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에도 수준과 단계가 있다?!
수업에도 수준과 단계가 존재한다. 수많은 선생님들의 수업을 참관하고 수업코칭 활동을 하면서 교사의 수업 수준과 단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교사의 수업의 수준과 단계를 정리하는 데 있어서 단계를 구분하는 기준에 따라 다양하게 수업의 단계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파커 파머는 교사와 학생, 지식과의 관계 연결망을 중심으로 2단계로 구분하였다. 인식의 객관론 신화 모델과 진리의 학습공동체 모델로 구분하였다. 인식의 객관화 신화 모델은 교사가 지식을 습득하여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다. 반면 진리의 학습공동체는 학습 주제를 중심으로 교사와 학생이 활발한 상호 작용을 통해 교학상장(敎學相長)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유동걸(2015)은 질문의 상태에 따라 수업의 수준을 구분하였다. 즉, 질문과 반응의 주체, 그리고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다음의 6단계로 설명하였다.
■F등급 : 아무도 묻지 않는 교실
■D등급 : 교사가 묻고 교사가 답한다
■C등급 : 교사가 묻고 학생이 답한다
■B등급 : 학생이 묻고 교사가 답한다
■A등급 : 학생이 묻고 학생이 답한다
■S등급 : 교사와 학생의 구별이 사라진 수업
그런데 이러한 접근들은 다양한 교사들의 수업 수준을 분석하는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접근들이 각 단계별 설명이 그리 구체적이지 않고 교사의 수업 성장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들을 충분하게 제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수업 성장을 하려면 냉철하게 자신의 수업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다음 단계가 어떠한 지를 잘 알아야 수업 성장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래서 교사의 수업 성장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좀 더 정교하게 세분화하여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자 한다.
내 수업의 수준과 단계는 어디쯤일까?
교사의 수업 수준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배움, 관계, 교사의 내면, 철학 등이다. 사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교사의 수업 수준을 결정한다. 수업의 본질을 이해해야 수업의 수준도 잘 설명할 수 있다. 수업의 본질적인 요소는 교사, 학생, 지식, 관계이다. 이 네 가지 요소가 복잡하게 연결되어있으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에 있다.
수업은 지식을 중심으로 가르침과 배움의 상호작용 형태로 진행된다. 즉, 가르침과 배움이 씨줄과 날줄처럼 복잡하게 연결된 형태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가르침이 있어야 배움이 존재할 수 있다. 배움은 혼자 존재할 수 없다. 또한 가르침이 있어도 배움이 꼭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배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실패한 수업이다.
필자는 교사의 가르침과 학생의 배움, 지식과 교육과정, 관계와 질서를 중심으로 교사의 수업 수준과 단계를 정리하고자 한다. 교사 측면에서의 가르침은 수업 디자인 역량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수업디자인 역량이란 수업을 기획하고 운영하고 성찰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학생 측면에서의 배움은 참여하는 학생의 대상과 범위, 수준과 의지 등의 복합적인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 지식 측면에서의 지식관과 지식 수준은 지식에 대한 인식론적 태도와 교사와 학생의 지식의 습득 수준을 말한다. 관계와 질서 세우기는 공존해야 수업이 잘 이루어질 수 있다. 관계와 질서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수업 활동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업은 관계와 질서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4가지 핵심 요인을 중심으로 교사의 수업 수준과 단계를 다음 5단계로 제시하고자 한다.
