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여 동안의 수업 운동 흐름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지난 수업운동의 경험을 통해 현재 수업운동과 수업문화를 파악하고, 미래형 수업운동의 방향을 모색하려고 한 것이다. 이번 수업운동사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먼저 전통적 수업 방식을 단순한 수업혁신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시대와 사회적 요구에 따라 새롭게 부각되는 수업담론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수업방식이 아직까지 유지되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전통적 수업방식의 대표적인 사례는 강의식 설명법, 문답법, 문제풀이식 수업 등이 있다. 예컨대, 강의식 설명법이 현재 교실에서도 많이 활용되는 이유는 장점이 많기 때문이다. 강의식 설명법의 장점은 많은 지식을 전달할 수 있고, 오개념이 적고, 경제적인 접근이기 때문이다. 강의식 설명법의 장점을 대체할만한 수업담론은 아직까지 개발되지 못했다. 반면 강의식 설명법의 단점은 교사 의존도가 높고, 학생 입장에서는 수동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고, 집중시간이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어떤 수업담론이든 간에 장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선악의 구도로 수업담론을 바라보아서는 안된다. 전통적인 수업 방식을 무조건 필요악으로 규정해서는 안된다.
둘째, 사회적 요구와 시대적 흐름에 맞게 맥락적으로 수업운동을 이해하고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 전통적 학습방식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등장한 것이 열린교육 운동이다. 경쟁학습을 비판하고 등장한 것이 협동학습이다. 입시 경쟁으로 인해 발생한 교육과정-수업-평가의 분리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 운동이다. 코로나19 이후 학력 문제와 사회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것이 학습코칭이나 사회정서학습이다. 수업운동은 사회 및 시대적 흐름과 교육학적인 맥락을 동시에 연계하여 풀어가야 한다. 현재 교실에서 교사들이 경험하는 수업 문제점이 무엇이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이를 어떻게 극복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
셋째, 아래부터의 운동(상향식 운동)과 위로부터의 운동(하향식 운동)의 관계를 잘 설정해야 한다. 운동 방식은 방향성에 따라 두 가지 방식이 있다. 자발적으로 교사 중심으로 수업 혁신을 추구하는 상향식 운동이고, 정부나 교육청 중심으로 수업 혁신을 추구하는 하향식 운동이다. 열린교육운동은 상향식 운동으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하향식 운동과 결합되면서 확대 발전했다. 하지만 운동의 방식이 상향식 운동이 약화되고, 하향식 운동으로 움직이면서 교사의 자발성이 약화되고 인센티브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주도권을 가지게 되면서 그 한계를 노출했다. 혁신학교 운동도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 차원에서 상향식 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교육청 차원의 하향식 운동으로 성격이 점차 변화되면서 운동 에너지를 상실해 나갔다. 하지만 이는 상향식 운동만이 바람직하고, 하향식 운동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현장 교사 중심으로 운동의 주도권을 가지고 상향식 운동으로 전개하되, 교육청 차원에서 지원하는 하향식 운동 형태로 관계 설정하는 것이 더 좋다는 것이다. 다만 관 주도형 수업운동은 자칫 교사들을 혁신의 대상으로 파악하기 쉽고, 최고지도자(대통령이나 교육감)의 특성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정책과 운동의 방향이 바뀌기 쉽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한다.
