한국 IB학교)과 IBO 사이에서 갈등이 발생한 경우, 이를 조정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미 이러한 갈등 문제는 대구시교육청과 제주시교육청이 경험하고 있다. 무엇보다 IBO가 한국 정부나 시도교육청의 요구를 순순히 받아줄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내려놓아야 한다.

셋째, 기존 한국 교육과정 운영 방식과 달라서 생기는 충돌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영어과 이외 일부 과목에서의 영어 몰입 수업 등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IB학교에서는 학생들은 반드시 두 과목을 영어로 들어야 한다. 영어 과목은 모두 원어민 수업으로 진행된다. 수능에서 강조된 읽기, 듣기가 아닌 쓰기, 말하기 위주의 수업이 이루어진다. 그래서 IB 영어 공부를 한 학생들은 수능 영어 준비에 불리할 수 있다. 또한 미술, 연극, 정보, 물리 과목 중 한 과목 이상 영어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 이 경우, 해당 과목 교사가 전체 수업을 영어로 진행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고, 학생들도 영어로 수강해야 하므로 영어 실력이 부족하거나 중하위권 학생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 있다. IB 학교가 영어권 국제학교들로부터 시작했기에 영어 교육을 강조하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몰입 수업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리고 우리나라 수학과 교육과정에 비해 IB의 수학과 교육과정이 난이도가 낮기 때문에 일단 한국 학생 입장에서는 수학 공부하기 좋을 수 있겠지만 국내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

넷째, 해외 대학 진학 예정자 외에 국내 대학 진학 예정자를 위한 지원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IB는 해외 대학 진학 희망자들에게는 좋겠지만, 국내 대학 진학 희망자들에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는 특목고 및 자사고 재학생 등 상위권 학생들이 IB 과정을 주로 이수하고 있기에 수시를 통해 국내 대학을 진학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부 특목고나 자사고가 IB를 학교 단위가 아니라 학급 단위로 운영한 이유는 해외대학 진학 희망자들을 대상으로 운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학교 단위로 IB 과정을 운영하면 다수의 학생들이 국내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경우, 대입에서 불리할 수 있다. 또한 중하위권 학생이 많은 일반 공립고등학교가 IB 학교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이 생기면 국내 대학도 해당 IB 학교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IB를 국내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려면 국내 대학과의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즉, 국내 대학들이 IB 점수를 많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IB가 국내 대학 입시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어야 IB 학교가 국내에서도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2022 국가 교육과정 및 평가, 입시 체제와 IB 교육과정 및 평가, 입시 체제 간의 공존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의 대입 및 평가 체제와 IB 평가 체제가 충돌하는 지점을 잘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IB 평가 방식을 한국 대입 및 평가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과 한국 대입 및 평가 방식을 IB 평가 방식으로 전환하는 방안이 있을 수 있다. 그런데 전자는 IBO가 받아들일 수 있는 방안이 아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후자는 한국 정부 차원에서 IB방식으로 대대적인 대입 제도를 혁신해야만 가능한 것이므로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후자 방안이 현실화되려면 국가교육위원회 등을 통해 사회적 숙고 과정과 합의가 있어야만 가능할 것이다. 둘의 공존과 협력을 이루려면 시도교육청 내지 교육부와 IBO 간의 상호 이익 추구를 통한 타협과 지혜가 필요하다.

 