[1단계 : 수업 디자인의 무지 단계]
1단계는 수업디자인의 무지 단계이다. 새내기 교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단계로서 교사가 학생들을 대상으로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단계이다. 수업 디자인 측면에서 볼 때, 교육과정과 교수학습방법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은 단계이다. 교사가 교과 지식을 일단 이해하여 전달하는데 집중하는 단계이다. 학생 수준에 맞는 다양한 교수학습방법들을 이론적 지식 상태로는 알고 있으나 실천적 지식 상태로 충분히 구현하지는 못하는 상태이다. 전반적으로 학생들의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수업에 몰입하는 학생들은 소수이거나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잘 통제하지 못하다. 또한 교사와 학생들과의 관계와 질서 세우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아 전반적으로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 상태이다. 교사가 학생과의 친밀성이 있다 하더라도 수업 시간에 사회적 상호작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이다. 교사와 학생과의 신뢰 관계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아 교사가 생활 지도를 해도 학생들의 문제 행동이 잘 통제되지 않는다. 지식적인 측면에서는 이론적인 지식이 부족하거나 있다하더라도 실천적인 경험이 부족하여 어떻게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지식을 많이 안다고 해서 잘 가르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리고 교사가 자기 수업에 대하여 성찰을 하려고 해도 어디에서 문제가 있는지 잘 알지 못한다. 즉, 교사가 수업에 대하여 잘 몰라서 학생의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2단계 : 미숙한 수업 디자인 단계]
2단계는 미숙한 수업 디자인 단계이다. 수업 디자인 측면에서 볼 때 교육과정 재구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고 교수학습방법에 대한 관심도 적다. 기본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수업 시간에 문제 상황이 발생해도 그 근본 원인을 찾아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상황 그 현상만을 바라보고 성급한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한다. 예컨대, 학생이 수업 시간에 떠들면 그 원인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고 떠드는 행동에만 초점을 맞추어 단순하게 야단을 친다. 교사가 여러 번 주의를 주어도 학생들의 행동이 변화가 없으면 그대로 포기하거나 방치한다.
2단계는 교직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교사들에게 찾아 볼 수 있는데, 1단계처럼 전반적으로 학생들의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 상태이다. 즉,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배움에 잘 몰입하지 못하고 딴 짓하거나 극소수의 상위권 학생들만 수업에 수동적으로 참여한다. 학생 입장에서는 수업을 통해 재미나 흥미를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다. 그런데 1단계는 교사가 수업디자인을 잘할 줄 몰라서 어려움을 겪는 단계라면 2단계는 교사가 어느 정도 수업 디자인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업에서 어려움을 겪는 단계라는 것이다. 즉, 1단계는 교사가 수업에 대하여 잘 몰라서 힘든 경우이고, 2단계는 수업에 대하여 어느 정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러한 이유로 한계를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미숙한 수업디자인 단계의 교사들은 대개 학생들과의 관계와 질서 세우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복잡한 것들이 있다. 즉, 학생과의 관계 갈등으로 인한 교사 내면의 상처, 교과 지식의 부족, 잦은 실패를 통한 낮은 자존감과 무기력, 과도한 업무로 인한 번 아웃 현상 등으로 인하여 교사 내면 속에 두려움이 자리잡고 있거나 자존감이 무너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학생들과의 어느 정도 거리두기를 하거나 무관심한 상태로 놓여있는 경우가 많다.
미숙한 교사와 성숙한 교사의 차이점은 문제를 인식하는 관점과 자기 성찰 능력에 달려있다. 미숙한 사람은 자기 중심성이 강하여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그리고 문제 발생시 문제의 원인을 자기에서 찾지 않고 외부나 환경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그에 비해 성숙한 사람은 자기를 넘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문제가 있을 때 자기에서부터 그 원인을 찾는다. 미숙한 사람은 자기에게는 관대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하다면 반대로 성숙한 사람은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다른 사람에 대하여는 관대한 태도를 지닌다. 그래서 2단계의 교사들은 객관적으로 자신의 수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수업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 이유를 학생들이나 환경이나 제도 탓으로만 생각하고 자기 수업에 대한 진지한 성찰로 이어지지 않는다. 일종의 방어 기제를 통해 자기를 보호하려고 하기 때문에 수업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수업 성찰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대개 수업보다는 다른 업무에 관심을 더 많이 가진다.
