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수업에서 학생들의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 이유

배움

배움이란 순수 우리말로서 ‘배다’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 ‘배다’는 명사‘배’에서 나온 말로서 배에 무엇인가를 품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어미가 새끼를 배다’, ‘옷에 물이 배다’, ‘습관이 배다’등처럼 외부에서 무엇인가가 자기에게 들어오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배움이란 외부의 가르침과 자극을 통해서 자기 안에 채워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즉, 배움이란 가르침을 통해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배움은 좋은 가르침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배움과 가르침이 충돌될 때에는 배움이 가르침보다 우선이다. 왜냐하면 가르침이 있으나 배움이 없었다면 실패한 수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지만, 반대로 가르침은 별로 없었어도 배움이 충만했다면 성공적인 수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움은 배운 것을 익히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 학생에게 의미있는 배움이 일어났어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망각된다. 배운 것을 망각하지 않고, 단기 기억에서 장기 기억으로 전환하려면 자기 것으로 숙달할 수 있는 익힘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옛날 사람들은 ‘학(學)’만 이야기하지 않고, ‘학습(學習)’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익힘을 넘어서 깨침의 단계까지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깨침을 강조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깨침이란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인식의 전환을 의미한다. 내면 깊숙이 자리한 진리를 순간적으로 깨닫는 경험으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자기 스스로 ‘도(道)’를 깨닫게 되면 다른 사람을 통하지 않고도 진리를 알 수 있고,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수업혁신의 방향은 가르침에서 배움으로, 배움에서 익힘으로, 익힘에서 깨침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르침

⇒

배움

⇒

익힘

⇒

깨침

 

교사의 가르침을 강조한 수업 관련 담론들은 일제학습, 강의식 설명법, 교과중심 및 학문중심 교육과정, 수업장학, 수업평가, 정량 평가, 객관식 선다형 평가 등이다. 짧은 시간 안에 지식을 배우고자 할 때 도움이 되는 수업 방식이다. 학생의 배움을 강조한 수업 관련 담론들은 배움 중심 수업, 배움의 공동체, 아이 눈으로 수업 바라보기, 구성주의 교육과정, 정성 평가, 수행 평가 등이다. 익힘을 강조한 수업 관련 담론들은 거꾸로 수업, 암기 중심 수업, 문제풀이식 수업, 완전학습, 객관식 선다형, 서술형 평가(응답 제한형), 수업컨설팅 등이다. 깨침을 강조한 수업 관련 담론들은 코칭 기반 수업(학습코칭), 구조화된 프로젝트 수업, 개념기반 탐구학습, 역량 중심 교육과정, 정성평가. 논서술형 평가(응답 비제한형), 수행평가, 학생 주도성(행위 주체성), 수업코칭 등이다.

 

배움의 상태

배움의 상태는 교육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배움의 상태를 묘사하면 다음과 같다.

배움이 잘 이루어진 상태	배움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교사의 설명에 집중하여 경청한다. ·교사의 설명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응한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교사를 바라본다. ·교사의 지도에 따라 학습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다. ·수업 내용을 일목요연하게 노트 필기한다. ·수업 내용과 관련한 질문을 한다. ·수업에서 배운 내용을 삶 속에서 실천한다. ·지적 호기심이 발동하고, 심화된 지식으로 나아간다. 등	·딴 짓을 한다. ·잠을 잔다. ·떠든다. ·멍한 눈빛으로 초점을 흐려져 있다. ·노트에 낙서를 한다. ·공상에 빠져 있다. ·산만하게 행동한다. ·수업시간에 배운 것을 자기 말로 설명하지 못한다. · 수업 내용에 대한 관심이 없다 등

 

