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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혁신

잠자는 학생, 방치하는 교사?

by 김현섭 2019. 6. 25.

민철아, 일어나! 졸리면 잠이 깰 때까지 뒤에 나가 서 있어.”

초등학생과 중학생의 경우, 수업 시간에 딴 짓을 하거나 떠드는 학생들을 종종 보게 된다. 그런데 고등학생의 경우, 그러한 학생들은 별로 없지만 대신 잠자는 학생들이 있다. 수년전 일부 언론에서 잠자는 학생들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된 적이 있었다. 그 후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일부 고교 교실에서는 잠자는 학생들의 문제가 그대로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왜 자니?

잠자는 학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먼저 그 원인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크게 학생 원인, 교사 원인, 교육과정 원인, 사회 구조적 원인 등이 있다. 학생 원인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절대 수면 시간이 부족해서 자는 경우, 기초 학력이 부족하여 수업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자는 경우, 학습 동기 유발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몸이 아프거나 체력이 약해서 자는 경우 등이 있을 것이다.

OECD에서 권고하는 청소년 절대 수면 시간은 약 8시간 정도이다. 의학계에서도 최소 6시간은 자야 한다고 말한다. 잠이 부족하면 만성 피로에 빠질 수 있고, 감정 관리가 잘 안되어 우울증에 빠지기 쉽다.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매튜 위버와 연구팀(2018)은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65,000건 이상의 설문 데이터를 바탕으로 매일 8시간 이상, 7시간, 6시간, 6시간 미만으로 수면을 취하는 학생들의 행동을 비교 분석했다. 조사 결과, 6시간 미만으로 수면을 취하는 학생은 8시간 이상 자는 학생보다 알코올 섭취나 약물 남용 등을 할 위험이 거의 두 배에 이르렀다. 또한 6시간 미만 수면한 학생은 흡연, 위험한 성행위, 자해 및 자살 시도 등 위험 행동을 할 확률도 높았다. 잠을 유도하는 멜라토닌은 일반적으로 밤 9시부터 11시 사이에 많이 분비된다. 사람마다 신체 특성이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일찍 잠을 자야 신체 피로 회복이 빠르게 이루어진다. 그런데 많은 한국 고교생들이 충분하게 잠을 자지 못하고 있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인문계 고교생의 경우, 5.5시간 정도 자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2015년 청소년단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고교생 10명 중 8명이 잠이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응답하였다.

고교생들이 잠을 늦게 자는 이유를 살펴보면 대개 밤늦게까지 스마트폰이나 게임을 하거나 학교에서 늦게까지 자습을 하거나 학원에서 공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교 1-2교시 수업을 참관해 보면 많은 학생들이 졸거나 멍한 상태에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오히려 오후 시간에 학생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 2014년 경기도교육청에서 9시 등교 정책을 실시한 이후 고교생 수면 시간이 상대적으로 늘어나긴 했지만 학생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늦게 등교하는 만큼 늦게 잠을 자는 습관이 생기면서 절대 수면 시간이 늘어나는 효과는 줄어들었다.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기초 학력 부진 학생의 비율이 점차 늘고 있다.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 20122.6%에서 20164.1%로 늘어났고, 2018년도 고2의 경우, 국어 3.4%, 수학 10.4%, 영어 6.2% 정도가 나왔다. 기초 학력이 부족한 학생들 입장에서는 수업 시간에 집중을 하려고 해도 이해가 잘 가지 않기 때문에 결국 잠을 자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중학생 때는 공부를 하지 않아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았다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성적은 떨어지게 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이러한 실패를 반복해서 경험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무기력 상태에 빠지게 되면 수업 시간을 잠자고, 시험 때는 쉬운 문제도 쉽게 포기하고 아예 백지 답안지를 내는 경우가 생긴다.

왜 공부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학생들이 진지하게 생각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성적을 올려야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는 수준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좋은 대학을 나와도 좋은 일자리를 얻기 힘든 청년 실업 시대에서 이러한 논리가 더 이상 학생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지 못한다.

 

교사 원인의 경우는 교사의 수업 방법이 일제 학습의 강의식 수업 방법 등으로 단순한 경우, 교사가 잠자는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지도하지 못하는 경우 등이 있을 것이다. 현재 많은 고교 교사들이 강의식 수업과 문제 풀이식 수업을 선호한다. 그 이유는 교사가 강의식 수업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고교 교육과정 상 학습 내용이 많기 때문에 강의식 수업이 아니고서는 진도 나가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강의식 수업의 장점은 많은 학생 내용을 짧은 시간에 전달할 수 있고, 어려운 내용을 쉽게 풀어줄 수 있고, 오개념이 적으며,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고교 교사들이 강의식 수업 방법으로 수업을 한다. 하지만 강의식 수업의 단점은 교사 의존도가 높고, 학생 입장에서는 수동적일 수 밖에 없고, 고교생의 경우, 강의식 수업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15-18분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15분 이상 강의식 수업이 지속되면 학생들 입장에서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고, 졸거나 잠을 자는 학생도 나타나게 된다. 많은 고교 교사들이 문제 풀이식 수업을 하는 이유는 수능 문제가 EBS 수능 교재 연계하여 출제되기 때문이다. 교과서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변별력을 강조하는 수능 체제에서 EBS 수능 교재의 학습 난도 수준은 높고 까다롭다. 학습 수준이 높거나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문제 풀이식 수업에 잘 따라오겠지만 학습 수준이 낮거나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문제 풀이식 수업에 흥미를 가지기 힘들 것이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잠을 잘 때 교사가 이를 어떻게 생활 지도하는가가 중요하다. 그런데 일부 교사들의 경우, 잠자는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지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수업시간 무기력한 학생이 잠을 잘 때 교사가 처음에는 제지하지만 이를 학생이 무시하고 계속해서 잠을 자는 경우, 교사도 더 이상 지도하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잠을 깨우는 과정에서 감정적으로 부딪히거나 갈등을 빚는 경우가 발생하기 때문이고 깨어있어도 학습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사가 무기력한 학생들이 잠자는 것을 방치하게 되면 해당 학생들만 잠자는 것이 아니라 일반 학생들에게도 잠이 전염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점차 교실에서 잠자는 학생이 많아지게 되면 교사도 학습된 무기력 현상이 나타난다. 교사가 열심히 수업 준비를 해도 많은 학생들이 잠을 자게 되면 교사도 수업 의욕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되고, 자존감도 많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 또한 교사마다 수업 시간 잠을 자는 학생들을 대하는 지도하는 방법이 다르다보니 때로는 잠자는 학생이 오히려 반발하는 경우도 생긴다. 교사 입장에서는 잠자는 학생을 깨우자니 학생들과의 갈등이 발생하고, 그대로 방치하자니 잠자는 학생이 늘어나거나 수업 무력감을 경험하게 되는 일종의 딜레마 상태에 빠지게 된다.