[3단계 : 교육과정(내지 교수학습방법) 중심의 수업디자인 단계]
3단계는 교육과정 중심의 단계이다. ‘무엇’ 즉, 교과 지식이나 교육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교사가 학생들에게 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단계이다. 교사가 교육과정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지식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 있는 상태이다. 또한 교실에서 관계와 질서 세우기도 어느 정도 이루어진다. 수업 디자인 측면에서 볼 때 교사가 교육과정을 충실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일정 부분 그것이 잘 이루어진다. 중등 학교의 교사의 경우, 주로 ‘내가 지식을 효과적으로 학생들에게 어떻게 전달할까?’에 관심을 가진다. 하지만 ‘어떻게’ 즉, 교수학습방법은 교육과정 연구에 비해 준비 시간이 얼마 되지 않고 관심도 상대적으로 낮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활용하는 교수학습방법들은 상대적으로 단순하게 진행되거나 익숙한 방식 안에서 이루어진다. 교사는 주로 지식의 전달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학생들의 배움 상태를 살펴보면 중상위권 학생들을 중심으로 배움이 어느 정도 잘 이루어진다. 중상위권 학생들에게는 수업의 일부분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지만 지식에 대한 몰입을 충분히 경험하는 흥미 단계로 잘 연결되지는 않는다. 일부 중하위권 학생들은 수업 시간에서 배움에 잘 몰입하지 못한다. 이들은 교과서 진도대로 잘 따라가지 못하지만 1, 2단계처럼 문제 행동을 통해 수업을 적극적으로 방해하지는 않는다. 대개 소극적인 반응이나 침묵으로 반응한다. 교사가 지식을 전달하면 학생들은 그 지식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교사는 학생들에게 기존 지식에 대한 이해와 수용, 암기와 숙달을 강조한다. 즉, 교사의 적극적인 가르침과 학생의 수동적인 배움이 그 특징이다.
교사는 주로 학생들을 채찍과 당근이라는 행동주의적 방법들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관계와 질서 세우기를 추구한다. 수업 시간에 긍정적인 행동을 한 학생들에게는 칭찬과 보상 등을 부여하고 부정적인 행동을 한 학생들에게는 처벌과 개별적인 상담 활동 등을 통해 적절하게 문제 행동을 통제한다. 이러한 접근들이 교실에서 그 효과를 발휘한다.
3단계에서는 교사가 교육과정과 지식을 객관론적인 인식론 입장에서 이해한다. 그래서 교과 중심 교육과정, 학문 중심 교육과정에 가깝게 이해한다. 교사는 인류 역사를 통해 쌓아온 지식들의 핵심을 찾아 재구조화하고 그것을 학생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중등 교사나 초등학교 고학년 교사들의 경우, 3단계는 교육과정 중심의 수업디자인 형태로 표현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교사의 경우에는 교수학습방법 중심의 수업디자인 형태로 드러나기도 한다. 초등학교에서는 교육과정 중심으로 수업디자인을 하면 학생들의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교수학습활동을 활용하면 학생들의 수업에 대한 집중도를 올릴 수 있다. 그래서 학생들이 좋아하는 놀이나 다양한 활동 등에만 초점을 맞추어 수업이 진행된다. 하지만 활동과 배움은 늘 일치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수업에서는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통해 재미를 충분히 느낄 수 있지만 지식의 몰입으로 이끄는 흥미 유발로 잘 연결되지는 않는다. 재미는 있으나 배움은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4단계 : 성숙한 수업디자인 단계]
4단계는 성숙한 수업 디자인 단계이다. 4단계에서는 교사가 자율적으로 교육과정을 재구성할 수 있고, 학생들의 흥미 유발을 위해 다양한 교수학습방법을 실천한다. 즉, 기존 교육과정에 머무르지 않고 학생들의 학습 수준과 의지, 상황 등에 따라 교육과정을 유연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교과서만 가지고 접근하지 않고 학생의 학습 수준이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학습지나 워크북을 만들어 수업을 진행한다. 다양한 학습 도구나 매체들을 적절하게 활용한다. 교사 중심의 직접적 교수 전략을 넘어 협동학습, 프로젝트 수업, 하브루타 수업 등 참여적 교수전략을 적극적으로 수업에 활용한다. 해당 학습 주제와 내용에 맞는 적절한 교수학습활동을 찾아 수업에 적용한다. 다양하고 새로운 수업 방식을 잘 적용하고 수업 혁신 운동에 대하여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 수업 준비에 많은 시간과 애정을 쏟는다. 교육과정과 교수학습방법을 함께 고민하면서 조화를 추구한다. 이 단계에서는 교사가 가지고 있는 장점을 최대로 극대화된 상태이다. 이를 통해 교사의 자존감과 자신감이 극대화된 상태에 도달한다. 이를 통해 수업에서 교사의 자연스러운 유머와 여유 형태로 표현된다.
