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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혁신

학교행정업무를 어떻게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을까?

by 김현섭 2012. 5. 25.

최근 행정 업무 경감에 대한 요구가 단위학교에서 거세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수업과 생활지도 중심으로 가야 하는데 학교는 여전히 행정 중심 방식으로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일반 학교들이 행정 중심 학교인 근본 이유는 교과부-교육청-교육지원청-단위학교로 이어지는 수직적인 관료 체제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위학교의 교육력을 평가하는 것은 학부모나 학생, 지역사회가 아니라 교육청이 평가하고, 교육청은 교과부가 평가하기 대문입니다. 수업과 생활지도는 현실적으로 평가하기 쉽지 않으나 행정은 특성상 공개적으로 평가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교사가 학교안에서 인정받으려면 행정 능력을 탁월하게 수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다보니 생활지도나 수업은 교사의 관심에서 점차 밀려나게 됩니다.

행정 업무를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려면 근본적인 학교 행정 시스템 자체를 혁신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교육지원청을 학교지원센터로 전환하고 시도교육청에서 행정을 전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교육청이 관리 통제 방식이 아니라 학교지원 체제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공문을 감당할 수 있는 행정실무사를 더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문 자체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교육행정 혁신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지기 힘듭니다. 교육 정책의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고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올해부터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학교업무 정상화방안을 발표하고 예시안을 제시하여 여러 학교들이 교수학습업무와 행정업무를 이원화하여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학교행정업무 실태를 파악하고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한 테스크포스팀까지 구성하여 논의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그리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패배주의에 빠져 있을 필요는 없습니다.

최근 혁신학교 거점학교인 흥덕고를 방문했습니다. 학교업무경감방안에 대하여 많은 고민을 가지고 잘 실천하고 있는 학교입니다. 흥덕고 사례는 현실적으로 단위학교에서 업무 경감을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잘 알려주는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학교업무경강방안 실천 운영 방안에 대하여 흥덕고 교감 샘과 장시간 인터뷰를 했습니다.

흥덕고의 업무 경감 기본 원칙은 교사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되 기존 행정 업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업무 조직을 개편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흥덕고는 신설학교, 혁신학교로서 행정 업무가 많은 편이고 부장 경력을 오랫동안 해본 교사가 적은 상황입니다.

흥덕고의 운영 특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교무조직을 3원화했습니다. 교수학습팀(담임, 교과), 교수학습지원팀(교무, 학생, 연구, 혁신부), 행정지원팀(교감, 행정실, 행정실무사)으로 조직 개편을 했습니다. 교수학습팀은 배움지원팀(교과부서)과 성장지원팀(상담, 학년부, 문예체능부)로 나누었구요.

둘째, 행정실, 행정시장실, 교감실, 교수학습지원팀 공간을 공유하되 유리창으로 간이벽 처리를 하였습니다. 각 부서간의 소통을 위해 공간을 붙여서 유리창으로 서로의 업무를 볼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공간을 재배치했습니다. 실제로 업무중 각 팀의 연대가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셋째, 행정실무사(행정요원)를 두고, 이들에게 고유 업무를 담당하고 기안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습니다. 흥덕고는 현재 3명인데, 학교효율화 사업 1명, 교과교실제 1명, 혁신학교 거점학교 1명으로 인건비를 충당하여 총 3명의 행정실무사가 활동하고 있습니다. 실제 행정 업무의 상당부분은 행정 실무사들일 처리하는데 교사에 비해 행정 업무만 전담하다보니 1사람이 여러명의 교사가 감당하는 일들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수업계, 교과서계, 홈페이지 등 많은 업무를 처리하는데 각 행정실무사에게 교무, 학생, 연구로 특화하여 업무를 분담합니다.

넷째, 전결 규정을 적절하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행정 공문 결재를 하는데 있어서 교장 30%, 교감이 30%, 담당 부장이 40% 정도를 전결 처리하고 있습니다. 업무의 성격에 따라 최종 결재자를 구분하여 운영하여 실무 담당 부장들이 결재하되 업무 최종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물론 1년차에서는 교장 샘 중심으로 처리하고 2년차에서는 전결 규정을 어느 정도 적용하기 시작했고, 3년차에서는 전결 규정을 확대하여 운영하고 있습니다. 연차별로 학교 상황에 맞게 연착륙을 시도한 것입니다.

다섯째, 교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각 팀과의 업무를 조정하는 역할을 교감이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학교에 비해 교감 샘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흥덕고 모델을 적용하려면 일반 학교에서 교감 샘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만 가능하겠죠.

물론 현재 체제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지속적인 예산 확보 문제, 학년부 중심으로 체제 개편에 대한 고민 등등이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개별학교 차원에서 다 처리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육청에 건의하여 체계적인 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안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흥덕고가 성공적으로 업무 경감을 이룰 수 있었던 이유는 교원업무를 조정한 근본 이유에 대하여 학교구성원들이 공감하고 있었고 교사의 전문적 학습 공동체가 구축되어 상호 간의 신뢰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교사, 행정실무사, 행정실 직우너 모두 만족도가 골고루 높은 편입니다. 업무 조정을 섯불리 시도하면 한쪽은 만족도가 높아질 수 있지만 다른 한쪽은 상대적으로 불만이 높다면 오래가기 힘들 것입니다.

학교가 행정 업무의 부담에서 벗어나고 수업과 생활지도에만 전념할 때 학교가 학교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학교 행정의 부담이 획기적으로 줄여들었다고 해서 학교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최소한의 조건을 마련했다는 것입니다. 학교가 수업과 생활지도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 나서 학교가 수업과 생활 지도에 대하여 집중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학교가 행정 중심 학교가 아니라 교육 중심(수업, 생활지도)인 학교로 거듭나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