넷째, 수업운동이 자본(교육기업)과 결합되면 자칫 운동의 진정성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순수한 마음과 수업 열정으로 시작한 수업운동가들 중 일부는 자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 결국 무너진 경우가 실제로 있었다. 2000년대 교육기업이 본격적으로 등장하면서 교육계에 많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2002년 아이스크림미디어가 설립되면서 기존 티나라를 인수하여 디지털 초등 수업자료 플랫폼이 만들어졌다. 상당수 초등 교사들이 티니라나 아이스크림에서 제공하는 PPT나 영상 자료 등 다양한 교수학습자료들을 사용하면서 일명 클릭 수업 문제가 발생했다. 그래서 수업이 천편일률적으로 진행되거나 미디어의 비중이 커지고 상대적으로 교사의 역할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했다. 현재 티쳐빌에서 운영하는 쌤동네 플랫폼에서 교사들이 다양한 수업콘텐츠를 올리고 사고 팔 수 있는 오픈마켓을 운영하고 있다. 여기에 올리는 연수나 콘텐츠를 통해서 교사들이 수익을 거둘 수 있게 되자 자발적으로 수업 자료를 무료로 공유하는 문화가 줄어들게 되는 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수업자료를 개발하고 보급하고 연수를 진행하려면 어느 정도의 자본이 필요하기에 단순히 교육기업 활동이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없다. 다만 수업운동과 교육기업 활동과의 관계가 적절한 긴장감을 가지고 유지되어야 한다. 교사들이 회비를 모아 자체 운영하고 있는 인디스쿨처럼 교사 중심의 자발성과 참여가 있는 수업운동들이 지속되어야 한다.
다섯째, 외국 수업담론의 기계적 도입에서 벗어나 한국 교육 현실에 맞는 한국형 수업혁신 담론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는 미국의 교육학 특정 이론이 부각되면 유학생을 통해 10년 뒤 한국에 도입되고 소개되는 경향이 있었다. 열린교육, 협동학습, 프로젝트 기반 수업, 배움의 공동체, 사회정서학습, 개념기반 탐구학습 등은 외국에서 도입된 수업담론들이다. 아무래도 선진국의 수업담론이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기에 도입하여 한국적 교육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외국에서 개발된 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예컨대, 개념기반 탐구학습의 경우, 외국에서 개발한 복잡한 템플릿을 그대로 사용하려다 보니 현장 교사들이 부담스럽게 느끼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교육과정-수업-평가의 일체화나 과정중심 평가, 인공지능 활용 수업처럼 한국적 교육 현실에 기반한 한국의 수업담론들이 많이 개발되면 좋겠다. 이를 위해서는 학계와 수업운동 단체들과의 협업체계가 잘 구축되면 좋겠다. 학계에서도 기존의 교과내용학이나 교육과정학, 교수학습방법, 교육공학의 범주를 넘어 이를 융합한 '수업학(授業學)'에 대한 연구와 소통이 잘 이루어지면 좋겠다.
여섯째, 일시적인 유행과 트랜드를 넘어 복잡성과 다양성이 존재하는 교육 생태계 구축이 이루어져 한다. 수업운동사를 살펴보면 어떤 시기에 특정 수업담론이 유행하면 다른 수업담론은 경시되거나 폐기되는 경우가 많았다. 한 때 열린교육 운동, 하브루타 수업, 거꾸로 수업 등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졌지만 지금은 사라지거나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 다양한 수업담론들이 공존하고 있고, 특정 수업담론이 부각된다 하더라도 다른 수업담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교육계 흐름은 특정 수업담론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업운동이 건강하게 이루지기 위해서는 다양한 수업담론을 인정하고 상생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각 수업담론마다 각각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다. 현실의 수업 문제를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수업의 방향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집단 숙의(熟議) 과정을 통해 한국형 수업담론들이 많이 개발되고 실천되면 좋겠다. 동일한 주제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수업운동 조직들끼리는 구조적으로 긴장과 갈등적 관계를 형성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도 교육혁신이라는 큰 틀 안에서 상생과 존중의 관점에서 네트워크 연대를 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일곱째, 현장 교사 중심의 수업운동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교사가 반성적 실천가로서 역할을 하고, 수업역량을 기르기 위한 노력이 끊임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사학습공동체가 활성화될 수 있어야 한다. 교사의 수업 역량은 성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퇴행도 있다. 끊임없는 수업성찰을 통해 자기 수업을 되돌아보고, 스스로 수업역량을 기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학생주도성을 논하기 전에 먼저 교사주도성이 살아있을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수업은 교사 주도성과 학생 주도성이 조화롭게 구현되는 수업이다.