학생의 배움 상태를 살펴보면 중상위권 학생들만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위권 학생들까지도 의미있는 배움이 일어난다. 즉, 성적과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이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배움의 수준도 수동적인 배움이 아니라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배움 형태로 일어난다. 질문, 협동학습, 토의 토론 활동, 프로젝트 활동 등 다양한 학습 활동이 전개되고 학생들도 즐겁게 학습 활동에 참여한다. 4단계에서의 배움은 재미 수준을 넘어 흥미 수준에 도달된 상태이다. 즉, 즐거움이란 감정을 넘어 지식의 몰입과 지속적인 관심으로 연결되는 학습 의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교사의 가르침과 학생의 배움이 동시에 잘 이루어지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교사는 지식의 전달자가 아니라 학습의 촉진자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질문을 통해 흥미를 유발시키고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든다. 교사는 학생들을 외적 동기 유발 방식을 넘어 내적 동기 유발 방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교사는 구체적으로 칭찬하기를 통해 학생들의 긍정적인 행동을 강화하고 격려하기를 통해 좌절하고 힘들어 하는 학생들을 잘 세워준다.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는 사회적 상호작용 뿐 아니라 친밀감과 신뢰감이 깊게 형성되어 있어서 큰 소리로 야단치지 않아도 질서 세우기가 가능해진다. 관계성을 바탕으로 질서 세우기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학생들도 교사에게 좋아하고 교사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잘 따른다. 물론 행동주의적 접근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주로 내적인 동기 유발을 하는데 초점을 두고 학생들을 지도한다.
교사가 열심히 수업 준비한 만큼의 수업에 대한 자신감이 생긴다. 교사의 내면이 안정되어 있고 학생과의 공감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학생들이 엉뚱한 질문을 해도 공격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내거나 질문을 통해 다음 학습 단계로 연결한다. 수업 시간에 일부 학생들이 문제 행동을 보여도 쉽게 내면이 흔들리지 않고 그 원인을 모색하고 차분하게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4단계 교사들은 공통적으로 다른 교사들에 비해 수업 열정이 넘치는데 큰 이유는 자기 수업에 대한 성찰이 잘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수업 성찰을 통해서 자기의 단점을 잘 알고 있고 이를 채우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의 노력을 기울인다. 수업 성찰을 위해서 수업 성찰 일지를 기록하거나 수업 시간에 활용한 수업 지도안, 학습지, 학생 결과물 등의 다양한 수업 활동을 정리한 포트폴리오를 자발적으로 잘 정리한다. 그런데 만약 수업 열정이 넘치지만 수업 성찰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자칫 자기 교만에 빠져서 오히려 퇴행의 길로 걸을 수도 있다.
수업 공개시 다른 교사들의 부정적인 피드백에 대하여도 비난이나 공격으로 생각하지 않고 긍정적으로 수용한다. 그 이유는 교사의 자존감이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속적인 자기 수업 성장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연수에 참여하거나 교사학습공동체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때로는 각종 연구 프로젝트 활동에 참여하여 연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그 결과물을 다른 동료 교사들에게 아낌없이 공유하기도 한다.
[5단계 : 창발적인 수업디자인 단계]
5단계는 창발(創發)적인 수업디자인 단계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창발성(創發性)이란 창의성과 자발성을 합친 것이다. 교육과정을 재구성하는 수준을 넘어 기존 교육과정을 초월한다. 학생들의 필요와 수준에 맞추어 수준 높은 교육과정을 생산할 수 있다. 즉, 해당 지식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숙의(熟議)적 교육과정 개발 모델에 따라 개인 지성 내지 집단 지성에 따라 교육과정을 새롭게 만들 수 있다. 또한 기존의 다양한 교수학습방법들을 적용하는 것을 넘어 학생들의 배움 상태와 수준, 상황, 리듬 등에 따라 새로운 수업 모형을 만들어 유연하고 창의적으로 반응한다. 기존 수업 모형들을 학습 목표와 학생들의 수준과 상태에 맞추어 결합하여 새롭게 만들거나 기존 방식을 넘어 새로운 방식의 수업 방법을 시도하기도 한다.
수업을 접근하는 데 있어서 과학이냐 예술이냐의 이원론적인 접근을 넘어 과학과 예술이 통합된 형태로 접근할 수 있다. 수업은 과학과 예술 이상의 실체이기에 초월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4단계는 기존 수업 모델로 설명이 가능하고 일종의 정형화된 형태로 분석할 수 있지만 5단계는 특정 모델로 정형화하여 설명하기 쉽지 않고, 의외로 수업 진행이 담백하고 자연스러우며 수업 이후에는 깊은 여운과 감동이 있다.