KB(한국형 바칼로레아)에 대한 두 가지 입장

KB의 필요성은 현행 수시 전형 학생부종합전형의 한계와 IB에 대한 벤치마킹의 필요성에서 비롯된다. 수능 5지 선다형 객관식 평가 방식과 이로 인한 파행적인 고교 교육과정 운영에 대한 비판과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수시 전형이다. 선다형 객관식 평가는 신뢰성과 공정성, 객관성은 담보했지만 타당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수능 준비로 인한 파행적인 고교 교육과정 운영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등장한 것이 바로 학생부종합전형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수능문제풀이 특강 수업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토론수업이나 프로젝트 수업 등 다양한 학생 참여 수업을 가능할 수 있도록 했다. 학생부종합전형을 통해 고교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었고, 농산어촌 학교나 중하위권 학생들도 상위권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되었다. 하지만 ‘깜깜이 전형’이라는 공정성 문제가 발생했고, 일부 사람들이 추천서와 자기소개서 작성 시 부풀리기를 하거나 소논문을 대필하는 등의 문제점이 생겼다. 부모의 재력과 노력에 의해 학생종합생활기록부를 유리하게 작성할 수 있기도 했다. 그래서 수시 전형 시 추천서를 이미 폐지했고, 2024년부터 자기소개서도 폐지할 예정이다. 생활기록부 작성 시 수상기록도 교내로 한정했고, 기록횟수와 교사들이 적는 글자수도 제한했다. 또한 공정성을 해친다는 이유로 소논문도 폐지했고, 대회나 공인어학성적 등을 쓰지 못하게 했다. 결과적으로 학생생활기록부가 입시 선발 기능에 있어서 변별력을 행사하기 힘들게 되었다. 현재 수시 전형의 비중을 줄이고, 수능 비중을 늘이는 방향으로 대입 제도가 바뀌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예전 수능체제로 회귀하게 되면 예전 수능 체제에서 발생했던 부작용들(강의식, 문제풀이식 수업 강화, 파행적인 학교 교육과정 운영, 고교 교육과정 자율성 위축 등)이 다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KB는 IB에 대한 장점을 한국적 상황에 맞게 구현하자는 것이다. 현행 우리나라 교육과정 및 평가 체제와 IB가 충돌되는 지점이 있으니 IB를 직접 도입하는 것보다 IB를 한국형 절대논술평가 체제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현실적인 접근이라는 것이다. 즉, KB를 통해 비판적 사고력을 키우고, 사고력 중심 교육과정·수업·평가모델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특히 서울시교육감은 KB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경기도교육청에서도 IB 학교 운영을 통해 이를 기반으로 경기형 바칼로레아를 운영하겠다고 인수위 백서에서 제시했는데, 이것이 사실 지역형 KB이다.

진보와 보수 등 정치적 성향을 떠나 IB 자체에 대하여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시도교육청에 따라 IB와 KB에 대한 입장과 추진 전략은 차이가 있다. IB를 직접 도입하여 운영하다가 점진적으로 KB로 발전시키자는 입장과 IB를 건너뛰고 바로 KB로 발전시키자는 입장으로 구분된다. 둘의 공통점은 궁극적으로는 KB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KB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풀어가야 할 과제들

KB를 성공적으로 추진하려면 IB 이상의 풀어가야 할 과제들이 있다.

첫째, KB 정책을 서둘러 추진하는 것보다 신중하고 점진적이며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IB에 대한 실증적인 정책 연구를 토대로 KB 추진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KB 학교 운영 시 소수의 모델학교를 지정하고 성과에 따라서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야 할 것이다.