여덟째, 수업운동이 지속되려면 차기 리더십이 잘 세워지는 재생산 구조가 필요하다. 운동의 3요소는 방향, 힘, 재생산이다. 대개 수업운동 조직들은 처음에는 교실에 부딪히는 수업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순수한 아마추어 리더를 중심으로 시작한다. 리더의 열정과 역량에 따라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조직이 만들어져 간다. 조직 경영이 잘 이루어지면 소모임이 전국단위의 대규모 모임으로 성장한다. 내부적 갈등이 생기고 이를 잘 해결하면 조직을 발전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기 리더십 문제가 발생한다. 새로운 신입회원들이 들어와 조직의 미션을 이해하고 적극적으로 활동할 수 있어야 조직이 유지되고 발전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초창기 리더들만 남아있고, 역량이 있는 차기 리더가 세워지지 않으면 리더십의 세대교체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 이 경우, 시간과 함께 자연스럽게 조직의 영향력도 줄어든다. 상당수 많은 조직들이 세대 교체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수업운동 조직이 규모가 크고 잘 운영되는 경우, 대개 자체 차기 리더십 양성과정이 존재한다. 예컨대, 자체 학회를 가지고 있거나 기본-심화-전문과정 연수과정 등을 운영하고 있다.
아홉째, 수업운동의 생성, 발전, 유지, 위기, 쇠퇴 단계에 따른 적절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수업운동도 유기체처럼 생노병사가 존재한다. 수업운동의 흐름도 아놀드 토인비가 제시한 도전과 응전 패러다임 속에서 바라볼 수 있다. 토인비가 문명의 생성, 발전, 쇠퇴가 있다고 말한 것처럼 수업운동 조직에 있어서도 생성, 발전, 유지, 위기, 쇠퇴의 과정이 존재한다. 개척 단계에서는 개척가 리더십이 필요하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조직의 이익을 우선하고, 순수한 열정과 노력으로 역량을 세워가고,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리더십이다. 성장 단계에서는 경영자 리더십이 필요하다. 하나의 소모임으로 출발하여 지역별 소모임, 주제별 소모임, 직능별 소모임 등으로 소모임을 만들고, 이를 네트워크 형태로 잘 묶어서 소모임의 성과를 전체 조직 차원에서 잘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리더십이다. 유지 단계에서는 행정가 리더십이 필요하다. 조직을 잘 관리하고, 갈등을 잘 조절하고, 조직 구성원들의 인화에 초점을 두어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위기 단계에서는 혁신가 리더십이 필요하다. 조직의 미션을 재점검하고, 새로운 차기 리더가 등장하여 시대 및 사회 변화에 맞는 문제를 인식하고 이를 새로운 관점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쇠퇴 단계에서는 상담가 리더십이 필요하다. 조직 미션을 달성했거나 더 이상 미션을 달성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철학과 역량이 있는 차기 리더십(혁신가)이 등장하지 못하면 조직을 잘 정리할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 쇠퇴 단계에 잘 마무리하지 못하면 좀비같은 조직으로 연명하거나 내부 노선 갈등으로 인하여 조직이 분화되거나 해체된다. 구성원들이 갈등으로 인하여 나중에 신뢰 관계까지 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쇠퇴단계에서 ‘아름다운 해체’를 잘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은 사라져도 함께 활동했던 구성원들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조직 규모가 커지면 행정 조직처럼 운영될 수 있어서 시대 및 사회적 요구나 내부 구성원들의 요구에 대하여 유연하게 반응하지 못할 수 있다. 최근에는 시대 및 사회문화의 변화에 따라 세포처럼 네트워크 형태로 모임을 운영하는 것이 좋다. 한 세포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세포 분열하듯이, 소모임이 커지면 자연스럽게 새로운 모임으로 분화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리더가 나올 수 있도록 하고, 정기적으로 소모임들이 만나 그동안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모임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하고, 최고 리더가 각 소모임 활동에 대하여 세밀하게 간섭하지 않는다. 특정 모임이 힘들어지면 다른 모임에서 도와줄 수 있지만 특정 모임이 해체되더라도 다른 모임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김현섭(2025), “깊이있는 수업”, 수업디자인연구소
김현섭(2016), "수업성장", 수업디자인연구소
김현섭(2018), "수업공동체", 수업디자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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