학생들의 배움 상태는 적극적인 배움을 넘어 깨침의 단계에 이른다. 배움은 가르침이 있어야 일어날 수 있는 행위이지만 깨침은 가르침이 없어도 스스로 지식을 깨달아가는 것이다. 즉, 하나를 알면 열을 알려고 스스로 노력하면서 하나씩 깨쳐나간다는 것이다. 기존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창출하고 구성할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학생들의 자기주도적 학습이 잘 이루어진다. 그래서 교실에 교사가 없어도 학생들은 배움에 몰입할 수 있다. 4단계는 교사가 없으면 수업이 잘 진행되기 힘들지만 5단계에서는 교사가 없어도 수업이 잘 진행될 수 있다. 그리고 학생들이 서로 모르는 것에 대하여 질문하고 토의하면서 해답을 찾아나간다. 수업 규칙과 상관없이 질서가 잘 지켜지고 서로 협력하면서 진리를 탐구해 나간다. 학생과 학생 사이에서도 외적 보상 등의 인위적인 장치가 없어도 ‘탈구조화된 또래 가르치기’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5단계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마음 속에 좋은 질문을 남긴다. 학생들 마음 속에 살아있는 질문은 학생들이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원천이 된다. 즉, 외적 동기 유발이 아니라 내적 동기 유발이 극대화된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교사는 수업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를 실천할 수 있다. 4단계에서는 교사가 인위적인 노력으로 성공에 도달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보니 일부 교사들은 자칫 완벽주의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열심히 가르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때로는 오히려 그러한 인위적인 노력과 뜨거운 열정이 학생들의 배움을 막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그래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오류에 빠지기도 한다.
5단계는 기존에 있는 좋은 수업 모델 수준을 초월한다. 수업 시간에 교사의 의도대로 학생들의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해서 교사가 초조감에 빠지지 않는다. 사전 수업 디자인한 것과 다르게 수업이 진행되어도 조급하지 않고 담담하게 이를 받아들인다. 학생의 배움 상태에 따라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는다. 학생의 배움이 잘 일어나면 교사가 보람을 느끼고 그것을 기뻐하지만 학생의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고 그 이유에 대하여 고민하여 적절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여 대응한다. 학생의 학습 방식과 배움의 리듬에 맞추어 자기 수업을 스스로 혁신해 나간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 많은 학습 내용이나 학습 활동을 무리하게 적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교사도 학생처럼 지식의 탐구자로서 열정적으로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이 질문하면 교사가 즉문즉답(則問卽答)하지 않고 오히려 질문으로서 학생이 스스로 해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고 교사도 함께 그 해답을 찾아간다. 교사는 수업 시간에 자기의 부족함과 실수가 드러나도 학생들에게 솔직하게 인정하고 학생들과 함께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한다. 교사도 진리의 탐구자로서 학생들과 함께 배움과 연구에 몰입한다.
4단계는 교사의 자기 수업의 장점이 극대화된 형태로 표현된다면 5단계는 교사가 가지고 있는 단점을 자연스럽게 극복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예컨대, 정해진 규칙과 매뉴얼대로 성실하게 수업을 진행하는 □형 교사가 5단계에 이르게 되면 정반대 유형인 창의형인 ☆형 교사의 수업 형태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4단계에서는 열심히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지만 5단계에서는 교사가 학생들의 배움이 멈출 때만 최소한의 범위에서 개입하고 학생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기다릴 줄 알고 수업 활동을 통해 교사도 큰 배움을 얻는다. 교사가 수업 자체를 즐길 줄 알기에 수업 준비가 다소 부족해도 수업에서 여유를 누릴 줄 안다. 때로는 교사가 관조(觀照)의 태도로 일정 부분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기 수업을 성찰할 수 있고 자기 수업 활동에 대한 메타 인지 활동이 잘 이루어진다. 수업을 하고 나서도 교사는 학생들로 인하여 에너지와 보람을 얻는다.
5단계에서는 지식 그 자체보다는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지혜에 초점을 두어 수업이 이루어진다. 즉, 역량 중심 교육과정이 교실에서 실제 구현된다. 그러므로 교사도 학생들에게 핵심 역량을 길러주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지금까지 설명한 교사의 수업 수준과 단계를 그림과 표로 정리하여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5단계 창발적인 수업디자인 단계에 이른 교사가 실제로 존재할까?