배움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은 쉽지만, 배움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를 분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교직이 전문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배움이 잘 일어나거나 잘 일어나지 않은 경우,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고 그에 맞는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수업코치 입장에서 어떤 교사의 수업에서 학생의 배움이 잘 일어났다면 칭찬하기의 피드백을 하면 된다. 하지만 학생의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근본 원인을 찾아내고 그에 맞는 해결방안을 모색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 행위만 바라보고 즉각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보다 문제 행위 속에 감추어진 원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문제 원인에 따라 해결 방안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고등학생이 수업시간에 잠을 잔다고 하자. 교사가 잠을 깨울 수 있도록 주의를 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잠자는 학생이 잠자는 이유를 분석해보면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할 수 있다. 학생 입장에서 수업 내용이 재미가 없고, 흥미 유발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전날 밤 수행평가를 밤늦도록 하다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해서, 밤늦게 까지 알바를 하거나 컴퓨터 게임을 해서, 해당 과목을 왜 배워야 하는 지 공부의 목적과 이유를 상실해서,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것을 느껴서, 교사의 수업 방식이 단순하고 대부분의 수업 시간을 강의식 설명법으로 진행해서, 학생의 기초학력이 떠어져서 수업 내용이 전혀 이해가지 않아서, 미래에 대한 희망과 꿈이 없어서, 짝꿍이 잠을 자다보니까 전염되어서, 식곤증으로 인한 졸음을 이기지 못해서, 신체적으로 몸이 아파서 등등..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을 수 있는데, 원인에 따라 해결 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단순하게 졸린 경우는 교사의 간단한 주의만으로도 해결될 수 있겠지만 좀 더 근본적인 원인들이 있거나 여러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면 주의 경고만으로 잠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교육방송 "다시학교(2020)" 잠자는 교실 편 중 한 장면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은 이유들

배움이 잘 일어나지 않는 원인 유형과 그 사례들을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 교사 원인

-교사의 수업 준비가 미진함

-교사가 수업 내용을 숙지하지 못하거나 오개념을 가지고 있음

-교사의 신체 및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

-긴장을 많이 하여 수업 준비한 만큼 잘 진행하지 못함

-교사의 발화가 잘 이루어지지 않음(억양, 속도, 발음, 심한 사투리 등)

-수업 방법이 단조롭거나 일방적임

-학생의 문제 행동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지도하지 못함(훈육 미비) 등

 

∙ 학생 원인

-기초 학력이 부진하거나 학습의욕이 없음

-학습 주제에 대한 관심이 없음

-공부의 목적과 이유를 상실함

-무기력한 상태에 빠져 있음

-동료 학생들의 관계가 깨졌거나 학교폭력으로 인하여 마음의 상처가 있음

-학생의 신체 및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음 등

 

∙ 관계 원인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가 잘 형성되지 않았고, 신뢰가 무너져 있음

-교사가 불안과 공포로 교실을 장악하여 평화롭고 안전한 교실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지 못함

-교사와 학생과의 관계가 또래 학생처럼 너무 친밀한 관계로 형성되어 있어서 교사의 권위를 학생이 인정하지 않음

-교사와 학생과의 상호작용이 거의 일어나지 않음

-교사가 학생을 사랑하지 않고 통제하려고만 함 등

 

∙ 지식 원인

-학습 주제와 내용이 학생들의 필요와 연결되지 않음

-학생 입장에서 수업 시간에 배우는 지식이 너무 많거나 어려움

-너무 쉬운 내용, 뻔한 학습 내용으로 인하여 학생의 흥미 유발이 잘 이루어지지 않음

-경쟁학습, 상대평가가 심하고 성적 결과만 강조함 등

 

∙ 기타 원인

-디지털 및 인공지능 수업 시 인터넷이 연결되지 않거나 테블릿 등 스마트 기기가 준비되지 않음

-교실 냉난방 시설이 잘 갖추어지지 않아 교실 온도가 너무 춥거나 더움

-교실 환경이 너무 지저분하거나 무질서함 등

 

대개 수업에서 배움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들을 분석해보면, 필자의 경험 상 한 가지 이유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배움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그 원인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분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