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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이야기

[수업운동사(1)] 1990년대 수업운동사(열린교육운동과 전국교과모임을 중심으로)

by 김현섭 2026. 3. 17.

수업운동사를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

일반적으로 역사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의 사실과 경험을 통해 현재를 올바르게 이해하고, 선조들의 성공과 실패 경험에서 지혜를 얻어 미래의 문제를 현명하게 해결하기 위해서이다. 여기에서 수업 운동사를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의 수업운동가(교육활동가)들이 당시 수업 혁신을 위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떠한 방식으로 수업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고, 그 결과 성공과 실패를 어떻게 경험했는지를 정리하여 이를 통해 현재의 수업운동에 있어서 타산지석(他山之石)의 경험을 삼기 위함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지난 30여년 동안 수업운동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1992년 교직에 들어서면서 교과모임을 조직하여 활동했고, 기윤실 교사모임에서 활동했다. 1993년부터 수 년동안 서울도덕교사모임에서 활동하면서 교육과정 재구성과 다양한 수업방법에 대하여 배우고 실천했다. 1997년 협동학습을 접하고 나서 1998년 협동학습 수업동아리(학교 안 교사학습공동체 모임) 활동을 했다. 2000년 협동학습연구회를 개척하여 이후 15년 동안 협동학습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2012년 교육방송 선생님이 달라졌어요프로그램에서 수업코치로 활동했고, 이후 현재까지 유초중고 및 대학교수들을 대상으로 수업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2015년 수업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하여 연구소에서 현재까지 13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질문 기반 수업디자인, 교육과정과 평가, 에듀코칭 분야 등 다방면에서 수업콘텐츠를 연구하고 보급하고 있다. 그동안의 수업 운동 경험을 바탕으로 수업운동사를 정리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운동(movement)이란 기존 문제의 구조, 제도, 가치, 규범 등을 변혁, 개선 또는 방어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결성하여 지속적으로 전개하는 조직적이고 집합적인 행위를 말한다. 운동의 성격은 자발성, 집단성, 지속성, 목적성 등이 있다. , 운동이란 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꾸준히 움직이는 것이다. 그래서 운동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운동은 방향, , 재생산의 요소가 있어야 한다. 수업 운동이란 교사들의 교실 수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 구조, 제도, 가치 등을 변화시키기 위한 자발적이고 조직적이고 지속적이고 사회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는 1990년대부터 2020년대 중반까지 수업운동의 역사를 정리하고자 한다. 당시 수업담론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각 수업담론의 의미와 특징, 교사들의 자발성과 인식, 당시 시대적, 사회적 특성, 정부의 지원 정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를 통해 수업운동의 의미와 평가를 통해 시사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1990년대 수업운동

열린교육운동(초등)

전국교과모임 활동은 주로 중등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다면, 열린교육운동은 초등 교사들이 중심으로 되어 교실 수업 방법을 바꾸는 운동으로 진행되었다.

열린교육이란 개별화된 학습자 중심의 교육으로서 학습자의 학습 속도와 관심에 있어서 개인차를 존중하고 내재적인 흥미에 의해 자율적으로 학습해 나가도록 하기 위해 교육과정 편성 및 학습 집단 편성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총체적인 자율화 교육이다. 열린교육의 최소 조건은 개별화, 자율화, 적극적인 상호작용적 교수학습, 다양한, 융통성이다.

열린교육 운동의 출발점은 영국의 비형식화교육에서 비롯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학교 교육활동은 기존 학교 교육활동 방식으로 진행될 수 없었고, 혼합학년 수업, 천막 교실 수업 등 전시 비상 상황에 맞게 수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전시 학교 교육활동의 성과를 정리하여 대안으로 모색된 것이 비형식화 교육이었다. 비형식화교육이 1960년대 미국 교육에 영향을 미치면서, ‘열린교육이란 이름으로 확산되었다. 1960년대 미국의 열린교육 운동의 핵심은 개별화 교육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개별화 수업의 문제점들이 나타나면서 이를 비판하고 보완한 대안이 협동학습 운동이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 열린교육 운동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을 때 미국의 개별화 수업과 협동학습이 동시에 소개되었다. 한국열린교육운동에서는 이 둘을 합쳐서 한국열린교육 운동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교사 및 지식 중심의 전통적 수업방식을 제외한 다양한 학생 참여형 수업들을 열린교육 범주에 포함시켰다. 그래서 미국의 열린교육 운동과 한국의 열린교육 운동은 비슷하면서 차별되는 부분이 생기게 되었다.