 

교육과정 원인의 경우는 학생들이 원하는 내용을 학교 교육과정이 잘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 교육과정 분량이 많고 수준이 높아 학생들이 잘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 반대로 너무 쉬어서 흥미 유발이 잘 되지 않는 경우 등이 있다. 대개 학생들이 학교에서 자기가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여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자기 진로 방향과 특성, 흥미에 맞는 과목을 선택하기 보다는 의무적으로 배워야 하는 과목이 많다보니 고학년이 될수록 학습 의욕이 떨어지는 경우가 생긴다. 교육과정상 너무 어렵거나 쉬워도 학생 입장에서는 흥미를 가지기 쉽지 않다. 2015 교육과정은 역량 중심 교육과정을 지향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한계가 있다. 예컨대, 공동체 역량을 기르려면 수업 시간에 협동학습이나 협력학습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고 다양한 공동체 함양 프로그램이나 봉사활동이 이루어져야겠지만 현실은 강의식 수업에 형식적으로 공동체 프로그램이나 봉사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다. 교육과정 방향이 역량 중심이라면 평가도 과정 중심 평가, 성장 중심 평가. 수행 평가 등의 역량 중심 평가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아직도 학문 중심 평가, 상대 평가인 수능 체제가 존속하고 있다. 추구하는 교육과정의 방향과 현행 입시 제도가 충돌되고 있는 상황에서 교사와 학생 모두 힘들어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 구조적 원인은 학생 인권 강조 문화, 치열한 입시 경쟁 문화 등이 있을 수 있다. 학교에서 학생 인권 강조 문화는 전반적인 인권 향상에 기여했지만 일부 학생들은 이를 잘못 이해하여 책임보다는 권리만 강조하는 경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무시해도 버틸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진 학생들도 생겼다. 치열한 입시 경쟁 문화는 경쟁에서 뒤쳐진 학생들에게 무기력을 심어주는 토양이 되었다.

 

잠자는 학생을 깨우려면?

필자는 수년 전 핀란드와 덴마크 고등학교들을 탐방했는데, 교실에서 잠자는 고등학생을 단 한번도 발견하지 못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대개 고등학생들은 7시 등교하여 3시에 하교하였고,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고 있었다. 또한 입시 경쟁이 우리처럼 치열하지 않았고, 자기 진로 방향에 따라 상급 학교를 선택했다. 자율적인 학교 교육과정 운영과 학생 참여적 수업 방법을 통해 수업 시간에 학생 흥미를 유발하면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업시간에 잠을 잔다는 것은 생각하기 쉽지 않은 상황인 것이다.

잠자는 학생들의 원인에 맞게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학생 원인과 관련하여 절대 수면 시간이 부족해서 자는 경우, 절대 수면 시간 확보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이나 게임 중독에 빠지지 않도록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밤늦게 까지 사교육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최소한의 규제를 해야 한다. 학습 코칭이나 기초 생활 습관 지도를 통해 학생들 스스로 자기 생활을 절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기초 학력이 부족하여 수업 내용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아서 자는 경우, 기초 학력 학생들을 위한 개별 지도 체제를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습 동기 유발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 학습 코칭을 통해 공부 철학을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교사 원인과 관련하여 교사의 수업 방법이 일제 학습의 강의식 수업 방법 등으로 단순한 경우, 참여 수업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고 수업코칭이나 수업 공동체 활동을 통해 수업 성장을 추구해야 한다. 교사가 잠자는 학생들을 효과적으로 지도하지 못하는 경우, 학급 긍정 훈육법, 회복적 생활교육 등을 통해 교사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학생들을 지도하는 방법을 익히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과정 원인과 관련하여 학생들이 원하는 내용을 학교 교육과정이 잘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 고교 학점제 도입 및 운영을 통해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늘이고 다양한 교육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주는 것이 필요하다. 교육과정 분량이 많고 수준이 높아 학생들이 잘 소화하지 못하는 경우와 너무 쉬어서 흥미 유발이 잘 되지 않는 경우, 교사들이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교육과정의 적정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사회 구조적 원인과 관련하여 학생 인권과 교권의 조화를 추구하고, 수능의 절대평가제 등 치열한 입시 경쟁 문화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잠자는 학생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그 원인을 교사 개인의 무능함으로 몰고 가거나 사회 구조적인 원인으로만 생각하여 교사는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잠자는 학생을 방치해서는 안될 것이다. 잠자는 학생 문제는 교사만이 아니라 학생, 학부모, 사회가 모두 문제점을 인식하고 공동의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