그렇다면 위에서 제시한 5단계 창발적인 수업 디자인 단계에 이른 교사가 실제로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필자는 수업 관련 연수 강의를 하거나 수업 코칭 활동을 할 때 5단계 창발적인 수업 디자인 단계에 대하여 이야기하지만 많은 교사들이 이 단계에 대하여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자기 주변에 5단계 수준에 도달한 교사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5단계를 도달하기 힘든 이상적인 수업 수준과 단계로만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평범한 교사도 꾸준한 노력을 기울이면 5단계에 도달할 수 있다. 5단계에 도달하면 수업의 보람과 기쁨을 온전하게 누릴 수 있다. 5단계에 대한 설명은 개념이나 이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실제 수업 사례에서 나온 것이다.
필자는 오랫동안 수업 혁신 운동에 참여하면서 감사하게도 주변에서 5단계 수준에 도달한 교사들을 많이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중에서 한 선생님을 대표적으로 소개한다면 소명중고등학교의 장슬기 선생님을 들 수 있다. 현재 장슬기 선생님은 과학과 협동학습연구회 및 기독과학교사모임 대표로도 활동하고 있다.
우연히 장슬기 선생님의 중2 과학과 수업을 참관한 적이 있었다. 작년 5월 어느날 수업 시간에 교사가 없었는데도 학생들이 열심히 수업을 하고 있었다. 사실 교사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하여 선생님이 결근한 상황이었다. 미리 교사가 그 상황에 대하여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는데, 다른 선생님의 보강 수업 대신 학생들이 스스로 수업을 하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전날 점심시간에 선생님이 해당 발표 모둠 학생들에게 피드백 활동을 실시했다. 필자는 선생님이 없는 상황에서 수업이 과연 진행될 수 있을까 의구심이 있었는데, 막상 실제 수업을 보니 놀라운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과학과 시간에 교사 없이도 학생들이 주도하여 프로젝트 수업 활동이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학생들이 모둠별로 프로젝트를 준비해서 발표하면 나머지 학생들이 발표 내용에 대하여 질문하고 그 질문에 대하여 학생들이 답변하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다른 학생들의 질문 수준이 높고 날카로웠지만 발표 학생들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잘 이야기를 풀어갔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질문을 했는데, 그 질문 난이도가 높아 발표 학생들이 정답을 제대로 답변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때 모든 학생들이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교과서와 다른 자료들을 활용하여 적극적으로 찾았다. 그때 한 여학생이 아직 진도를 나가지 않은 교과서 부분을 찾아 그 정답을 이야기하였다. 학생들 스스로 지식을 탐구하고 깨치는 장면은 감동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러한 수업이 원래부터 교사가 정교하게 기획한 수업은 결코 아니었다. 그 수업 속에 숨어있는 사연이 있었다. 장슬기 선생님이 학기초 수업을 하는데 일부 학생들이 과학 수업이 재미없다고 불평을 하였다. 선생님은 잠시 당황했지만 그 학생들을 야단치지 않고 그 이유에 대하여 차분하게 물었다. 학생들이 과학과 수업이 재미없는 여러 가지 이유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교사는 이에 대하여 신중하게 고민을 하였다. 그 다음날 수업 시간에 교사는 학생들에게 “너희들이 꿈꾸는 과학 수업이 무엇일까?”라고 질문하고 학생들 스스로 토의하도록 하였다. 토의 내용과 결과를 학생 스스로 정리하도록 하였고, 이를 토대로 학생들과 함께 새롭게 과학과 수업을 다시 재구성하였다. 그래서 프로젝트 수업 형태로 전환하여 과학과 수업을 진행한 것이었다. 이후 프로젝트 수업 활동을 진행했지만 그러다보니 또 다른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일단 교과서 진도를 나가는 것에 쉽지 않았고 핵심 개념을 놓치고 오개념이 형성될 수 있어서 이를 보완하게 위해 중간에 수업 방식을 전환하여 수업을 진행하였다. 즉, 수업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해서 그 안에 머무르지 않고 학생의 배움 상태와 학습 리듬에 맞추어 수업을 창발적으로 디자인하면서 수업을 진행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장슬기 선생님의 수업 실제 사례는 작년 스승의 날 KBS 특집 방송으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하였으니 세부 내용은 동영상을 참고해도 좋다. 또한 구체적인 과학과 수업 실천 사례들을 월간 좋은교사 저널에도 ‘슬기로운 융합 수업디자인’ 코너를 통해 시리즈 연재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참고하라.