둘째, 국내 대학과의 협력 체제를 구성해야 성공적으로 KB를 정착시킬 수 있다. KB의 핵심은 대입 선발이다. KB 점수를 대학에서 인정하고 대입 전형의 통로 중 하나로 인정해야 한다. KB를 인정하는 국내 상위권 대학이 많을수록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시도교육청이 지역형 KB를 통해 지역 내 대학들과 고등학교를 연결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학생수 감소 현상으로 인하여 대학 입장에서는 학생 모집을 하는 것이 쉽지 않기에 고교와 대학을 KB로 연결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KB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국내 대학들과의 협력을 통해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정부 차원에서의 대입 제도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선다형 객관식 평가와 상대 평가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수능 체제와 논서술형 평가와 절대평가를 추구하는 KB 체제는 충돌할 수밖에 없다. 궁극적으로는 수능을 절대평가 방식으로 자격고사화하고, KB를 통해 대학이 원하는 학생상에 맞추어 학생들을 선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대입 제도를 갑자기 크게 바꾸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관심있는 고등학교와 대학과의 연계를 통해 점진적으로 KB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넷째, KB에 맞는 교사의 전문성과 역량을 기를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KB에서 교육과정, 수업, 평가 전문가를 양성해야 한다. IB가 교사 연수와 양성을 강조하는 것처럼, KB에서도 교사의 전문성을 신장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필자는 예전에 IB학교인 중국 난징국제학교를 탐방했었는데, 이 학교는 모든 수업을 PBL(문제중심) 수업, 토의토론 수업, 협동학습, 프로젝트 수업으로 진행했다. IB 평가가 가능한 이유는 수업 시간에 교사가 학생들이 자기주도적 학습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고차원적 사고 능력 개발에 초점을 둔 수업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강의식 수업과 문제풀이 수업으로는 IB 평가 점수를 잘 받을 수 없듯이, KB도 이러한 방향에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섯째, KB의 공정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KB 운영 기구인 KBO(한국형 바칼로레아 기구 내지 KB 지원센터)를 구축해야 한다. IB의 평가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IBO 차원에서 여러 가지 노력을 기울인다. IB에서는 교사가 논술 평가 시 학생 이름을 가리고 평가하되, 그 안에 스파이 답안지를 넣어 교사가 제대로 논술 평가를 하는지 확인하고, 점수 부풀리기 등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학교와 교사에게 패널티를 준다. IBO가 3단계에 걸쳐 검증 과정을 통하여 IB 학교를 인증하고, 학교 교육과정과 평가의 질 관리를 위해서 교사 연수를 실시한다. IBO가 교육과정 및 평가의 질 관리를 위해 학교 평가를 실시하고 그에 맞는 학교컨설팅을 실시한다. IB처럼 KB도 희망 학교들을 낮은 기준으로 KB 학교로 인증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준비 단계와 검증 과정을 통해 KB 학교를 선정하고, 학교 교육과정과 질 관리를 위해 정기적인 학교 평가와 그에 맞는 학교컨설팅 활동을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시도교육청이나 교육부가 직접 KB를 운영하는 방안보다 시도교육청이나 교육부가 투자 내지 지원하여 비영리기구 형태로 KBO(한국형 바칼로레아 기구)를 조직하여 운영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시도교육청이나 교육부는 행정기관이지, 교육과정과 평가에 대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연구기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직영의 경우, 시도교육감의 성향과 정부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운영 방식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정치교육이 발달한 이유는 정부가 직접 정치교육을 하지 않고, 정부가 투자하여 재단을 설립하고 재단이 자율성을 가지고 일관성있게 정치 교육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KB를 직접 운영하는 것도 비슷한 문제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학교 현장 교사, 대학 교수, 연구원 등을 중심으로 교육과정과 평가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비영리기구 형태로 KBO를 조직하여 운영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만약 당장 이렇게 추진하는 것이 힘들다면, 차선책으로 교육부 산하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나 시도교육청 산하의 교육연구원에서 KB (지원)센터를 만들고 이를 네트워크 형태로 연결하여 KB 사업을 추진하고 KB 학교 질 관리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시도교육청이나 교육부는 KB 학교의 운영 방향을 제시하고, KB학교 운영에 필요한 예산 지원과 대학과의 연계 등을 하면 좋을 것이다. KBO 조직 및 운영 체제 문제는 추후 정책 연구와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하면 좋을 것이다.

IB 학교 인증과 절차

IB 학교 교원 연수 주요 내용(조인식, 2020, 재인용)

 

[참고문헌]

∙이혜정 외(2019), “IB를 말한다”, 창비교육

∙김나윤, 강유경(2020), “국제 바칼로레아, IB가 정답이다”, 라온북

∙이기명(2021), ‘IB의 국내 공교육 도입 추진 쟁점 분석’,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제 21권 10호

∙조인식(2020), ‘국제 바칼로레아 운영 현황 및 국내 도입을 위한 과제’, 국회입법조사처

∙김천홍(2018),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 디플로마 프로그램의 국내 공교육 도입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학습자중심교과교육연구 제18권 12호

[김현섭 칼럼] 미래교육 화두, 떠오르는 'IB(국제바칼로레아)와 KB(한국형 바칼로레아)' < 칼럼 < 오피니언 < 기사본문 - 교육플러스(e뉴스통신) (edpl.co.kr)

[김현섭 칼럼] 미래교육 화두, 떠오르는 'IB(국제바칼로레아)와 KB(한국형 바칼로레아)' - 교육플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