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학교혁신

덜어내기

by 김현섭 2012. 8. 2.

학교, 행복하세요?

학생들이 모르는 비밀 한 가지는 학생보다 교사들이 방학을 더 기다린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한 학기 동안 바쁜 업무에 시달리게 되면 몸과 마음도 지쳐서 방학을 애타게 기다린다. 방학은 교사에게 쉼과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언제부터인가 방학도 여러 가지 연수나 회의, 업무, 보충 수업 등으로 채워져서 방학이라도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시간은 그리 얼마되지 않는다. 방학이 끝마칠 때가 다가오면 교사들도 부담감이 밀려온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가장 행복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학교 안에서 행복과 설레임을 점차 잃어버리고 있다. 학교가 행복한 공간이 되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행복의 첫 번째 조건, 덜어내기

올해 전국적으로 좋다고 소문난 학교들을 찾아 탐방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 이러한 학교들의 공통점은 덜어내기를 잘했다는 것이다. 즉, 기존 학교 업무 중 더 이상 의미와 가치를 잃어버린 일들을 찾아 과감하게 없애버리는 것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것이다. 성남 D 중학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우리 학교 업무 중 과감하게 없애버려야 할 사항을 설문 조사를 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 각종 글짓기, 그림 그리기 대회 줄이기

■ 환경미화 심사

■ 강제적인 방과후 학교 참여 독려

■ 교문 지도

■ 두발, 복장 검사

■ 베끼거나 다운 받아서 내는 수업지도안

■ 연구수업지도안

■ 보고용 행사 (소수를 위한 다수의 동원이 필요한 각종 대회)

■ 잦은 학교 행사

■ 전달 위주의 교직원회의

■ 교직원협의회시 돌리는 형식적인 문서 연수들

■ 현재의 교원평가제

■ 결재 방법 개선 (구태여 대면 결재가 필요하지 않는 사안까지 대면 결재를 요구하지 않기)

■ 교사들의 미술 실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축제 전시회

■ 학생들에게 의무교육 이수를 위해 단체로 방송 수업을 하는 것

문제가 많은 학교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덜어내기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새롭게 더하기에만 치중한다는 것이다. 연구시범학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승진 가산점과 예산 등의 인센티브로 인하여 운영되는 연구시범학교는 기존 학교 활동에 대한 성찰과 이에 따른 덜어내기 작업이 없이 각종 프로그램들로 채워져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연구시범학교 발표회를 참석해보았지만 실패했다는 학교를 본적이 없다. 그런데 1-2년 시간이 흐른 뒤 그 학교를 찾아가서 예전 연구시범학교 사업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지 확인해보면 거의 시행하고 있는 학교는 드물다. 누구를 위한 연구시범학교인가?

교육청 추진 사업도 마찬가지이다. 작년 서울시교육청 주관 정책과제 사업 일환으로 수업혁신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이때 교육청, 연수원, 교육연구원 등에서 실시하고 있는 수업 혁신 관련 사업들을 점검했었는데, 관련 사업들의 분량이 엄청났다. 그런데 문제는 각 부서마다 자기 부서 사업에만 집중할 뿐 다른 부서의 업무를 잘 모르다보니 각 부서마다 나름대로 수업혁신 과제들이 추진하고 있었다. 여러 부서에서 비슷한 업무를 추진하다 보니 결과적으로 단위학교에서는 비슷한 일들을 중복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막상 덜어내기를 하려면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 왜냐하면 각 사업은 나름대로의 의미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추진하는 사업은 없기 때문에 막상 없애버리려고 하면 쉽지 않다.

학교 성찰

학교 안에서 성공적으로 덜어내기 작업을 하려면 각종 사업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반성이 필요하다. 그 사업이 아무리 의미와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그동안의 시행 결과에 대하여 냉철하게 점검하고 그것이 지속되어야 할 사업인 것인지, 시간적인 유효성을 다한 사업인지를 냉철하게 평가하고 추진할 수 있어야 한다.

경기도 혁신학교 거점학교인 호평중학교 강범식 교장 선생님을 만나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다. 교장 공모제로 교장 선생님이 부임했는데, 부임하자마자 일부 선생님들이 찾아와서 어떤 자료를 내밀었다. 자료 내용을 살펴보니 교사들이 부서별로 기존 업무 사항과 각 업무에 대한 개선 사항을 정리한 문건이었다. 교장 공모제 과정에서 제출한 교장 선생님의 학교 운영 전략과 계획이 있었지만 그것을 교사들에게 공개하지 않고 교사들이 제출한 덜어내기 사항을 중심으로 2달 동안 교장 선생님이 교사들과 함께 그 일들을 추진해갔다. 그 과정에서 불필요한 업무들의 상당 부분들이 사라졌고 그 과정에서 교장 선생님과 교사들 사이의 신뢰가 형성된 계기가 되었다. 놀라운 것은 1년이 지난 뒤 학교 평가를 해보니 교장 선생님이 원래 추진하려고 했던 학교 운영 계획서 내용의 상당수가 이미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미리 준비한 학교 운영 계획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추진했다면 한계가 있었겠지만 교사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학교 운영을 추진하다보니 교사들의 자발성을 최대한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이었다. 호평중학교 1학기 평가회를 위한 교직원회의에 직접 참여해보니 각 부장들이 나와 1학기 추진 업무에 대하여 전체 교사들에게 보고하고 평가 작업을 하는 것을 보았다.

 

<교사들이 직접 만들어 준 호평중학교 교장 선생님 팻말이다. 교장 선생님이 우리 학교의 참 일꾼이 되어주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직접 만든 팻말이다.>

<호평중학교 1학기 활동 평가 교직원회의(2012.7.23)에서 교사들끼리 1학기 교육 활동 평가회를 진지하게 참여하는 모습이다.>

덜어내기를 기반으로 더하기 작업을

성공적인 혁신학교들을 직접 가서 살펴보면 결코 일이 적은 학교가 아니다. 오히려 기존 학교에 비해 일이 많은 학교이다. 그런데도 교사들의 학교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그 이유는 의미없는 일들을 관행적으로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스스로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찾아 그 일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일부 학교 관리자들과 교육 관료들은 교사들을 근본적으로 믿지 못한다. 그러기에 교육 혁신의 대상으로 바라볼 뿐 혁신의 주체로 인정하지 못한다. 이러한 접근으로는 학교 문화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힘들다.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덜어내기를 잘 해야 한다. 덜어내기를 잘해야 새로운 것을 더할 수 있다. 그런데 새로운 더하기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교육적인 가치여야 한다. 학교가 교사들에게 설레이는 그 무엇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교사들의 자발성이 살아날 수 있고 교사들의 자발성이 살아나야 학교가 살아날 수 있고 행복한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