수업은 성장(成長)만 있는 것이 아니라 퇴행(退行)도 있다?!
교사가 교직 경력이 쌓인다고 해서 저절로 수업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교직 경력이 쌓이면 연륜(年輪)이 생긴다. 연륜이 있으면 안정감있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연륜이 곧 수업 성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고경력 교사는 경험이 주는 안정감과 질서 세우기가 상대적으로 잘 이루어질 수 있지만 반대로 학생과의 관계 세우기는 상대적으로 쉽지 않을 수 있고, 새로운 변화에 잘 적응하기 힘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일부 고경력 교사들은 수업 혁신에 대하여 비판적이거나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일부 고경력 교사가 새내기 교사보다 수업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교직 경력보다 수업 성찰과 수업 성장에 대한 의지가 더 중요하다.
교사가 자기 수업 성장을 위한 의도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단계 수준에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상의 퇴행(退行)을 경험하게 된다. 왜냐하면 수업의 대상은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학생(사람)이기 때문이다. 학생(사람)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고정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학생은 발달단계상 성장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접근해야 한다. 학생(사람)은 인격적 존재이므로 학생들을 인격으로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교사가 학생들을 사랑하고 존중해야 학생도 자존감을 세울 수 있고 인격적으로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매년마다 학생 성향이 다르고 개별 학생들의 독특성도 각기 다르다. 다양한 학생들을 지도하는 데 있어서 그동안 쌓은 교직 경험은 분명 학생들을 지도하는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의 교직 경험 안에서 머물러 있고 학생들을 선입견을 가지고 판단해서는 안된다.
기술에 대한 전문성은 열정+시간을 통해 반복과 연습이 쌓여서 장기간 시간이 흐른 뒤에 자연스럽게 장인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수업에 대한 전문성은 사람(학생)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시간과 열정만으로는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학생)은 생명체이기 때문에 늘 다르다. 작년 수업에서 성공적이었던 수업 방식이 올해는 그렇지 않을 수 있고 내년에는 오히려 문제가 될 수도 있다. 학생들은 변화무쌍한 존재이고 다양한 인격체이므로 학생들의 배움 상태에 맞추어 교사는 늘 혁신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치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가만히 있으면 물살에 떠내려가는 것처럼 교사도 자기 수업에 대하여 고민하고 몸부림치지 않으면 결과적으로 내 수업은 뒤처질 수밖에 없고 결국은 퇴행의 길을 걸을 수 있다.
수업 코치로 활동하면서 어떤 선생님을 만나 수업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50대 중반 고경력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다.
“지금 수업 방식이 10년 전 학생들에게는 성공적이었는데, 현재에는 교사와 수업 방식이 그대로임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의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것은 결국 학생들 문제가 아닙니까?”
그때 내가 대답하기 전에 옆 자리에 앉으신 다른 선생님이 필자를 대신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선생님, 그렇다면 어떤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데 있어서 예전 약 그대로 사용했는데도 불구하고 치료가 되지 않았다고 그 책임을 환자에게 돌릴 수 있을까요? 오히려 의사가 환자 상태에 맞는 새로운 치료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의 성공적인 수업 방식대로 수업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학생의 배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학생 탓으로 돌리기 전에 학생의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를 찾아 그에 맞는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 현명한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교사 스타일에 맞추어 학생들을 통제할 것인가? 학생 스타일에 맞추어 교사가 변화할 것인가? 성장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아니면 퇴행의 길을 선택할 것인가? 무엇을 선택하든 교사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는 있겠지만 교사는 하나님 앞에서, 또한 학생들 앞에서 그 선택에 따른 자기 수업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참고 도서]
김현섭(2015), “질문이 살아있는 수업”, 한국협동학습센터
김현섭(2013), “수업을 바꾸다”, 한국협동학습센터
파커 파머(2003), “가르칠 수 있는 용기”, 한문화
유동걸(2015), “질문이 있는 교실”, 한결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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