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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혁신

학교에게 질문 던지기

by 김현섭 2012. 10. 25.

“아침마다 학생부장과 선도부원들이 일찍 나와서 교문 지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애국조회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교사들이 수업보다는 행정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교직원회의가 재미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생이 학교의 주체라고 하면서 학생들은 ‘중앙현관 통행 금지’라고 써붙인 이유는 무엇인가?”

 

 

교직원회의가 재미없는 이유

교생 시절 처음으로 교무실에서 열리는 학교 교직원회의에 참여하게 되었을 때, 설레임과 가벼운 떨림이 있었다. 선생님들끼리 과연 어떤 내용으로 회의를 할까 하는 기대감과 호기심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처음 본 교직원회의는 마치 무표정한 부장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정신없이 준비된 전달 사항을 쏟아내고 있었고, 교사들은 무표정한 표정으로 듣고 있는 모습으로 채워졌다. 무뚝둑한 교직원회의 분위기와 모습도 의아했지만 회의 내용은 그야말로 코미디였다. 이번 달 폐휴지 수합량이 적으니 학생들을 독려해서 폐휴지를 적극적으로 낼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니, 지각생들이 많아지니 학급별로 지각생 지도에 만전을 기해달라니 등의 이야기였는데, 당시 교생인 내가 생각하기에도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선생님들끼리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교사가 되고 나서 세월이 흘러 언제부터인가 나도 교직원회의에 참여할 때 무표정한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교무실에서 회의할 때는 부장 교사들만 열심히 전달 사항을 이야기할 뿐 대다수의 교사들이 딴 짓을 하거나 각자 컴퓨터를 이용하여 일을 하고 있어도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교직원회의가 조금이라도 길어지면 교사들은 힘들어했고, 아무리 논의할 안건이 남아 있어도 수업 시간이 시작하게 되거나 퇴근 시간으로 연결되면 용두사미처럼 마무리되는 것을 보았다. 교직원 회의 장소를 교무실에서 벗어나 회의실로 옮겼어도 근본적인 변화는 없었고 회의실로 이동하는 교사들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 교사들은 학교 운영과 관련하여 아무런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이 누군가가 결정한 내용을 일방적으로 회의를 통해 전달받고 그것을 실행해야 할 책임만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누군가가 결정한 사항을 일방적으로 전달받는 것은 그리 좋은 경험은 아니기에 교직원회의 시간이 아무리 짧아도 그리 기분이 좋아지는 시간은 아니었던 것이다.

지금껏 교직 생활 중 최악의 교직원회의의 경험은 교사들이 미리 정해진 지정석에 앉아 전달사항을 일방적으로 통보만 받다가 어떤 교사가 업무상 실수를 했을 때 교장 선생님에게 공개적으로 전체 교직원 앞에서 해당 교사를 혼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무도 이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묵묵히 해당 교사가 혼나는 것을 전체 교직원들이 쳐다만 보고 있었다.

알아차림에서 질문이 나온다.