1986년 서울 운현초와 영훈초에서 도입된 열린교육은 전국의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서서히 열린교육 운동의 성과가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영훈초등학교의 경우, 교실과 복도 사이의 물리적인 벽을 철거하고 개방형 교실 형태로 구성하였다. 기존 강의식 설명법과 문답법에서 탈피하여 과제분담학습, 코너학습, 팀티칭, 열린 교실공간 등 다양한 형태의 수업 방법들이 소개되고 실천되었다. 현장 교사들 뿐 아니라 교육학자들도 참여하여 열린교육협의회 및 열린교육학회까지 결성되었다. 대학 교수들과 연구자들이 미국의 다양한 열린교육 수업 방법들을 소개하고, 현장 교사들이 열정적으로 실행하여 그 성과를 공유하였고, 이를 대학 교수들과 연구자들이 논문으로 다시 정리하는 방식으로 확산되었다. 열린교육 운동의 초창기 특징은 대학 연구자들과 교사들이 협업하여 활성화되었다는 것이다.

열린교육 모델학교였던 최근 영훈초등학교 수업 장면

당시 열린 교육 실천 교사들의 열정과 실행력은 매우 뛰어났다. 1987년 평택 안중초 교사들을 중심으로 열린교육 운동이 시작되었다. 안중초는 공립초등학교라서 지속성의 한계가 있었으나 이후 운현초, 영훈초 등 사립초등학교에서 연구 실행되면서 그 성과를 체계화되고 확산되는데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1993년부터 열린교육연구응용학회를 중심으로 교사 워크숍이 진행되었다. 교수 중심이 아니라 열린교육 실천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연수 강사로 활동하면서 교육 실천 사례가 풍성해지기 시작하였다. 운현초에서 개최된 열린교육 교사워크숍 연수에서는 밤샘연수회 형태로 진행하였다. 당시 저녁 7시에 모여 잠자지 않고 새벽 4시까지 열린교육 연수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다. 전국의 교사들이 모여 잠자지 않고 밤을 세워가며 수업연수를 실행한 경험은 교육사 차원에서 전후무후한 교육 사건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열린교육의 뜨거운 열기는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김영삼 정부 시절 5.31 교육개혁 정책이 추진되면서 정부 차원에서 열린교육 정책 사업으로 강력하게 추진하였다. 1996 24개교가 교육부 지정 열린교육 시범학교를 시작으로, 1999년에는 초등 47개교, 중등 23개교로 확대되어 정점을 찍었다. 그동안의 열린교육 운동 방식이 아래부터의 수업혁신 운동에서 위로부터의 수업혁신 운동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수업운동 방식은 극명한 명암(明暗)으로 나타났다. 짧은 시간 안에 전국적으로 열린교육 시범학교가 확대되고 열린수업 방법들이 실행될 수 있었다. 하지만 열린교육 철학보다는 열린교육 시범학교에 따른 승진 점수, 학교 지원 예산 등 인센티브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열린교육 운동을 주도하기 시작하면서 열린교육 운동의 진정성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다. 일부 학교나 교사들도 열린교육 본래 취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진행된다는 비판이 대두되었다.

열린교육 운동에 결정적인 찬물을 부은 사건은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에서 교실붕괴현상의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그 원인을 열린교육 탓으로 보도한 것이다. 중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수업에 잘 집중하지 못하고, 학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 원인이 초등학교에서 열린교육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이후 열린교육 운동은 급격한 하락의 길을 걷게 된다. 결국 교육부 차원에서 추진하던 열린교육 시범학교는 교실수업방법개선 학교로 명칭이 바뀌게 되고, 그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그 용어조차 사라지게 되었다. 열린교육 운동의 사례 분석을 통해 정부 중심의 위로부터의 운동(Top-down, 하향식 접근)과 현장 교사 중심의 아래로부터의 운동(Button-up, 상향식 접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진다고 볼 수 있다.

 

전교조 산하 참교육실천 운동과 전국교과모임 활동(중등)

전교조는 1985민중교육지 사건과 1986년의 교육민주화 선언을 계기로 시작되었다. 이후 1986년 결성된 민주교육실천협의회를 거쳐 19879월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가 결성되었고, 1988민주교육법 쟁취 전국 교사대회를 거쳐 1989년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결성되었다. 전교조에 의해 제시된 참교육 실천 운동은 민족교육, 민주교육, 인간화 교육 등을 지향하였다. 전교조 교육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참교육 실천대회를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교육과정, 수업, 평가, 생활교육 등 다양한 교육 실천 성과들을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공유하였다.

1987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운동의 흐름 속에서 1988년 전국국어교사모임, 전국영어교사모임, 전국역사교사모임, 1992년 전국도덕교사모임, 1997년 전국지리교사모임, 1998년 전국사회교사모임, 1994년 전국수학교사모임(수학사랑) 등이 결성되어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교과모임들이 나중에 전교조 산하 전국교과모임연합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였다. 처음에는 전교조 조합원을 중심으로 교과모임이 결성하여 운영되다가 시간이 흐르면서 각 교과모임별로 사단법인화되고, 전교조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하여 운영되고 있다.