학교에서 지금까지 해오던 일들에 대하여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금기시 여기던 문화가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다. 학교관리자가 정답만 제시할 뿐 그것이 왜 정답인지 학교구성원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학교관리자가 제시한 정답말고 다른 정답이 있을 수 있는지 물어볼 기회도 별로 주어지지 않는다. 어떤 문제에 대한 다양한 정답이 존재할 때 학교관리자가 제시한 정답만이 유일한 정답인 것처럼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다. 학교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원래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독후감 발표 대회를 실시한다면 그 이유는 학생들에게 책 읽기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그런데 학생들에게 책 읽기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는 독후감 발표 대회말고도 다른 좋은 방법들이 존재할 수 있다. 학교 차원에서 서점을 방문하여 학생들이 읽고 싶은 책을 직접 고를 수 있게 하고 그 책을 읽은 다음 학급 안에서 독후감을 말할 수 있도록 할 수 있을 것이다. 교실 공간을 작은 도서관으로 만들어 자연스럽게 학생들이 책을 읽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예전에 독후감 발표 대회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예전 방식 그대로 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주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학교를 바꾸려면 학교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는 것보다 학교 스스로가 정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학교 스스로 정답을 찾으려면 학교가 학교에게 질문을 잘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학교에 대한 질문을 잘 던지려면 현재 학교의 모습을 낯설게 바라보아야 한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강조하는 ‘알아차림’과 ‘지금 여기에’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알아차림이란 ‘개체가 자신의 삶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중요한 현상들을 방어하거나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지각하고 체험하는 행위’이다. 즉 알아차림은 현재 순간에 중요한 자신의 욕구나 감각, 감정, 생각, 행동, 환경 그리고 자신이 처한 상황 등을 지각하는 것을 뜻한다. ‘지금 여기에’는 과거에 얽매여 현상을 이해하지 않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한 기대에서 해방시키고 현재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학교에서 알아차림이란 학교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다. 학교가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여기에 일어나는 현상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고 해결 방안을 모색해나갈 수 있어야 한다.

학생부장이 아침마다 학생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한다면?

경기 장곡중학교 생활지도부장이었던 백원석 선생님의 이야기이다. 백 선생님이 아침마다 일찍 나와 선두부원들과 함께 교문지도를 통해 용의복장 검사를 했다. 그런데 어느날 아이들이 교문을 지나치며 아이들끼리 ‘저○○, 오늘도 나왔네’라고 한 말을 우연히 들었다. 한마디로 선생님에게는 충격이었다. 아침마다 사명감을 가지고 일찍 나와 용의복장 검사를 했을 뿐인데 학생들에게 이러한 말까지 들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졌다. 그런데 그 학생들을 보복(?)하는 방식으로 해결하지 않고 교문 지도를 왜 해야 하는가로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교문 지도의 접근 방식을 용의복장 검사에서 학생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방식으로 바뀐다면 학생들이 학교 가는 것이 좀 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고민 끝에 교문 지도 방식 자체에 대한 전환에 대하여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백 선생님은 중요한 결단을 내렸다. ‘학생부장인 내가 먼저 학생들에게 정중하게 인사하고 반갑게 맞아주면 어떨까?’ 실제로 용기를 내어 백 선생님은 행동으로 옮겼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웃으면서 정중하게 인사를 하기 시작하면서 학교 안에서 작은 파문이 일어났다. 학생들도 처음에는 멈칫 거리거나 어색하게 반응했는데, 언제부터인가 학생들이 웃으면서 선생님에게 먼저 인사하는 일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교문 지도 방식에 대한 반론도 가능할 것이다. ‘학생들이 학생답게 용의복장을 할 수 있도록 학교가 지도할 수 있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학생답다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 고민해야 하고 기존 용의복장 지도 규정이 어떻게 만들어졌고 학생과의 합의를 통해 이루어졌는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학교 차원에서의 용의복장 지도가 필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면 지도 방식에 대하여 고민해야 한다. 용의복장 검사를 아침 교문이 아니라 점심 시간 식당에서 지도한다면 어떨까?

장곡중 사례가 주변에 알려지면서 많은 학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성남 모 중학교에서는 한 달에 한번 허그데이를 실시한다. 학생들에게 추천을 받아 교사를 선정하여 해당 교사가 교문에서 아이들에게 허그(가볍게 안아주기)를 하는 것이다.

장곡중학교에서는 스승의 날에 사제 교환 체험 활동을 실시한다. 희망 교사가 학생 입장에서 교복을 입고 교실에서 공부하고 학생 중 교사가 되고 싶은 학생이 그 교사 대신 수업을 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행사를 모든 학교에서 실시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이러한 새롭게 발칙한 시도가 학교 안에서 허용될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좋겠다는 것이다. 학교가 교사와 학생에게 참으로 행복한 공간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