전국국어교사모임 출간 함께 여는 국어교육

교과모임은 해당 교과 회원 교사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공동 수업디자인 활동을 진행했다. 개인적으로 수업을 준비하여 운영하는 방식을 넘어 자기 수업지도안을 공유하고, 다른 교사들과 협력하여 공동 수업지도안을 만들어 공동 수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당시 수업 관련 콘텐츠는 주로 대학 교과내용학 전공 교수들을 중심으로 진행되거나 교육청 정책 사업 홍보 수준이었다. 그래서 실제 현장 교사들이 가지고 있는 수업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한계가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과모임 운동은 교사들의 자발성을 바탕으로 공동 수업 연구 및 실행이라는 대안을 제시하였기에 그 의미가 있었다. 전국교과모임 활동은 학교 밖 교사학습공동체 운동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전국교과모임에서는 공동 수업디자인 활동 뿐 아니라 대안 교육과정 운동도 전개하였다. 국가수준 교육과정 총론과 교과 교육과정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대안적인 교과 교육과정을 만들어 그에 맞는 대안 교과서 집필 및 보급하는 활동을 하였다.

아무래도 당시 전국교과모임 활동가들의 상당수가 전교조 조합원이었다. 정부에서 전교조를 정치적으로 억압했었기에 정치적 문제를 수업에서 다루는 문제를 두고 정치적 충돌이 있었다. 당시 전교조에서는 정부가 정치적 보수 이데올로기를 국가 교육과정을 통해 주입하려고 한다는 비판하였기에 국가 교육과정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반대로 정부에서는 전교조를 빨갱이 교사(?)라고 탄압했기에 정부와 전교조 사이의 긴장과 대립이 있었다. 예컨대, 인천도덕교사모임에서 북한 바로알기 통일교육 수업자료집 발간을 문제삼아 집필 교사들을 대상으로 경찰과 국정원이 조사하고 감시했던 일도 있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국정 교과서 외의 교수학습자료를 수업에서 활용하는 것을 금지하였다.

당시 국정 교과서 체제에서 검인정 교과서 체제로 변혁시키는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단체가 전국국어교사모임이었다. 전국국어교사모임이 그동안의 연구 실천 성과를 모아 2001년에 우리말 우리글이란 대안교과서를 출간했다. 일부 대학교수 및 대학원생들이 중심이 되어 발간한 기존 국정교과서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었다. 그런데 현장 국어과 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국어교사모임 차원에서 후원금을 모아 자체 대안교과서를 만들었다. 그런데 우리말 우리글은 국정교과서에 비해 전반적인 수준이 높았다. 활동 중심의 통합적 구성, 주제 중심의 통합적 구성, 학생 중심의 교재, 교수학습 구조화, 수업 디자인 개념 구현, 다양한 매체의 효율적인 사용, 풍부한 어휘학습 등이 특징이었다. 2007 개정 교육과정에서부터 국어, 도덕, 역사과가 국정교과서 체제에서 검정교과서 체제로 전환되었다. 당시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정부 입장에서도 교사 중심의 교과서에 대하여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우리말 우리글작업에 참여한 교사들이나 상당수의 교과모임 회원 교사들이 교과서 출판사 집필위원으로 참여하면서 검정교과서가 더욱 풍부하게 집필될 수 있었다. 교과모임에서 활동한 교사들이 자신의 교과 전문성을 신장시키는 수준을 넘어, 대안교과서, 검정교과서 작업에 참여함으로서 교과 전문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세월이 지나가면서 전교조 구성원들의 세대교체가 잘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전교조 내부 노선 갈등으로 인하여 다른 교원단체들이 분화되어 나가기도 하였다. 현재는 교사노동조합연맹(교사노조), 한국교원노동조합(한교조), 대한민국교원노동조합(대교조) 등 다른 교사노조들이 생기면서 전교조 영향력이 예전보다 많이 위축되었고, 그에 따라 참실 운동의 영향력도 예전보다 줄어들었다. 전국교과모임들도 원활한 세대교체가 잘 진행되지 못한 경우도 있고, 각 교과모임의 특성과 상황에 따라 활동 분위기가 각기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참고문헌]

한면선(2000), ‘열린교육 확산과정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덕성여대 석사학위논문

전국국어교사모임 사이트 https://www.naramal.or.kr/

 

전국국어교사모임

전국국어교사모임

www.naramal.or.kr

전국교직원노동조합 https://www.eduhope.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